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가 좋다. 그런데 가끔은, 내 맘과 달리 엄마에게 못할 때가 있다. 그러고나면 자존심 때문에 삐진 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그게 2-3일을 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 자신이 변태로 보이면서 스스로가 미워 죽겠다. 엄마와의 갈등은 대개가 내 잘못에서 기인하지만, 엄마라고 해서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우리 엄마의 특징을 몇가지만 적어본다.

1) 적반....하장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 엄마는 평균 수신률 5% 이하를 자랑하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전화 연결이 가장 어려운 분이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이가 전화를 안받으면 꼭 한마디씩 하신다. 진동이 약해서 전화를 못받으면 "너 왜 전화를 안받고 그러냐?"고 따지는 우리 엄마. 오늘 아침에 밥을 먹는 동안 민수엄마-십중팔구 중매장이다-에게 전화를 하신다. 그런데 안받으셨나보다. 두 번째 통화에선 연결이 됐다. "여보세요"라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엄마가 대뜸 하시는 말, "아니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어? 네 번만에 겨우 통화가 되네"
놀란 나머지 밥알이 기도로 들어갔다....

2) 기억... 상실
"민아, 선 좀 봐라. 아주 이쁘데"
막상 보니까 안이뻐서 엄마에게 따졌다. 엄마의 답이다.
"이쁜 게 뭐 그리 중요하냐? 늙으면 다 똑같지. 그리고 우리 아들이 예전엔 안그랬는데 변했네?"
미모 밝히기로 소문난 나의 정체를 어머님만 모르셨나보다.

3) 기억상실(2)
신문을 보시던 엄마, "세상에 개 버리는 사람이 그렇게 만단다. 어떻게 키우던 개를 버리냐"
나, "그러게요"
얼마 안지나서 엄마가 하시는 말씀, "민아, 벤지를 언제까지 키울 거냐. 이제 그만 안락사 시키자"

4) 위기를 모면하는 거짓말
엊그제 선을 보고나서 어땠냐고 묻는 엄마에게 내가 했던 대답은 이랬다.
"사람은 좋더라. 근데 미모가 좀 그렇더만"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려던 난 우리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듣고 바닥에 주저앉아 두발을 저었다.
"중매장이한테 '우리 아들이 너무 좋다고 또 만날거다'라고 얘기했다"
황당한 나, "내가 언제 그랬어!!! 그럼 그 여자가 전화 기다릴텐데...아이 참.... "
어머니의 대답, "아니 왜 얘가 엄마한테 큰소리지? 내가 전화를 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려고 생각 중이라니까"
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하늘에 맹세해?"
진실인 경우 "당연하지"라고 하시던 어머니는 "왜 그런 걸 가지고 하늘을 찾아?"라고 하신다. 이번뿐이 아니라 엄마는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너무너무 잘하신다. 아, 귀여우신 우리 엄마....

5) 상황에 안맞는 변명
두시간 동안 전화를 하시다 끊으신 우리 엄마, 내가 그랬다.
"엄마, 엄마랑 나는 한집에 살면서도 너무 대화가 없어"
엄마의 대답이다. "무슨 소리냐? 내가 전화를 한 게 아니라 전화가 온 걸 어떡해!!"
아, 엄마, 우리 엄마!

6) 일관성 결여
예전에 사귀던 여자를 줄기차게 반대하시면서 하신 말씀, "반대하는 결혼은 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철학이다"
하지만 엄마는 매제 집안이 줄기차게 반대를 함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을 지금의 매제에게 시집 보냈다. 엄마한테 물었다. "반대하는 결혼은 안시킨다며?" 엄마 왈, "그게 같냐??"
난 잘 모르겠다. 뭐가 다른지...

엄마가 눈이 아프시다며, 눈을 좀 봐달란다. "전화해 줄 테니까 xx 안과 가!"라고 하면서 눈을 봤다. 눈 안쪽보다 눈 밑의 주름이 더 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엄마도 많이 늙었구나..."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더 이상 젊고 멋진 엄마가 아니다. 오매불망 내 결혼만을 바라는 어머니, 마음이 다급해졌는지 이제부터 선을 보면 10만원씩을 주신단다. 내 행복만 추구하고 사는 내가 엄마의 바램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中伏(중복)이란다. 오늘 저녁은 엄마랑 할머니를 모시고 닭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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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4-07-30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1등일까요??
마태우스님,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그리고, 아주 착한 아들이셔요..*.*

미완성 2004-07-30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1등...!
마태님, 선 열심히 보세요. 한 번에 10만원씩이면, 덩말 해볼만한 장삽니다..!

털짱 2004-07-3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의 일상을 이렇게 소상히 알고 있는 아들이라면, 장가보내고 나서 혼자 좀 우실 것 같네요. 아마, 당장이라도 "엄마, 이번에 선본 여자 너무너무 맘에 들어, 결혼할래!"해보세요. 드러내놓고 서운해 하실거예요.

sooninara 2004-07-3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다가..어머님이 날짜까지 다 잡아오시면..마태우스님은 결혼 할수밖에 없어요...ㅋㅋ
털짱님이 책임지실거죠?.

털짱 2004-07-3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럼 그 아가씨가 저였다고 우기시면... 어머님께서 그냥 "그래, 장가가지마라, 나랑 그냥 살자." 그러지 않을실까요? 저야 책임지라면 고마울 밖에...
상상을 해보니 즐겁네요.
"마태우스! 내가 털에는 윤활유를 발라야 한다고 했잖아요! 뭐야, 참기름이나 바르고 말이야... 빨리 가서 밥이나 해요!"
이히히히. 진짜 불쌍하겠다.(^.,^)

미완성 2004-07-30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 살다가 힘들면 마태님을 제게 넘기세요-_-
제 젊은 혈기(!)로 마태님을 회춘시켜보내드릴테니;;

sweetmagic 2004-07-3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자존심 때문에 삐진 상태를 유지하려 하고, 그게 2-3일을 갈 때도 있다...."
아이고 님..... 대체 나이는 어디로 잡수십니까 ㅠ.ㅠ;;
님은 좀 더 크셔서 장가가셔야 겠습니다.

진/우맘 2004-07-3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중복, 그랬구나...-.-;; 잊어버리고 있었네. 이를 어쩐담....
닭 삶기엔 인간적으로 너무 덥다구요~~~TT

2004-07-30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7-30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07-3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는 오늘 새벽 6시도 안됐는데, 냉동실을 한참 뒤지시더라구요. "왜 그래?"했더니, 뭐 먹을거 없나 뒤져보는 거래요. 그게 저에겐 되게 웃겼어요. 마태님은 잘 이해 못하실지 모르겠지만...마치 먹을게 없어 끼니 걱정하는 하는 거 같잖아요. 모순 같아 보여서...그러더니 아침에 우거지국 끊이셨는데, 그게 8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었죠. 암튼...안 웃기죠. 나만 아는...흐흐.
어머니 참 재미있으신 것 같아요. 재밌게 쓰셔서 그런가? 마태님 어머니한테 잘 하시는 분 같다는 거 충분히 느껴져요. 장가만 가시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저도 그래요. 엄마한테 못하는 것 같지 않은데, 엄만 절 못 마땅해 하시죠.
요즘 코멘트 달기 좀 버겁네요. 더워서 그런가...?

책읽는나무 2004-07-3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혀~~~
어머님의 주름살을 자꾸 님이 더 만들어드리고있는건 아닌겐지??
님도 어머님과 싸우면 며칠갑니까??..*.*
정말 스윗매직님과 동감입니다....ㅡ.ㅡ;;;

nugool 2004-07-3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엄마들은 나이를 드시면서 점점 더 귀여워지시지 않습니까? ^^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마태우스님 어머님께서도 귀여우세요.. )

마태우스 2004-07-3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굴님/그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이든 분에게 귀엽다는 건 결코 욕이 아니라는....
책나무님/앞으로는 안그럴께요. 흑흑. 제가 철이 없었어요.
스텔라님/날씨가 더워서 코멘트 쓰기가 버겁다는 님의 견해에 약간 동의합니다. 더위는 사람의 의욕을 빼앗아 가더군요.
따우님/저도 그 생각을 했는데요, 그러려면 중매장이와도 타협을 해야하고 그에게도 커미션을 줘야 하거든요.... 그러면 남는 게 얼마 없다는...
진우맘님/하핫, 저는 닭 먹었지요. 우리집 앞 삼계탕집에서는 길거리에 간이식탁까지 설치하는 등 북적북적이던데, 다음날이면 거기서 닭이 우는 구슬픈 소리가 들린다는..
스윗매직님/으음, 전 매직님도 그러신 줄 알았는데... 저만 그렇군요. 반성합니다.
멍든사과님/사과님의 젊음과 미모는 익히 들어 알지만, 제가 과연 회춘할 수 있을까요?
털짱님/아, 님의 코멘트는 언제나 감동적입니다.
수니나라님/세상이 저를 점점 결혼 쪽으로 몰고 있군요. 으음....
쥴님/늘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 쥴님, 님의 예리한 지적에 많은 것을 깨우쳤습니다.

sweetrain 2004-08-0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태님을 회춘시켜 드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