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의 물음에 대한 답은 본문 중에 있습니다.
십년쯤 전의 일요일, 선배를 만났는데 그날따라 그 선배가 굉장히 슬퍼 보인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선배의 대답이다. “오늘 황신혜 결혼하잖아”
그건 황신혜의 첫 번째 결혼이었다. 에스콰이어 상무 이모씨와 결혼한 황신혜는 오래 가지 않아 싱글로 돌아왔지만, 그땐 이미 그 선배가 결혼한 후였다. 결혼 전이라고 해서 특별한 일이 벌어졌을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자상하고 유머있고 한눈 같은 것도 절대 안파는 그 선배가 바람둥이 재벌2세보다는 훨씬 좋은 신랑감이건만, 이쁜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재벌2세 또는 재미 사업가와 결혼을 하고, 대부분 잘 못살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이보x도 그랬고 고모씨도 그랬던 것처럼.
그 중 하나가 바로 최수지다. 황신혜가 완벽에 가까운 미모를 자랑했다면, 최수지는 서구적인 미모로 한시대를 풍미했다. 방송국에서 그녀를 본 내 동창은 한 사흘간 눈이 풀린 채 살아야 했는데, 그녀의 미모가 워낙 뛰어나다보니 ‘머리가 나쁘다’느니 ‘수능점수가 88점이다(그래서 88 꿈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등의 근거없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질투에서 비롯된 그런 루머들, 하여간 이쁜 사람은 이래저래 피곤한 법이다. 미모를 갖춘 탤런트의 관행대로 최수지는 재미 사업가 윤준일 씨와 결혼을 했고, 당연하게도 둘은 이런저런 문제로 갈라서고 만다. 갈라서는 와중에 둘은 서로 “내가 맞았다!” “아니다 니가 때렸다”고 신문지상을 통해 설전을 벌임으로써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 뒤 난 최수지에 대해서 잊고 있었다.
어제 한겨레를 보니 최수지가 <빙점>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 곁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신문기사를 보니 미군 군의관과 다시 결혼을 했던데, 사진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이뻤다. 옛날의 청초함은 없어졌지만 말이다.
최수지도 연기를 참 못했지만, 황신혜 또한 데뷔 초기 연기력은 끝장이었다. 하지만 황신혜는 인생역정을 겪으면서 한층 성숙했는지, 아니면 대가한테서 연기지도를 받았는지, 지금은 누구 못지않게 연기를 잘한다. <애인>에서 나왔을 때의 모습은 어떤 잉꼬부부라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며, "댁의 정수기는 얼음 안나와요?“라고 우리에게 협박을 해도 그게 협박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비슷한 인생역정을 겪은 최수지가 <빙점>에서 연기가 안된다는 과거의 오명을 씻고 화려하게 재기할지 두고볼 일이지만, 난 옛날보다 나아졌다에 기꺼이 한표를 던지리라. 왜냐하면 <빙점>이라는 드라마의 원작이 워낙 재미있어 웬만큼만 해도 인기를 모을 수가 있을 것이고, 옛날에 그녀가 보여줬던 그 연기보다 더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은 인간이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지만 최수지의 컴백에 열광하는 나와는 달리 다른 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몇 명에게 최수지가 돌아왔음을 전해주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래서?”
“참, 그건 어떻게 됐지?”
이럴 수가. 그들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 이를테면 문근영이나 이나영이랄지, 이영애, 최근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 고현정 등에게 쏠려버려 최수지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게 된 거다. 그래서는 안된다. 최수지 덕분에 젊었을 적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녀를 통해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고, 삶의 고단함을 그녀 때문에 해소할 수 있었지 않던가. 지금의 십대, 이십대는 최수지를 잘 모르고, 알 수도 없다. 삼십대여, 이제 그녀에게 은혜를 갚을 때다. 30대여, 언제 시작하는지는 모르지만 <빙점>을 보자. <천국의 계단>이 짜증이 나서 일년간 드라마를 쉬겠다고 했었지만, <빙점>은 보련다. 최수지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