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1학년 때, 난 맨날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가면서 집에서 공부할 것을 챙겨간 것. 뭐,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난 너무 많이 챙겨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라커에다 책을 넣어두고 몇 개만 가져갈 때, 난 온갖 책들을 다 가져갔다. 행여나 공부할 게 없어서 멍하니 있을까봐.


그래서 내가 과연 공부를 했을까. 물론 아니다. 일단 가면 밥을 먹었다. 공부라는 게 은근히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이라, 집에 가면 배가 고팠다. 밥을 먹고 나면 대충 11시를 넘는데, 무슨 공부를 하겠는가. 책만 펴놓고 침흘리고 자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침에 다시 그 무거운 책들을 들고 도서관에 갈 때면 전날 그냥 자버린 게 속상하기만 했다. 우연히 만난 친구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어젠 말야, 이상하게 공부가 잘되는 거야. 그래서 새벽 2시까지 공부했지 뭐냐”


공부할 걸 왕창 가져가는 게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알고서도 난 계속 그딴 짓을 했는데,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무거운 해부학 아틀라스 3권과 더 무거운 해부학 원서를 지하철 짐받이에 쌓아 두었는데, 잘못 쌓아서 그중 세권인가가 떨어져 버린 것. 책도 책이니 무지 아팠을텐데, 무릎에 책을 정통으로 맞은 분은 어떤 아주머니였다. 죄송하다고 싹싹 빌었지만 그 아주머니는 계속 화를 내셨는데, 나 같아도 그랬을거다. 나중에, 내가 좀 더 자라고 난 뒤, 해부학 아틀라스를 들고 지하철을 타는 학생을 보면 속으로 웃었다.

“너도 괜히 가져갔다 가져오는 건 아니겠지?”


제 버릇 남 못준다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금요일 저녁, 퇴근할 무렵이면 난 주말에 할 일거리를 잔뜩 가방에 담아 가지고 간다. ‘이번 주말엔 이거랑 이거 해야지’ 이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서, 일거리를 더 많이 담게 된다. 그래서 과연 뭔가를 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이번주 같은 경우 가방이 터지도록 뭔가를 싸왔는데, 그 가방, 아직 자크도 열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마다 낑낑대면서 가방을 매고는 “내가 왜 이걸 가져왔을까” 후회하는 인생, 난 언제쯤 여기서 벗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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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0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이 아무 부담갖지 말라구 전해드리라 그랬어요.
근데 부리님이 그대신 부리님 이름으로 책 한권 주문해달래요.
너무 좋은 친구분이신데 그렇게 함 해드리면 어떨까요?
이상 스텔라댓글 일욜담당 알바였습니다.
아차 깜빡 할 뻔했네.....추천 꽝!!!!

비로그인 2005-03-0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마태우스님, 저랑 삘이 통했나봐요. 전 주로 베낭을 매고 다니는데 말이죠. 정말 제가 생각해도 한심해요. 일주일치 밀린 신문, 영어사전, 디카, 이력서 용지, 동전만 잔뜩 든 지갑, 대학노트, 필통, 여기에 책이 들어갑니다. 어떤 책이냐구요? 반절짜리 독서 끝내려구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 2부 두 권 다요! 저, 미쳤죠? 어깨에 매다 그만 침대모서리에 주저앉았던 게 며칠 전 일이에요. 한 페이지도 못 읽을 때가 수두룩한데..말이죵..거참. 가방이 가득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증같은.. 이것두 정신질환일까요?

2005-03-06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YLA 2005-03-06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시험기간에 항상 저랬어요. 책 챙기다 보면, 이것도 봐야할거 같고 저것도 봐야할것 같고 다 집어넣고 낑낑거리면서 들고가죠.....
다음날 아침에 한숨쉬면서 고대로 또 들고오고 ..하하하 ^^;;;

플라시보 2005-03-0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맨날 가방이 무거워요. 집에서는 '회사서 필요할지도 몰라' 하면서 챙겨가고 회사에서는 '집에가면 필요할꺼야 분명히' 하면서 챙겨갑니다.^^

노부후사 2005-03-0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천안에서 전철로 통학하기 땜시... (대략 왕복 4시간 30분 정도...) 책 한 보따리에 간간히 목을 축일 수 있게 녹차도 보온병에 녹여 가져가지요. --;;

울보 2005-03-0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너무 재미있으시네요..
주말은 즐기세요..
와! 4시간 통학은 심하다,,,,,몸이 축나시겠네요..
마태우스님도 4시간 통학하시나?

조선인 2005-03-06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교과서마저 사물함에 넣고 다녔습니다. 전. ㅋㅋㅋ

BRINY 2005-03-06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찔립니다. 1박 여행 수준으로 학교에서 싸온 가방은 식탁 위에 그냥 던져져 있고, 시간은 벌써 일요일 오후 4시반.

하루(春) 2005-03-0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 기우제는 비가 오길 바라는 제사 아닌가요? 祈雨祭요. 기우는 杞憂구요. 별 게 다 웃긴 일요일이군요. ^^;;;

마냐 2005-03-06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넘 반가운거 있죠. ^^ 지난 금욜에도 책을 네권이나 싸들고 집에 가는데...좀 민망하긴 하더군요.

stella.K 2005-03-06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좀 딴 얘긴데 시험 볼 때 참고서만 이것 저것 줄창 사댔었죠. 어떤 게 좋은 참고선가 이것 저것 사서 보고 있기는한데 참고서 많이 산다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참고서 잘 골라 공부에 흥미 좀 느껴 볼까 해서였는데 나중에 깨달은 건 공부 못하는 사람이 그러더라구요. 기계 잘 못 다루는 사람이 연장 탓 한다 잖아요. 학교에 남아 공부 좀 해 보겠다고 불룩해진 가방 다시 들고 집에 오는데 앞으로 다시는 그런 짓 않하라라 다짐했었죠. 무거운 가방 들고 집에 오느라 피곤해 널부러져 잤으니까. ㅜ.ㅜ

비로그인 2005-03-0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극기훈련 하느라 힘 좀 쓰신 과거이력들이 계시구만요..푸흡..ㅡ_ㅡ;;

책읽어주는홍퀸 2005-03-0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다 글쵸 뭐..ㅋㅋ 근데 책 모서리에 맞으면 정말 엄청시리 아프죠..저두 어제 길거리가다가 어떤뇬이 비닐봉지를 들고가면서 제 종아리를 치면서 지나갔는데 그게 말이죠..두꺼운 책의 모서리였던거지요..우찌나 아프던지요..근데 그럴때 크게 '아!!!'하고 소릴 질렀어야하는데 그냥 조용히 아야하는바람에...사과도 못듣고..집에와서보니 멍들어있던데..우쒸..암튼 책을 들고다닐때는 예쁘게 품에안고 다녔음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