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책은 본문 내용과 전혀 무관함...
모교 기생충학교실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나도 당연히 참석해서 50년을 축하했는데, 거기서 느낀 점을 써본다.
1. 전망
우리 교실이 이만큼 버텨왔다는 것도 실로 대단한 일이리라. 하지만 기생충이 거의 박멸 상태에 이르렀다는 세간의 인식을 고려할 때, 100주년 행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우리야 기생충이 모든 학문이 근원이며 가장 중요한 학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런 협박이 과연 얼마나 통할까? 내가 기생충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애들을 돌려보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도...설마 교실이 없어지기야 하겠는가? 오래 전에 멸종한 공룡도 연구자가 수천인데...
2. 양복
양복 입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난 유난히 양복을 싫어한다. 학생 때 실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복 바지를 입어야 할 상황에서도 난 사복을 입고 가방에 싸온 양복을 학교에서 갈아입었다. 그래도 결혼식, 문상갈 때, 학회와 강의 때는 양복을 입었었는데, 어째 점점 안입는다. 5-9월 결혼식 땐 “더워서 양복 못입겠다”면서, 강의 때는 “양복을 입고 안입고보다 얼마나 강의를 잘하는가가 중요하다”면서 양복을 입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강의를 잘 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어젠 입어야 할 것 같아서 집에 들러서 양복을 갈아입었다. 행사장에 가보니 60여명 중 양복을 안입은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 입고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그냥 갔으면 50주년을 반대하는 걸로 오인받았을테고, 더 중요한 이유로 다들 양복인데 나만 안입었으면 없어 보였을 테니까.
3. 나이듦
공식 행사의 마지막에 나이드신 선생님 두분의 회고담을 들었다. 77세, 72세를 살아오신 분들이니 얼마나 하고픈 말씀이 많았을까. 먼저 72세된 분이 우린 별로 재미없는 얘기를 아주 즐겁게 말씀하셨다. 원래 주어진 시간은 10분이었지만 20분이 지난 뒤부터 난 시계 보기를 포기하고 그림을 그렸다. 말이 잠깐 끊겼을 때, 누군가가 갑자기 박수를 쳤다. 끝내라는 소리, 하지만 그 선생님은 다시금 말씀을 계속하신다. 그때 생각했다. “영원이란 건 과연 무엇일까”를.
그다음 77세. “시간이 없으니 난 간단히 하겠다” 이 말은 물론 믿으면 안되지만, 사람이란 건 번번이 속으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하게 마련, 가슴을 조이며 연설을 경청했다. 15분쯤 지나자 그 선생님이 이러신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다시 십분이 지났을 때, 선생님은 공포스런 말씀을 하셨다. “끝으로...” 이 말을 들었을 때부터 십분이 지날 무렵, 박수 소리가 났다. 난 퍼뜩 눈을 떴다. 그리고 환호했다. 공식 일정이 드디어 끝난 것. 참고로 내가 그린 그림은 옆에서 물끄러미 내 그림을 감상하던 어떤 분이 “액자에 넣은 뒤 벽에 걸어놓겠다”고 해서 그분에게 드렸다. 음하하하.
4. 술
비싸 보이는 고량주가 테이블마다 하나씩 나왔는데, 마실 때마다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렇고, 2차를 대비도 해야해서 술을 자제했다. 그랬는데...2차를 안간단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난 여유있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40주년 때의 나는 매우 취했던 것 같은데, 그보다 더 큰 50주년에 이렇게 멀쩡히 돌아오다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5. 수건
선물로 참석자 전원에게 타월이 지급된다. 40만원이나 냈는데, 하는 생각에 수건으로 본전을 뽑으려고 타월을 가방에 잔뜩 담았다. 나중에 타월이 모자란다고 해서 손에 든 몇 개는 빼앗겼는데, 묵직한 가방을 들고가는 마음은 뿌듯하기만 했다. 집에 가서 타월을 확인했다. 8개,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셨지만 난 조금 시무룩해졌다. “열개는 되는줄 알았는데..”
그간 타월이 없어 샤워를 자주 못했는데, 앞으로는 깨끗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10년 후에는 더 많이 챙겨야지’ 하다가, 10년 후 내 나이를 계산해 봤다. 윽, 4x세다! 그 나이가 되어서 수건을 챙기고 있으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아깝다. 수건을 챙길 마지막 기회였는데, 좀더 챙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