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지지지지난 토요일, 어머니가 천안으로 건강검진을 오셨다.

아들이 근무하는 곳이라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먼 길을 오신 보람이지만,

그보단 아들과 하루를 보내고픈 게 어머니의 마음이었으리라.

그런 어머니의 뜻을 헤아려 건강검진 후 스케쥴을 멋지게 짜놨다.

 

1차는 부여의 맛집에 가는 것.

그런데 어머니는 건강검진을 한 사람들에게 주는 식권을 받더니

한사코 우리학교 병원식당에서 밥을 드시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공짜 좋아하는 거, 그 시대 어른들의 특기 아닌가.

"어머니, 거긴 진짜 맛이 없어요. 간만에 드시는 건데 제발 좀 그러지 마세요."

십여분의 설득 끝에 어머니는 내 차에 올라타셨다.

천안에 살면 좋은 점은 거기서부턴 어딜 가도 차가 안밀린다는 것.

언제나 밀리는 구간은 천안~서울이지, 그 이하는 아니지 않는가?

토요일 오전임에도 차는 하나도 안막혔고,

천안과 부여 사이의 엄청나게 좋은 길을 달린 끝에 1차 목적지인 구드래돌쌈밥집에 도착.

들어가실 땐 이렇게 우아한 모습.

 

구드래돌쌈밥을 택한 건 어머니가 야채를 좋아하시는데

이 집의 특징이 야채를 엄청나게 많이 준다는 거였다.

"돌쌈밥 두개랑 게장 하나 주세요"라고 했더니 친절한 종업원이 난색을 표한다.

양이 많을거라고. 그분 말씀을 따라 게장을 취소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취소하기 정말 잘했다.

돌쌈밥만 가지고도 배가 터질 뻔 했으니까.

어머니는 산더미같이 놓인 상차림 앞에서 마냥 행복해하셨다.

맛있다,란 말씀을 한 열번 정도 하셨을 듯.

이내 어머니는 이성을 잃었다.

이때쯤 어머니는 더이상 인자하던 평소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먹이감을 쫓는 사자의 모습을 어머니한테서 볼 수 있었다.

 

야채 사진을 미리 안찍어놓은 게 실수.

저 접시에 산처럼 야채가 쌓여 있었다.

그걸 다 드신 후 어머니는 이성을 찾으셨고,

사진에서 보듯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당근 한개까지 드시는 저 모습은 아프리카 초원의 하이에나...?

 

그 다음 예정지는 부소산성이었다.

여길 올라가서 낙화암도 좀 내려다볼 생각이었다.

경로할인을 받는데 매표소 직원들이 이런다.

"아유, 그 연배로 안보여요."

그 직원들은 내친 김에 덕담 하나를 더했다.

"요즘은 어머니들이 그렇게 산을 잘 타시더라고요.

아드님보다 훨씬 더 잘타실 것 같아요."

하지만 배부른 사자는 먹이를 쫓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한 몇발짝 올라가자

"덥다"면서 약수터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5분쯤 쉬고 난 뒤 안되겠다며 산을 내려가는 어머니.

덕담을 건낸 매표소 직원들은 벌써 내려오는 어머니를 보며 당황한다.

너무 놀란 거 같아 그들에게 한마디 해줬다.

 "힘들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더우시데요."

 

그러고 난 뒤 어머니는 계속 집에 가겠다고 우겼다.

어머니의 속내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내가 힘들까봐.

그래서 어머니는 구드래나루터에서 배를 타자는 제안도 거절하셨다.

할 수 없이 마지막 목적지인 궁남지로 향했다.

선화공주를 꼬셨던 백제 무왕과 관계있는 곳.

연꽃이 너무 아름다운, 우리나라에서 손꼽힐만한 관광지.

서울 근교에 그런 곳이 있었다면 정말 미어터졌을 테지만,

그곳은 부여였다.

주차장도 공짜에 사람도 별로 없었기에,

어머니는 마음껏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눈이 작으셔서 잠깐만 감아도 눈이 없는 듯하다^^

이 풍경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정말 행복해하셨다.

"엄마, 오니까 좋지요?"

"그럼, 너무 행복하다."

"근데 왜 안오려고 하셨어요?"

"그거야 너 힘들까봐 그랬지."

어머니는 포즈 하나만큼은 모델 뺨칠만큼 잘 잡으셨다.

내가 요구하는 고난이 동작들을 죄다 소화해 내셨다는.

빈 오두막이 있어서 거기 잠깐 들어갔다.

이내 자리를 잡으신 어머니,

다음번에 여기 올땐 돗자리를 꼭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솔솔 부는 원두막에 있으니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천안으로 가는 길도 차 하나 없이 한적했다.

어머니가 오신다고 아내는 있는 기술을 총동원해 저녁식사를 준비했는데,

아쉽게도 어머니는 구두래쌈밥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배가 꺼지라고 아파트 앞 공원에 삼십분간 다녀온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반찬만 몇 개 집어먹으셨다는.

기차역에 어머니를 모셔다 드림으로써 그날 하루가 종료됐다.

 

오늘 아침, 갑자기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야 민아. KBS에서 부여 나오는데, 구드래나루터에서 배 타는 거 너무 좋아 보인다.

너 왜 그때 배 안태워줬니?"

이런이런, 적반하장이란 이런 경우 아닌가.

내가 했던 수많은 제안들을 다 거부하셨던 어머니가 어쩜 이럴 수 있담.

다음번에 모시고 갈 땐 녹음을 해둬야겠단 생각을 했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LAYLA 2012-06-3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가 정말 행복해보이세요^^

마태우스 2012-07-01 22:5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결혼하고 나서 저런 모습을 만들어드리지 못해 늘 죄송하죠.

순오기 2012-06-3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자 아드니임~~~~~ 어머님이 무척 행복해보이니 저도 보기 좋으네요.
마지막은 역시 확실하게 긁어주시는 마태님!ㅋㅋ

마태우스 2012-07-01 22:5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안녕하셨어요. 진짜 효자는 저처럼 몇달에 한번씩 그러지 않구요, 좀 자주 모시겠지요. 효자란 말 들으니 부끄럽다는...-.-

이진 2012-06-3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께서 어머니를 닮으셨군요~.~
먹잇감을 쫓는 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마태우스님 때문에 빵 터져서 공부가 안됩니다. 기생충 먹는 사진으로 웃겨주시더니 한 번 더 웃겨주시네요. 사진이 흔들려서 정말 어머니께서 이성을 잃고 식사를 하시는 것 같아요... ㅎㅎㅎ
행복한 모자군요. 저도 그렇게 해야지요, 나중에.

마태우스 2012-07-01 22:58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면 어머니한테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더라구요. 너무 오랜 기간 그걸 잊고 살았어요. 님도 아시겠지만 효도는, '나중에'가 안되더라구요.

재는재로 2012-06-30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한 모자 지간이네요 무척 부럽네요 어머님께서 곱게 늙으셨네요 이렇게 늙는것도 복이죠 마태우스님 참 효자시네요 어머님의 미소가 참아름다운시네요

마태우스 2012-07-01 22:59   좋아요 0 | URL
효자라니 부끄럽습니다. 어머니가 절 닮지 않았나요? 건강검진 한다고 한껏 꾸미고 오셔서 그리 보이는 거 같아요^^ 엄니가 미소를 많이 짓게 해드려야 하는데...

2012-07-01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1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2-07-0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모든 사진에서 다 웃고 계시네요 ^^
보는 사람 마음도 참 좋습니다.
마태우스님, 짱!!

마태우스 2012-07-01 23:00   좋아요 0 | URL
엄니가 웃음을 잘 지으시는 편이어요. 특히 제 앞에선요. 잘 웃게 만들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늘 죄송하죠.

레와 2012-07-0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페크pek0501 2012-07-0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어머님은 참 행복한 분이시군요.
저도 마태우스 님과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ㅋㅋ

사진이 모두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선 찍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사진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