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검은꽃>을 읽은지 며칠이 지났다. 그간 시간이 없어 리뷰를 못썼는데, 갑자기 생긴 시간을 이용해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의 얼개를 책 뒤에다 써놓는 습관 때문에 책을 집에다 두고 온 지금은 뭘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원래 리뷰란 것이 책을 다 읽고난 뒤의 느낌을 쓰는 것이라면, 읽다가 끄적거린 메모들에 의존하지 않는 것 더 좋을지도 모른다.


1) 동기

김영하의 <검은꽃>은 이번에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상을 받고나면 판매고도 올라가고, 그에 따라 보는 사람도 많아지기 마련이지만, 난 이 책을 올해 초에 샀으며, 예정상으로도 이맘때쯤 읽으려 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결코 유행에 편승한 게 아니다. 유행 따라 책을 읽는 게 나쁜 건 아니겠지만, 내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굳이 우기는 까닭을 나 역시 모른다.


2) 재미

책을 끼고 다니다 이 책을 읽었다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처음만 재미있어”

어떤 이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처음 100페이지만 좋아”

시작부터 매료되어 책을 읽어나가던 나,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불안해진다. 하지만 100페이지를 넘고 200페이지를 넘겼을 때도 그 책은 여전히 재미있었다. 270페이지까지 읽었을 땐 이런 말도 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재미없다는 거야?”

체 게바라의 투쟁을 연상케 하는 마지막 대목이 기대에 못미친 건 사실이지만, 이 책은 김영하가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말해준다.


3) 양반

난 양반에 부정적이다. 따지고보면 조선을 망친 것도 다 양반들이 아닌가. 능력도 없으면서 큰소리를 치다 임진왜란을 겪었고, 명나라에 대한 지나친 사대주의로 두 번의 호란을 맞아야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왕족은 고종황제의 사촌으로, 그 당시 양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난 저들과 다르다’는 신조를 가지고 평민들을 무시했고, 처자식이 굶게 생겼음에도 일하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열다섯 먹은 자기 아들이 뽕밭에 나가 뽕(정확히 말하면 애니깽)을 따는데도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들이 번 돈으로 차린 밥에 언제나 가장 먼저 숟가락을 들이밀고, 밥도 많이 먹었다. 고종 황제에게 편지 한통 쓰는 게 그가 한일의 전부, 김영하는 이 책에서 양반의 모습을 지극히 한심스럽게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양반을 칭송한다. 주변에 보면 양반의 후예가 아닌 사람이 없고, 나 역시 “서씨는 양반”이란 신빙성 없는 말을 오랫동안 듣고 자랐다. 아버님은 가짜 마패 여섯 개를 서재에 걸어두고 “우리 조상들이 암행어사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순진했던 난 그걸 믿었지 뭔가. 지배층의 비율은 20%를 넘지 않는 법, 일 안하고 밥만 축내는 양반의 비율도 그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 중에는 양반 아닌 사람이 없고, 다들 양반이 못되서 안달인 걸까.


4) 여자

이 책 주인공 중 하나는 여자다. 그것도 엄청나게 이쁜 여자. 굳이 이쁜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까닭은 나같이 미인을 밝히는 독자를 위해서일 거다. 소설 속에서 그 여자가 이쁘지 않았다면 통역이 그녀에게 침을 흘릴 때 가슴이 철렁하지 않았을 테고, 막상 그녀가 통역과 살림을 차리는 것에 안타까워하지 않았을 거니까.


결론: 하여간 난 재미있게 읽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지라 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럽긴 한데, 그건 내가 책들에 대해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정도 재미만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내가 읽는 대부분의 책들에 만족할 수밖에. 하지만 눈이 낮은 사람이 미녀에게 둘러싸여 살 수 있는 것처럼, 책에 대해 기대 수준이 낮은 사람은 평생 재미있는 책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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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4-10-2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준이 낮아요..그런데 미녀는 싫어요..ㅠ.ㅠ..

panda78 2004-10-2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투쟁에 참가하는 부분과 새 나라를 건설하는 부분만 빼고는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김영하 소설 중 제일 재밌었으니까요. ^^

하이드 2004-10-2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제 호출 샀는데, 오늘 검은꽃 사고 싶네요. -_-a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어떤가요??

stella.K 2004-10-28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은 사서 읽을까 해요. 근데 과연 이 책이 마태님의 리뷰 보다 재미없으면 어쩌죠?^^

마냐 2004-10-29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두 스텔라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려다보니..
흐흐. 전 김영하 책은 늘 좋았어요. (몇개 안 읽었다는 건 숨기자)

미완성 2004-10-29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권으로 쓰기엔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었어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허례허식에 목을 매었나하는 생각도 했었구요. 하긴, 입으로는 목을 매네 피를 토하네 해도 정작 누런 위액 하나마저도 자발적으로는 토해내지 못할 인종들이 바로 그 양반이란 인종들 아니겄습니까. 근데 저도 오히려 소설보다 마태님 리뷰가 더 재밌는 걸요.

진/우맘 2004-10-30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읽어보리라 벼르고 있었더니만. 그런데 이거 어쩌나...이제껏 소설부문에서는, 마태님과 나의 취향 차이가 꽤 드러났었는데.^^;;

드팀전 2004-11-0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뒤에 실린 남진우의 평론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로베르트 무질의 <통가>에 나오는 인용도 확 와닿았구요.1년전에 본것 같은데...제 기억에 가장 인상남았던 장면은 한인들이 무속을 행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영화를 본 듯 ....멕시코의 밤장면에 무속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네요.

marine 2004-11-09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아주 재밌게 읽었어요 동인문학상 후보로 "검은 꽃" 과 "달의 제단" 이 올랐길래 두 권 모두 읽었는데 다 재밌어서 과연 누가 받게 될까 흥미진진했었죠^^ scale면에서는 그래도 "검은 꽃" 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이게 되더라구요 조정래가 쓴 "아리랑"을 보면 아주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인물들이 등장해요 줄거리나 캐릭터를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입체적이라 다음 행동 예측이 어려워요 확실히 신세대 소설가답더라구요 사실 김영하의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를 읽고 실망을 많이 했는데 "검은 꽃"은 좋더라구요 역시 단편이 장편보다 더 쓰기 힘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