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이’를 쳤다. 오늘 아침, 그리고 오후에 서울에서 일을 볼 게 있어 학교를 안가버린거다. 그 일이라는 게 학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니, ‘땡땡이’가 맞다. 땡땡이도 범죄인데 중간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 영화까지 봤다. 이름하여 <여선생 VS 여제자>. 유치할 것 같아 안보려 했는데, 모 사이트에 실린 영화평을 읽으니 보고픈 마음이 생겼었고, 드디어 오늘 봤다.
1. 혼자 봤다
아침 10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신촌 아트레온 8관에는 나 혼자 있었다. 혼자 영화를 봤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극장 문을 나와서 몇분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극장 전체를 나 혼자 전세내다니, 역시 난 재벌 2세다. 혼자 봐서 좋았던 점? 재치기를 마음껏 해도 미안하지가 않았다...
2. 염정아
난 염정아를 ‘미스 월드’에서 2등을 한 미녀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다. 미인대회 입상자들이 다 그렇듯, 염정아 역시 방송 쪽을 조금 기웃거리다 사라질 줄 알았던 거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변변한 활동을 못하던 염정아는 2003년 <장화.홍련>, 2004년 <범죄의 재구성>을 히트시키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의 끼를 유감없이 발산한다. 72년생이니 올해로 서른셋, 그녀의 연기 인생은 이제 시작이 아닐까?
3. 이지훈
고교생 가수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이지훈은 <왜 하늘은>이후 히트한 노래가 없다. 노래 하나만 뜨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게 연예계라지만, 그의 공백은 좀 뜬금없었다. 그 정도 얼굴이면 노래가 아주 최악만 아니면 기본은 할텐데 말이다. 그랬던 이지훈이 연기자가 되어 나타나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노래와 연기가 본래 같은 것은 아닐진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세월이 꽤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멋지고, 청순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의 빛나는 피부를 보니 지하철 유리문에 비친 내 피부가 괜시리 미워진다. 왜 하늘은, 이지훈에게만 저리도 많은 것을 주었던가.
4. 여선생 vs 초등학생
영화는 갓 부임한 멋진 미술선생을 놓고 염정아와 이세영이 한판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다. 숙명의 대결이니 긴장이 되어야 할텐데, 유감스럽게도 난 그렇지가 못했다. 요즘 애들이 아무리 성숙했다 한들, 초등학교 5학년이 여선생의 라이벌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어서다. 여고생, 아니 최소한 여중생 정도만 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초등학교 5학년은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가 초등학교를 너무 오래 전에 다녔나보다.
5. 괜찮은 결말
영화를 보면서 걱정했던 것은 염정아와 이세영의 갈등이 어떻게 봉합되느냐 하는 거였다. 중간이 아무리 좋아도 끝이 엉망이면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게 아닌가. 둘이서 뜬금없이 껴안고 우는 씬이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의외로 훌륭하다. 눈물이 많고 별것도 아닌 것에 감동하는 탓이지만, 난 몇방울의 눈물을 흘렸고, 피날레에 이은 에필로그 장면에서는 소리내어 웃었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뭘). 끝날 때쯤 보여주는 교실의 급훈-담임이 지켜보고 있다-도 내게 웃음을 선사했고. 보라고 추천할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뭐 이정도라면 내 기대는 충족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