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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정문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마냐님으로부터 <전선기자 정문태>를 선물받은 건 꽤 오래 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선뜻 이 책을 집어들지 못했던 까닭은 전선기자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들려서였다. ‘군을 따르는 기자’라는 뜻을 지닌 ‘종군기자’는 전쟁과 적대적 관계여야 할 기자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전선기자’로 불려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그 당시 나를 지배했던 생각은 “베트남전도 끝났는데, 요즘 시대에 전쟁이 어디 있어?”였다. 하지만 “몸을 피할 자유도 없는 이 야만적인 전쟁의 끝은 어디일까?”라는 저자의 탄식처럼, 내가 평화롭게 살던 90년대에도 전쟁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전쟁들은 거의가 추악하기 그지없는 것이었고, 학살자의 대부분은 어린아이를 비롯한 무고한 시민들, 국제사회란 곳이 그리 깨끗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통해 실상을 접해보니 그 추악함의 정도가 훨씬 심했다.
인상깊었던 대목을 인용해 본다.
-세계에서 유래없이 무장 반독재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미얀마민주전선에 대해 미얀마 민주화의 화신으로 불리는 아웅산 수지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난 학생들에게 총 들라고 요구한 적 없다. 그런 건 내 비폭력노선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저자의 말이다. “평화는 힘센 놈들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었다. 비폭력은 그놈들이 뱉어낸 거짓말에 쳐준 맞장구였다. 그 둘이 함께 먹고사는 공생관계 속에서 세상은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져 왔다...내 아들, 딸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총 맞아 죽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랑군(미얀마 수도)의 평화주의였고, 학살군사 독재자들 앞에 무릎 꿇고 돌아오라는 게 랑군의 비폭력 무저항주의였다”
-이스라엘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장면, “이스라엘 군은 그렇게 아이와 기자들 모두를 사냥감으로 삼았다...현장 취재 기자 59명이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고 6명이 숨졌다”
이에 비하면 여타 독재정권들이 행하는 언론통제는 귀여운 수준이 아닐까.
-난 코소보 전쟁이 인권을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전쟁은 “회원국이 공격받았을 때만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나토 조약을 위반했으며, 대량학살과 대량 난민발생을 이끌어낸 가장 비인도적인 전쟁이었다.
국제사회의 음모를 폭로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촘스키의 책들이 다소 지루한 데 반해, 이 책은 시종 박진감 넘치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책상머리에서 쓴 글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쓴 책인데다 현장감을 생생히 전달하는 기자의 문장력이 어우러진 덕분이다. “종군기자로서 자부심을 지닐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목숨을 걸고 진실을 캐려 애써온 저자에게, 그리고 내게 이 책을 선물해주신 마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