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학문을 하는 관계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때가 이따금씩 있다. 몇 번 하고나니 이젠 똑같은 말 하기도 지겹다.

“왜 기생충학을 하게 됐어요?”

다른 과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말을 안하는 걸로 보아 기생충학 하는 게 신기한가보다. 이 질문을 필두로 “특이한 걸 하시니까 에피소드 같은 게 많을 것 같은데...” “봄 가을로 구충제 먹어야 합니까” 등등, 어쩜 그렇게 똑같은 질문들만 하는지 혹시 짠 게 아닌가 싶다.


인터뷰에 있어서 내 원칙은, 듣도보도 못한 잡지는 반드시 응한다는 거다. 잘나가는 곳이야 나랑 인터뷰 해주는 걸 무슨 벼슬인 줄 알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부탁할 때 굉장히 미안해 한다. “시간이 언제쯤 되시나요” “아니어요 저희가 직접 찾아뵐께요”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파온다. 나도 약자인 적이 있어봐서 그들의 심정을 안다. 그래서 흔쾌히 수락을 하고, 최대한 친절하게 답을 하곤 한다. 평소 교수들이 제약회사 사람들에게 하는 걸 보면서-별로 안바빠도 오래도록 문 밖에 세워둔다-그런 원칙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오늘의 xx’이란 잡지와의 인터뷰를 대번에 수락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음료수까지 대접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이 마땅한 게 없냐고 한다. 강의용으로 쓰는 씨디를 꺼내 보여줬더니, 빌려주면 안되겠냐고 한다. 꺼림직했지만 빌려줬다.

“3월에 수업 있으니까 그 전에 돌려주세요”

염려 말라고, 잡지 보내줄 때 같이 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잡지가 왔을 때, 씨디는 없었다. 사흘쯤 기다리다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다. 인터뷰를 했던 기자가 받는다.

“저는 그 회사 그만 뒀거든요. 회사에다 전화해 보세요”

겁나게 어이가 없었지만, 참고 회사에 전화했다.

“저희는 모르죠. 그 기자한테 전화하세요”

화가 끓어오르는 걸 참아가면서, “그러지 말고 좀 찾아봐 주실래요”라고 직원을 설득했다.

“한번 찾아볼께요”

그 말이 그다지 믿음직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열흘이나 기다린 걸 보면 난 참 인내심이 뛰어난 것 같다. 11일째, 난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나오면 어떡하냐, 인터뷰 할 때랑 끝난 뒤랑 이렇게 틀리면 되겠느냐. 나답지 않게 언성을 높였더니 직원이 미안하다고, 꼭 찾아서 드리겠다고 답을 한다. 사흘만에 다음호 잡지와 함께 씨디가 배달된다. 씨디를 받아서 기쁘긴 하지만, 좀 허탈했다. 꼭 이렇게 목소리를 키워야만 되는 것일까. 애도 아닌데.... 별일도 아닌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이해가 간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3-2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목소리 큰 편이랍니다...^^
근데, 그 잡지사 어디죠?. 마태님이 인터뷰 한 걸 봐야 하는뎅...
딴지에서 스위스 축구 선수가 미녀와 결혼했다는걸 부러워한다는 언급처럼...^^

줄리 2005-03-2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성 높이게 하는 사람들 싫어요. 전 절대 마태님 언성높이게 안할테니까 속상해하지 마세요~~~

stella.K 2005-03-2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오늘 마태님한테 한수 배웠습니다. 목소리 키울 땐 키워야겠군요. 말씀마따나 목소리 안 키우고도 일이 재대로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쨌거나 씨디 돌려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근데 정말 허탈했겠어요. 나름껏 호의를 보이셨는데 그뜻도 몰라주고...사람 화장실 갈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그쪽 사람들 좀 그렇군요.쩝.

울보 2005-03-2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는 말이 왜 생각이 나는지.....
님 속상하셨겠네요,,,,아니다 정말 씁쓰름 했겠네요..

물만두 2005-03-26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어느분이 스크랩하실겁니다^^

chika 2005-03-2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는요... 평소 애들처럼 캐주얼차림에 화장도 안하고 머리도 부시시~ 가방도 배낭을 짊어지고 댕겨서요... 그렇게 무시당할 때 많아요...
전번엔 은행에서 - 제가 그래도 우수고객일텐데..ㅠ.ㅠ - 마구 무시당하니까, 그 직원이 잘못했거든요? 근데 한시간동안 일을 엉망으로 처리할때도 꾸욱 참고 가만히 있으니까 정말 가마니로 알았는지..ㅠ.ㅠ
괜히 언니한테 전화해서 승질부리다가 '그니까 평소 옷차림도 좀 신경쓰고, 큰소리칠땐 큰소리 좀 치라니까는!!!' 이라는 욕만 듣고...으허~ ㅠ.ㅠ
그..그런 의미에서 추천이나 날리고 가야겄어요. 오늘따라 내가 왜 이리 말이 많은지~ ^^;;;

클리오 2005-03-2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책임감없는 사람이군요... 작은 곳과의 거래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런 돌발상황때문이겠죠..

▶◀소굼 2005-03-2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나 적용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죠. 목소리 키우기. 가뜩이나 저처럼 목소리 작은 사람은 어쩌라고...

마태우스 2005-03-26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굼님/목소리 작은 분이 한번 크게 내면 산천초목이 벌벌 떤답니다^^
클리오님/그, 그럴까요? 그, 그렇겠죠?
치카님/우수고객이라는 단어를 보니 갑자기 잘보여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치카누님, 배고파요!^^
물만두님/혹시 만두님??????
울보님/다 잘됐으니 지금은 괜찮아요. 그 전엔 좀 화가 났죠...
스텔라님/전 화장실서 나올 때도 최대한 겸허하게 나옵니다. 하하핫.
dsx님/님이야 저얼대 그럴 분이 아닌 거 알아요.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여우님/잡지사 이름, 절대 가르쳐 주실 수 없습니다. 하핫. 제 인터뷰, 하도 똑같은 말만 해서 지겹습니다^^


조선인 2005-03-2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전 목소리가 무지 크지요. -.-;;

마태우스 2005-03-2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그래서 손해본 적 혹시 있으신가요? 얘기해 주세요!!!

chika 2005-03-2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를 우수고객으로 만들어 준 친구녀석이 수원지점쪽으로 옮긴답니다. 그쪽에다가 거래를 터야할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