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몸에서 구더기가 나오는데, 아무리 목욕을 자주 하고 약을 써도 구더기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구더기는 피부 깊숙이 박혀 있는데, 몇 번이나 그놈들을 붙잡아 병원 피부과에 보내 봤지만, 잘 모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국립보건원 곤충과에 보내시지 그랬어요?”라는 내 말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내 봤는데요, 구더기가 아니라고 하네요. 하지만 이건 틀림없이 구더기예요”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곤충들, 예컨대 모기나 벼룩, 빈대, 바퀴 등을 기생충학에서 다루는 건 맞다. 하지만 곤충을 다루는 일이라는 게 워낙 발품을 많이 파는 일이고, 요즘 추세가 실험실에 우아하게 앉아 기계를 돌리는 걸 선호하는 추세인지라 전공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 난 곤충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으며, 더구나 보건원 곤충과에서 구더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여자에게 샘플을 가지고 오라고 한 뒤, 보건원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그 여인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 그 사람. 기억 나. 그 여자가 가져온 거 현미경으로 보니까 별다른 형체가 없더라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구더기는 절대 아니야”






구더기가 아니면 도대체 뭘까. 난 최후의 수단으로 연세대에 계시는 이한일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분이 모른다면 우리나라에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생 곤충을 연구하는 데 인생을 바치신 분이다. 대략적인 설명을 드리자 선생님께서 이러셨다.



“혹시, 그사람 젊고 전문직에 종사하지 않아?”



난 매우 놀라면서,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그 여자는 가정의학과 개업의였고, 현재는 구더기 때문에 몇 달째 병원을 쉬고 있는 상태였다.



“그게 말야, 고치기가 어려워. 그게 구더기가 아니라 구더기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건데, 일종의 건강염려증이지”






건강염려증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자신이 중병을 가지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공포나 믿음에 사로잡혀 있고, 비정상적인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게 주증상이다. 20-30대에 흔하며, 당연한 일이지만 정신과에 가자고 해도 거부하는 일이 많다. 이 환자의 경우에도 내가 진단 결과를 알려주자 그럴 리가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었다. 교과서에 의하면 “환자는 여러 의사를 찾아다니지만, 의사-환자 관계는 좋지 못한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자신이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했고, 합당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믿으니, 의사와의 관계가 안좋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늘 질병에 사로잡혀 있으니 사회생활이나 직업기능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병원 문을 닫아버린 이 환자처럼.






그렇다면 이 환자가 구더기라고 우긴 하얀 물체는 무엇일까? 보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대충 생각해 보면 피부 조직을 떼어낸 게 아닌가 싶다. 피부를 자세히 보다보면 왠지 이질적으로 보이는 조직이 있을 수 있으며, 그녀가 구더기라고 생각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리라. 건강염려증이 꼭 전문직에서만 있는 건 아니다. 또다른 사례를 소개해 본다.






한 남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쓴 책을 보고 전화할 생각을 했단다. 자신은 지금 몇 년째 기침을 할 때마다 하얀 기생충이 나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다른 병원에 가도 별 소용이 없어서 날 찾게 되었단다. 환자는 자신의 목에서 나온 흰 물체를 보관 중이라며, 그걸 내게 전해 주겠다고 했다. 그와 신도림역에서 만나 샘플을 받았는데, 그는 30대 중반으로 보였고, 부평에 있는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난 받은 샘플을 뚫어지게 봤지만, 아무리 봐도 뭔지 모르겠다. 색깔이나 크기를 봐서는 유구낭미충이라는, 유구조충의 유충이 의심되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모양이 무질서했다. 도무지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대개는 기생충이 아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기생충일 수도 있으니 환자의 피를 뽑아 서울대병원에 맡기고 혈청 검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혈청검사 결과는 물론 별다른 게 나온 게 없었고, 난 그에게 기생충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는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이건 기생충이 확실합니다”



기생충학자가 아니라는데 기생충이 맞다고 우길 수 있는 비결이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전에 다리까지 몇 개 붙어있던 것도 있었는데, 버렸어요”



난 그런 게 나오면 그때 연락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그 뒤에도 그는 여러 차례 연락을 해왔지만, 다리가 달린 샘플은 아직까지 구하지 못한 것 같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에도 여러번 충체란 걸 들고갔었고, 나중에 거기 분들과 싸우기도 했단다.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는 선생님들한테 화가 나서 그런 것이리라. 앞의 사례가 그런 것처럼, 이 분 역시 그다지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앞 환자에서처럼 그는 이따금씩 기생충과 비슷한 무언가를 내뱉는데,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별다른 구조물이 없으니 기생충은 아니다. 그럼 뭘까. 그걸 알기 위해 호흡기학 선생님께 물어 봤지만, 자신도 뭔지 모르겠단다. 알레르기 환자에서 많은 ‘챠콧-레이든 크리스탈’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뭘까? 스님이 죽을 때 나온다는 사리? 그게 무엇이든간에 그 물체는 부단히도 그를 괴롭힐 것같다.






이 두 환자 말고도 건강염려증의 유형은 한둘이 아니다. 유병률이 전체의 4-6%라고 하니 대단히 많은 숫자다. 심장이 약간 빨리 뛴다거나 땀이 많이 난다고 자신을 큰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건강에 신경을 쓰는 건 좋은 일이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 쓸데없는 걱정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 될 수 있다. 인터넷과 잡지를 통해 잘못된 건강지식이 무수히 퍼져나가는 요즘 시대에는 건강염려증을 염려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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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2-0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염려증을 염려해야한다는 말씀에 동감입니다. :)

marine 2004-12-0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병원에서 별 거 아니라고 진단이 되면 그 다음 코스는 한의원이나 대체 의학 하는데로 빠지더라구요 이쪽 분야의 특징은 환자가 일단 증상을 호소하면 뭐가 됐든 병명을 붙여 치료를 한다는 거지요 심리 치료 수준만 되도 좋으련만, 꼭 비싼 약을 한 보따리 안기는 부작용이 따르기 쉽상입니다

2004-12-06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4-12-0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구XX . 소름이 돋아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구더기 공포증인것 같아요. 처방해주세요. -_-;;;;;;;;

파란여우 2004-12-0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더 글을 잘 쓰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를 하고 산답니다...크하하~~^^

하얀마녀 2004-12-0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무신경해서 탈인데... 어쩌면 너무 무신경하다고 염려를 하고 있는 걸지도...

아영엄마 2004-12-0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의 산물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자기 몸에서 구더기가 나온다는 생각을 안고 산다니.. 윽! 너무 끔찍해요! 부르르~

드팀전 2004-12-0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영화에선간 몸에서 구더기가 마구 마구...쏟아져 나오는 씬이 있었는데..아주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그 영화가 제목이 뭐더라...아...머리 속 벌레가 기억을 잡아먹어서 기억이 안납니다.아..미치겠네.그 영화뭐더라...
에잇...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랴.... (이건 또 뭔 말이람?)

마태우스 2004-12-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그런 영화가 있었나요? 제가 알아보고 가르쳐 드릴께요.

아영엄마님/그죠 너무 인생이 피곤할 거 같아요...

마녀님/마녀님도 그러세요? 저같은 사람은 좀 건강염려증에 걸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새벽별님/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그런 게 아니라니깐요...

여우님/캬! 이주의 댓글에 선정될만한 멋진 댓글입니다. 여우님을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미스 하이드님/너무 깨끗하게 사시는 게 문제인 듯 싶습니다. 사흘 정도 샤워를 안해 보시고, 그 기간을 점차 늘려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속삭이신 분/감사합니다. 읽어 볼께요

나나님/우와,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 주위에서 보신 적이 있거나 아니면 그쪽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

고양이님/음, 늘 느끼는 건데요, 고양이님의 이미지는 왠지 원숭이 같아요. 님의 미모에 걸맞는 이쁜 고양이로 바꾸시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