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8월 29일(일)
누구와?: 초등 친구들과
마신 양: 소주 꽤 마셨지 아마...집에 가니 12시였다.
참고: 일년간 마신 술의 빈도와 읽은 책의 권수가 요즘처럼 비슷한 적이 없던 것 같다. 125번 술마시고 96권의 책을 읽었도다.
1. 비틀즈
존 레논이 죽었을 때, 난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가 죽었다는 걸 난 그해 겨울방학 때 알았다. 우연히 주운 주간지를 보니 존 레논이 죽었는데 전국의 소녀팬들이 우르르 자살을 했다나? 난 참 별일도 다 있구나 하고 혀를 찼다. 가수가 죽는데 왜 지들도 죽지? 하지만 1년 전 있었던 레이프 가렛의 내한공연에서 우리 팬들이 보였던 열광적인 반응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궁금한 건 도대체 존 레논이 누구인가 하는 거였다. 당시 팝송에 심취해 있던 누나에게 물었더니 ‘비틀즈’의 멤버란다. 비틀즈? 비틀즈는 또 뭐지? 기타를 치는 친구로부터 비틀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물론 그 설명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단지 멤버 네명의 이름만 열심히 외웠던 것 같다. 존 레논과 존 덴버를 헷갈려가면서. 그때의 난 부를 줄 아는 노래가 “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외양간 송아지 음매음매 울 적에”라는 동요스러운 노래 뿐이었고, ‘팝송은 아편’이라는 이상한 도그마에 사로잡혀 ‘문화 사대주의’ 운운하며 라디오를 멀리하던 시절이었다.
친구로부터 비틀즈가 대단한 그룹이란 설명을 들었어도, 난 가수가 그렇게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007의 본드걸로 나왔던 바바라 바흐-내가 좋아하는 배우다-가 링고 스타랑 결혼한다는 기사를 봤을 때, “바바라 바흐가 아깝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비틀즈는 점점 내게 대단한 존재가 되었고, 지금은 아예 존 레논을 존경하기까지 한다. 그의 노래를 안듣고 살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고2 때 나랑 친한 친구 하나는 뻑하면 굵디굵은 목소리로 “예스터데이..오마이 트러블...어쩌고..”를 불렀고, 라디오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비틀즈의 노래가 나왔으니까. 어렴풋이 아는 <Let it be>같은 노래도 다 비틀즈 노래라는 걸 알고나서, 난 좀 안타까웠다. 내가 그런 대단한 가수와 14년을 살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건 큰 행운인데, 그를 죽은 후에야 알았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돼?(같은 한탄을 커트 코베인을 알게 된 후에도 했다...쩝)
즐겨듣지는 않지만, 난 비틀즈 노래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들을수록 괜찮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이 나이에 비틀즈에 심취하고 그러지야 않지만 말이다.
2. 엊그제
내 친구 표진인이 존 레논의 카피밴드 소속인데, 그 밴드가 지난 일요일날 시청앞 공원에서 한시간 동안 공연을 했다. 친구들과 함께 가서 들었다. 진인이는 노래를 꽤 잘해서 우리끼리 있을 때는 거의 발군인데, 어려서부터 친 기타도 무지무지 잘친다. 하지만 그의 가창력은 공연장에서 보니 프로는 아니였다. 그가 맡은 건 폴 메카토니 역인데, 그가 노래를 부르는 걸 듣고 있자니 존 레논 역이 정말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진인이는 오랜 기간의 방송출연 경험 덕인지 재치있는 입담과 무대매너로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유일하게 팬들과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밴드의 명성은 진인이 덕분도 꽤 있다는 얘기, 존 레논이 “노래는 못해도 자르질 못한다”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공연이 끝나고 일요일임에도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셨다. 좋은 공연에 좋은 술자리, 진인이는 이전에 홍대앞 클럽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정신과 개업의에다 방송출연을 하는 연예인, 그리고 밴드 멤버까지 하니 무척 바쁠 것 같다. 그가 결혼을 못하는 건 그 생활을 진정으로 즐기기 때문이 아닐까. 주로 웃기는 소리만 하지만, 내가 어려울 때는 힘이 되는 말을 해주는 진인이, 충분히 멋진 녀석이고, 내가 그의 친구라는 게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