친구가 <아무도 모른다>를 보자고 바득바득 우길 때, 난 <마파도>나 보지 뭐 저런 영화를 보겠다고 그럴까 싶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그 친구에게 감사했다.


난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본다. 미리 알면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반전에 놀라지 않게 되니까. 하지만 그런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야기라 유아가 <올드보이>의 최민식을 제치고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을 알았다면, 그리고 최민식이 “저런 배우에게 상을 줄 수 있는 칸이 위대하다”고 했던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내가 먼저 저 영화를 보자고 졸랐을 테니까 말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이런저런 정보들에 귀를 꼭 막고 육감만으로 영화를 고르는 건 오히려 위험하며, 계속 그딴 식으로 살다간 좋은 영화를 번번히 놓친다.


잔잔한 감동이 흐르는 영화거니 생각했었지만, 중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공포로 치닫는다. 실제 일어난 사건이라는 자막을 봐서인지 아이들이 겪는 고통이 훨씬 더 생생하게 전달이 되었다. 눈이 붉게 충혈되는 우리와 달리, 배우들은 아무도 울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사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그게 더 슬펐다.(여기서부터 강력 스포일러)

2남2녀, 우리집과 똑같다....

 

애들 엄마는 이 남자와 사귀다 애 하나 낳고, 저 남자와 사귀다 또 하나 낳고, 이런 식의 생활을 하다가 애 네명을 얻었다. 애들을 학교도 안보내고 장남에게 살림을 맡긴 엄마는 또다른 남자와 연애를 한다. 집에 안들어오는 기간이 갈수록 길어지더니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해버리는 엄마, 애들은 돈이 없어 굶주리는 상황에서 “엄마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몸이 떨려왔다. 공포영화란 게 꼭 귀신이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다.


주인공이 엄마를 버린 남자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걷는 장면, 전기가 끊겼음에도 냉장고에다 마실 물을 넣는 장면, 이것저것 냄새를 맡아 보지만 하나같이 땀내가 나는 티셔츠, 마음이 아픈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그날 난 집에 가서 어머니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두달간 깁스를 한 탓에 어깨가 굳어버린 탓. 2분쯤 지나자 어머니는 “이제 됐다. 그만해라”면서 “니가 해주니 시원하다”고 하신다. 엄마의 사랑을 난 당연하게만 여겨왔었지만, 부모에 따라서는 안그럴 수도 있다는 걸 영화를 보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


막내가 의자에서 떨어져 죽어갈 때, 주인공은 엄마의 편지를 받는다.

“잘 지내고 있지? 난 너를 믿는다”

믿기는 개뿔! 사귀는 여자를 꼬셔서 한번 자보려고 하는 남자들, 그리고 부모님이 자기에게 해준 게 없다고 불평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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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4-04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마태우스님의 '영화의 날'이로군요.. 이렇게 몰아쳐서 주르륵 올리시다니.. 얼마전에 영화리뷰특강을 한 덕입니까? ^^

stella.K 2005-04-0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원 없이 보셨나 봅니다.^^

비연 2005-04-04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정말 이렇게 다 보신 거에요? ^^ 부럽슴다.
저 이영화 보고 싶었는데...

Muse 2005-04-0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도 행복해 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엄마'가 된 여자들에게 의미있는행복은 자신의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저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엄마'는 이 영화를 보면 한없이 슬프고 우울하고 심지어 그 아이들을 버리고 간 누구인지도 모를 '엄마'에게 분노를 느낄 것 같군요.

그래도 보고싶은 건.....마태우스님의 리뷰때문인가요?^^

저번에 '팝콘 심리학' 로또에 당첨되었던 서연엄마였습니다.

sweetmagic 2005-04-04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넘 잔인했어요 진짜 다시 생각도 하기싫어요.
근데...소년이 너무 섹시했어요. 저 미쳤나봐요 ㅠ.ㅠ;;;;

줄리 2005-04-0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때문에 볼 영화가 너무 많아져서 원.. 시간을 두배를 부풀려주는 마술을 부리던지 해야 할거 같아요. 하지만 님의 리뷰를 보고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구 굳게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마태우스 2005-04-04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sx님/아 이거 정말...............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매직님/님이 연하 스타일인 거 저는 압니다. 하하핫.
서연사랑님/엄마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행복이 님처럼 애와 더불어 있으면서 느끼는 게 아닐 수 있단 것도 동의할 수 있죠. 근데 그건 애한테 책임을 다한 뒤에야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자기가 돌보기 싫으면 파출부한테라도 맡기고, 그게 옳다는 게 아니라 최소한 먹고살고 배우게는 해놓고 나서 행복 운운해야지 않겠냐는 거죠. 그 엄마, 정말 잔인하고 무서웠어요
비연님/저도 맘잡고 보면 무섭다는 걸 나타내려고...호호
스텔라님/전 비디오를 못봐서 그래요.... 극장에서가 아니면 케이블을 기다려야 하거든요
날개님/아 그것도 좀 관계가 있죠. 예리하신 날개님...

울보 2005-04-0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늘 마태우스님 집이신가보군요,,
전 비디오나 나오면 님이 소개한 영화 다볼거예요.
아직 류를 데리고 가기는 그렇거든요,,
류를 맡기고 갈마음은 전혀 없고ㅡㅡㅡㅡ
잘 들었습니다,
이다음에 영화를 볼때 다시한번 참조를 하지요,,,,,

아영엄마 2005-04-0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대신 다양한 영화를 보고 이리 글로 알려주시는 님께 감사의 의미로 추천을~ ^^*

마태우스 2005-04-04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저만 날날날 놀러다녀서 죄송해요
울보님/류는 행복하겠어요. 멋진 엄마를 두셔서요. 알라딘 하는 엄마가 그리 흔하겠습니까^^

마냐 2005-04-06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방금 보고왔어요. 지난번에 님의 '여기서부터 강력 스포일러'까지 읽고 안 읽었었는데...암튼, 엄청 찜찜해요. 찜찜해요. 찜찜해요......아, 너무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