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구실은 의대 건물 4층,
여느 때처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4층을 눌렀다.
2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서더니 한 여자분이 탄다.
엘리베이터는 잠시 올라가다 섰고, 여자분이 내렸을 때 나도 같이 내렸다.
우리 학교 연구실은 모두 번호키로 되어 있어서
별 생각없이 네자리 번호를 눌렀는데,
번호가 틀리다고 나온다.
왜 그러지 하고 문패를 보니까, 아뿔싸. 그 방은 내 방이 아니었고,
한 층 아래 있는 여선생님의 존함이 적혀 있다.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계단으로 한 층을 올라갔고,
평소 외우고 다니는 번호로 문이 열리는 내 연구실에 들어와 앉았다.
오후 1시, 한 층 아래에서 했던 실수를 까맣게 잊을 무렵,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 여선생님이었다.
“오늘 제 방에 들어오시려고 하셨죠?”
그 말을 들었을 때 까무라칠뻔 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내 방인 줄 착각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다른 사람이...어쩌고 저쩌고.
“전에도 누가 한번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불안해서 오전에 일이 손에 안잡혔어요.”
하기야, 여선생님들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나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문을 열고 나와 내가 도망가는 걸 본 걸까?
그녀가 말한다.
“그래서...교학과에 가서 CCTV를 봤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여선생님은 “확인 결과 선생님이어서 오히려 안심했어요. 실수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네. 죄송합니다.”라며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심난해진다.
TV에 뻔질나게 나오는 것도 모자라 씨씨티비에까지 나오다니.
범죄자들이 주로 나온다는 그 씨씨티비에!
교학과 분들이 그 CCTV를 보면서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안되겠다 싶어 부리나케 교학과로 달려갔다.
안그래도 한 여자 직원분이 날 보자마자 미소를 짓는다.
“아, 그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변명을 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할 때 참 구차해 보인다 싶다.
“그러니까 원래 제가 그런 놈은 아니고, 뒤늦게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이
4층이 아니라 3층이라고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어쩌고 저쩌고.“
교학과 분들은 다 이해한다고 했지만,
오늘 완전히 체면을 다 구긴 느낌이었다.
다시 연구실에 올라가 머리를 감싸쥐고 있는데,
그 여자선생이 한 말이 생각난다.
“저번에도 그런 일이 있어가지고..”
그건 내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 역시 나였던 것 같다.
오늘과 똑같이 4층을 눌렀는데 다른 사람이 2층에서 타서 3층에서 내리는 바람에 덩달아서 내렸고,
내 방인 줄 알고 번호키를 눌렀을 거다.
이게 다, 평소에 다닐 때 너무 다른 생각을 많이 한 탓이다.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는 층 번호만 보자.
TV는 자주 나와도 되지만, CCTV에 또 나오면, 그땐 완전히 그런 놈으로 찍힐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