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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32 - 한국 영화감독의 힘은 센가?
개마고원 편집부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날이 갈수록 재미있어지는 계간 <인물과 사상> 시리즈, 이번 32권의 주제는 ‘한국 영화감독의 힘은 센가?’이다. 김기덕, 강우석, 강제규 등 한국의 잘나가는 감독들을 심층 해부했는데, 다른 것도 다 재미있었지만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심영섭이 쓴 ‘임권택론’이었다. 심영섭은 ‘평가 절하되어야 할 영화’에 설문에 응한 11명 중 다섯명이 <서편제>를 꼽은 조사결과를 인용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저널에서 <서편제>를 공식적으로 비판한 글을 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 의아했단다. 이 현상에 대해 심영섭은 이렇게 말한다. “거장에 대한 존경을 지나 이 이상한 묵계와 가위눌림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달라지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그녀는 충격적인 고백을 털어놓는다.
“돌이켜보면 거의 한번도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보고 사무치는 감화를 받은 바 없”다고. 그래서 그녀는 감독을 위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
그녀의 비판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1. 인물 설정이 전형적이라는 것; “임권택의 영화에는 교수면 교수고 여대생이면 여대생이지 여대생과 자고 싶어하는 교수나 호스티스가 돼버린 여대생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2. “임권택의 영화 세상에서 플롯은 스토리를 퍼담으면서 가장 쉬운 방식으로 아주 충분히 분명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져야 한다” 그래서 “조폭과 권력은 차이가 없어요”처럼 관객이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것까지 대사로 처리되며, 그 결과 “관객들은 감독이 말하려는 주제를 머리로는 알게 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3. 종합하면 이렇다. “임권택의 근심은...관객들을 교훈과 훈습이라는 획일적인 지름길로 이끌어야만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어린 백성’으로 보는 이의 근심”
이런 비판들을 읽고 곰곰이 생각을 해본 결과, 나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장군의 아들>을 제외하고 내가 그의 영화를 한번이라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던가? 없다. 아니, 아예 보고픈 마음도 생기지 않은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한국 최고의 영화감독을 말하라면 서슴없이 임권택을 꼽아 왔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단 한가지. 그가 영화판에서 오래 버텼다는 것. <올드보이>를 만든 박찬욱의 말대로 요즘 영화판은 점점 젊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박찬욱의 말이다.
“신임감독이 한국처럼 쉽게 데뷔하는 곳이 없죠. 첫째, 말을 잘 들으니까. 둘째, 대부분 첫 작품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으니까. 세째, 싸다는 이유도 분명히 있습니다...성공한 작품이 나온 감독도 한두편은 봐주지만 실패하면 폐기됩니다. 또 젊은 관객에게 맞추지 않으면 안되니까 나이 들면 물리적으로 어려워지기도 하구요”
영화판에 종사하는 내 친구에 의하면, <인정사정 볼것없다>를 찍은 이명세 감독이 최근 영화 한편을 찍었는데, 개봉관을 잡지 못해 지방의 일부 극장에서만 영화를 틀었다고 한다. 한때 대표적인 감독으로 꼽혔던 배창호의 경우를 보더라도 임권택의 버티기는 정말이지 놀랍다. 거기에 더해 국제영화제 수상작도 심심치 않게 만들어 내니, 어찌 그를 ‘대표적인 영화감독’에 꼽기를 주저하겠는가. 내가 비굴하게나마 학교에서 안잘리고 버티고자 하는 것도, 그러다보면 누가 날더러 ‘기생충학의 거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까봐서다.
사족: 난 책을 읽을 때 빨간펜으로 줄을 치면서 읽곤 하는데, 맘에 안드는 문장이 있으면 친절하게 고쳐준다. 특히 ‘의’가 여러번 반복된 것은 일본 문화의 잔재여서 아주 싫어한다.심영섭의 글에서 발견되는 글 중 몇 대목을 고쳤다.
“‘서편제’의 5분간의 빛나는 롱테이크”; 이건 ”서편제의 5분짜리 빛나는 롱테이크“로 고치는 게 좋겠다.
“절절한 마음의 길인 맨얼굴의 길들의 이미지의 폭발력에도 불구하고”; 아, 이건 정말 고치기 어려웠다. “절절한 마음을 나타내는, 맨얼굴의 길들이 내포한 이미지의 폭발력에도 불구하고”
“임권택의 휴머니즘의 치유책의 끝은 어디인가?”; "임권택의 휴머니즘을 궁극적으로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 이 말도 해야겠다. ‘제가 바꾼 말은 원문의 뜻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