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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병도 만든다
외르크 블레흐 지음, 배진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의사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먹고사는 게 어려워진다는 얘기, 그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흔히 쓰는 방법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눈썹에 사는 기생충이 발견되었다고 구라를 친다고 해보자. 그 기생충은 사람의 시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인데, 최첨단 기계를 통해서밖에 볼 수가 없으며, 우리나라에서 그 기계를 가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요란하게 선전한다. 모르긴 해도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 거고, 다른 의사들이 그 기계를 장만하기 전까지 기계값의 몇배는 벌 수 있을거다.
그런 일이 있냐고? 있다. 비근한 예가 라식수술이다. 우리학교 선생님 한분이 몇 년 전에 미국에 연수를 가서는 당시는 생소하던 라식을 배워왔는데, 그 선생님은 연수를 다녀오면 최소한 3년간 복무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겨가면서-즉 위약금을 물면서-개업을 했다. 당연히 떼돈을 벌었다. 안과의사 치고 라식 기계 없는 의사가 없게 된 지금은 라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한 일, 모르긴 해도 조만간 새로운 기계가 나와서 히트를 치며 유행을 선도하겠지.
<없는 병도 만든다>의 저자 블레흐는 멀쩡한 사람을 병자로 만드는, 의사들의 수요창출 행위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주위가 산만한 게 당연한 어린 애들을 ‘주의력 결핍 장애’로 진단, 마약 성분이 포함된 약을 먹게 하는 행위를 비롯해서 ‘남성 갱년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남성호르몬을 먹게 하는 것 등등. 이런 행위의 배후에는 거대 제약회사가 도사리고 있으며, 그런 게 너무 만연된 나머지 의사들이 제약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고 그쪽에 유리하도록 립서비스를 해주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주장에 대체로 공감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목도 있다. 고혈압 환자들을 ‘혈압이 조금 높은 것을 제외하고는 건강하다’며 이들에 대한 치료를 비판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인데, 글쎄다. 고혈압은 뇌졸중의 원인이고, 심장병을 일으킬 수도 있는 등 만병의 근원이 아닌가. 콜레스테롤이 높다고 심근경색이 더 잘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나, 골다공증이 골절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하는 주장에서도 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을 성장호르몬으로 치료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다.
“사람들은 키가 작은 아이들이 사회적.정신적인 핸디캡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학문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다” 과연 그럴까. 의사들이 잘못하는 게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 멀리 나간 건 아닐까. 몇몇 대목이 아쉽긴 해도, 저자의 주장은 의사들이 반드시 경청해야 할 것 같다. 의사들이 점점 거대 제약회사의 울타리 안으로 포섭되어 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