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기 시작했다. 박종화가 지은 삼국지를 세 번 읽었고, 이문열 걸 한번 읽었으니 총 4번이나 읽은 셈이다. 하지만 다섯 번째 읽어도 여전히 새롭고 재미있는 게 바로 삼국지, 아주 재미나게 1권을 읽어 버렸다. 다들 알겠지만 세 판본은 저마다의 특징을 지닌다.
-박종화본: 문장이 너무 상투적이라 지겨운 맛이 있다. 예컨대 “어마 뜨거라 하고 도망쳐...” “여포는 대노하여 방천화극을 들고...”
-이문열본; 자신이 해석을 달았다. 예컨대 화용도에서 관우가 조조를 놔줬다고 공명한테 혼나는데, 이게 둘간의 2인자 다툼이 마무리된 거라는 식으로.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황석영본: 황석영은 주장한다. 작품에 자신의 해석을 붙이는 건 작품을 훼손시키는 거라고. 그러면서 그는 원전에 충실한 삼국지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박종화 것보다 문장이 현대적이라 읽기에 지루하지 않다. 특히 그림이 아주 멋지다.
1권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어서 여기 옮긴다. 황제 행세를 하던 동탁을 죽이려고 여포와 병사들이 궁궐에서 대기하고 있다. 황제가 동탁에게 왕위를 계승한다고 거짓 밀서를 보냈고 동탁은 궁궐로 간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러 가지 위험신호가 간다.
-동탁이 타고가던 수레바퀴가 부서짐. 말로 바꿔타고 가는데 고삐가 끊어짐. 동탁이 묻는다. “이게 무슨 조짐인가?”
동탁을 죽이려는 음모에 가담한 이숙이 둘러댄다. “한나라의 제위를 이어받으시는데 옛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어 장차 보석으로 장식한 수레와 황금 안장을 얻으실 징조”
캬, 정말 그럴듯한 변명이 아닌가.
-갑자기 광풍이 크게 일고 검은 안개가 하늘을 덮는다. 동탁, “무슨 조짐인고?”
이숙 said, "주공께서 용위에 오르려 하시니, 붉은 광명과 자줏빛 안개가 일어....“
용이 올라가는 것으로 둘러댄 이 변명도 기가 막혔다.
-애들이 노래를 부른다.
천리초가 제아무리 푸르고 푸르러도
열흘을 못넘겨서(十日卜) 죽고 말리라
‘천리초(千里草)’는 동탁의 성인 ‘동(董)을 가리키고, ’십일복((十日卜)‘은 ’탁(卓)‘을 일컫는 말, 즉 동탁이 죽는다는 소리다. “저 노랫소리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숙이 또 둘러댄다. “유씨는 망하고 동씨가 일어난다는 뜻이옵니다”
“한나라가 망하고 새 왕조가 창건된다”는 이 어거지도 비교적 적절했던 것 같다. 문제는 다음.
-궁궐에 들어서는데 흰 두건을 쓴 도인의 모습이 눈에 띈다. 손에 긴 막대를 잡고 있었는데, 막대 위에는 베에다 입 ‘구(口)’자 두 개를 각각 써서 붙들어맸다. ‘구(口)’자가 두 개니 여(呂)고, 그것을 베에 썼으니 ‘포(布)’, 즉 여포를 경계하라는 뜻이다.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서 있는 겐가?”
더 이상 둘러댈 게 없었던 이숙, 이렇게 대답한다. “미친 놈 같습니다”
난 이 대목에서 마구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동탁은 죽는다. 장사도 못지낸 채로. 동탁의 부하가 나중에 시체를 수습해 장례를 치르려 하자 “뇌성벽력과 함께 큰 비가 내리”고 관이 “벼락에 맞아 박살이 나서 시체가 관 밖으로 드러나버렸다” 두 번 더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고, 동탁의 살점은 벼락을 맞아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동탁에 대한 하늘의 노여움이 그만큼 컸던 탓이리라” 이게 말이 되는가. 그렇게 노여워한다면 왜 동탁이 죽기 전에 그토록 빈번하게 위험 신호를 보냈을까. 동탁이 알아차리고 숨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이제 9권 남았다. 8월이 가기 전에 다 읽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