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책의 제목은 페이퍼와 상당히 관계가 밀접함.
할머니가 안쓰는 책장을 버리신단다. 안그래도 책장이 없던 차에 잘됐다 싶어서 달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배달된 책장을 보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크기도 작은데다 책장 밑이 튼튼하지 않아, 자칫하다간 ‘넘어진 책장에 깔려죽은 사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이를 대충 쑤셔서 밑을 고이고, 방바닥에 쌓아뒀던 안읽은 책들을 꽂았다. 책장은 이내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었다. 내가 읽을 책이 이리 많았던가 싶어 내용물을 살펴봤다. 읽다가 포기한 책 대여섯권, 어려울 것 같아서 일단 미뤄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봉에서 모니터 요원을 하면서 쓸어온 책이다. 석달간 그 일을 했었는데, 교봉에서는 매달 적립금 10만원에 신간 4권을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주었었다. 말이 네권이지 그냥 원하는대로 가져가면 되었기에, 난 언제나 큰 가방을 가지고 가서 열권이 넘게 책을 쓸어담곤 했다.
그래도 이것저것 따지고 담았기에 읽을 만한 책들이 대부분인데도 아직 읽지 않은 것은 내가 산 책을 다 읽고 그 책을 읽어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 때문이다. 하지만 난 계속 책을 사고, 산 책조차 소화를 못하는 까닭에 그 책들은 언제쯤 읽힐까 하는 맘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학교에도 비슷한 분량의 책들이 읽힐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라딘 분들이 선물로 주셨거나 책을 방출했을 때 찜해둔 책들이 탁자 위에 가득하다. 다른 분들은 ‘난 이렇게 많이 받았다’고 자랑을 하시지만, 디카가 없는 탓에 보여주지 못해 그렇지, 내가 받은 책들을 모두 모은 걸 본다면 다들 놀라서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산 책들? 당연히 소중하다. 누구에게 빌려주고 나면 잠이 안올 정도로 애착이 간다. 다른 분에게서 받은 책들? 새책과 헌책을 가리지 않고 소중하다. 그 책들은 그렇게 받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내가 샀었을 테니까. 반면 내가 교봉에서 쓸어담은 대부분은 ‘있으면 읽고 없으면 말지’ 수준의 책이라, 우선순위에서 그 책들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 책들에게 말한다. 참고 기다려라. 읽힐 날이 언젠가는 있지 않겠는가.
조그맣긴 하지만 책장이 하나 더 생기니 책장정리라는 걸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슬그머니 든다. 내 책들은 4개의 책장에 흩어져서 꽂혀 있는데, 내 딴에는 주제별로 모으려고 노력을 했다. 문학판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 페미니즘 관련 책들, 노무현 관련 서적, 읽고나서 뭐가 뭔지 모르는 것들, 왜 샀는지 후회하는 책들.... 하지만 그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것들도 꽤 많고, 내가 워낙 정리에 약하다보니 무슨 책을 찾으려면 심난해 죽겠다. ‘이게 어디 있지?’ 하면서 책장 4개를 뒤지고, 뒤진 책장을 또 뒤지고, 그러다 결국 못찾고. 아직 천권도 돌파 못했는데 이런다면 문제가 있지 않는가? 앞으로 도래할 천권 시대를 성공적으로 맞이하려면 지금부터 책 정리를 잘해둬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었다.
책정리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우선, 저자 순으로 하는 것.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치명적 문제가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고 책을 찾으면 저자 이름을 몽땅 외우지 못하는 한 다 찾기 어렵지 않은가. 어느 대형서점은 출판사 이름 순으로 책이 꽂혀 있던데, 이건 책과 출판사를 매치시키지 못하는 나에겐 하등 도움이 안되는 방법. 색깔별로 해놓면 멋있지 않을까? 호호, 농담이다. 역시나 제목 순으로 순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갑자기 큰 문제가 생겼다. 막상 하려니 귀찮다는 것. 그리고 그런 건 맞춤형 책장이라도 사놓고 해야지, 지금처럼 올망졸망한 책장이 여기저기 있는 상태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 일단 책장을 맞추자. 그때 가서 제목 순으로 정리를 하자. 근데 언제 책장을 맞춘담? 그야 모르지. 정리할 생각이 들면 그때 책장을 맞추자. 정리할 생각은 언제쯤 드는데? 후후, 그 생각은 늘 하고 있다. 한 3년은 되었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