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번째
일시: 7월 17일
장소: 서울의 홍천숯불갈비
누구랑?: 미녀들과
마신 양: 겨우 기본만...

"오오오오---"
밤 10시 반 경 내 전화기에서 타잔이 코끼리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알람 소리다. 이 전화기는 참으로 성실해서,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5분마다 이짓을 반복한다. 밤 10시 반에 알람을 맞춰둔 까닭은 뭘까? 다 어젯밤 때문이다.

난 그저께, 그러니까 7월 16일날 친구들과 먼 곳에 놀러갔다. 하지만 난 7월 17일 토요일날 서울에서 선약이 있었다. 그래서 난 어제 열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서 술을 마신 뒤 다시 내려가 친구들과 합류하는 깜찍한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예정대로 밤 9시 열차를 탄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막상 잠을 깨보니 내가 내려야 할 지점을 이미 지난 상태. 승무원에게 사정을 했지만 기차를 세울 수는 없단다. 그래서 난 그 뒤로도 한시간을 넘게 기차에서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아마도 내 휴대폰 두 개에서는 모두 여섯 번의 알람이 울렸을 거다. 그리고 타잔 소리는 그 뒤에도 계속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렸을게다. 하지만 그 알람이 날 깨우기엔 내가 너무 피곤했나보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서 가는 자의 마음, 그건 일을 봤는데 휴지가 없을 때의 곤혹스러움과는 상대도 안되며, 설사가 급한데 마땅한 화장실이 없을 때의 안타까움보다도 몇배 더 잿빛이다.

종착역에서 내린 뒤 친구들이 있는 먼곳까지 택시를 탈 생각을 했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기차도 없고, 버스도 끊겼다. 망연자실 서있다가 근처 <김밥천국>에서 만두라면을 먹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만두라면은 맛있었다. 2천원을 내고 나오니 웬 할머니가 접근한다. 자는데 2만5천원이란다. 예상했던 3만원보다는 싸서 할머니 삐끼를 따라갔다. 아가씨가 필요하지 않냐는 걸 단호히 거절했고-그럴 거면 택시 타고 먼곳에 간다!-방에 가봤더니 선풍기는 덜덜거리고-바람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TV는 지직거렸다. 침대 시트는 웬만큼 무던한 사람이 아니면 눕기 힘들만큼 더러웠다. 샤워기에서는 물이 시원치 않게 나왔으며, 샤워를 하는 내내 애들 주먹만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날 째려봤다. 실수로 물을 튀겼더니 덤벼들 태세, 저게 정말 바퀴벌레인지 의심이 갔다. 친구들은 나름대로 아쉬웠겠지만, 난 나대로 편치 못한 밤을 보냈다. 책을 읽다가 두시에 잠이 들었지만, 잠에서 깬 건 4시 반. 난 여관을 나와 그 먼곳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그리곤 흠칫 놀랐다. 7-17, 즉 7호차 17번이 내 좌석이다. 그 좌석번호는 내가 7월 17일날 그곳에 갔어야 한다는 질책이 아니었을까.

102번째
장소: 더 먼 곳..
마신 양: 역시 기본만...
좋았던 점: 바다를 보니까 좋았다. 올해 처음 본 바다였다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4-07-19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엑스파일 전화에서는 "전화받어 이~씨발놈아!! 공공장소야~ 이씨발놈아!!"하고 울리는데 타잔소리도 재밌겠네요.ㅋㅋ(앗!! 알라디너들의 눈빛이 따갑다. 죄송~~^^::)

비로그인 2004-07-1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벌 2세가 그런 곳에서 주무셨다니..많이 놀래셨겠습니다. 그 기차에 제가 있었다면 전 서민님들 흔들어 깨웠을겁니다. 피곤을 무릅쓰고 일어나야 하는 사정이 있기에 맞춰놓은 알람일테니까요. 바쁜 주말 그래도 잘 보내시었네요. 바다를 보았으니^^

미완성 2004-07-19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워요.....
저도 버스에서 졸다가 회사에 50분 지각했던 경험이 있어서....ㅠ.ㅠ
누군가 깨워드렸음 정말 좋았을텐데.....슬픕니다. 야광별예술가님(처음 뵙습니다..(__))같은 분만 기차 안에 계셨더라도 깨워드렸을텐데.......
많이 피곤하시겠어요

tarsta 2004-07-1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참.. 버스에서 눈을 떴는데.. 아직 목적지가 한참 남은거에요. 그래서 다시 자려고 했거든요. 불현듯 뭔가 이상한 느낌에 다시 눈을 떠보니까.. 반대편쪽인거 있죠. 회차해서 다시 들어가는 방향이더라구요.
제일 가벼운 걸로 풀은거니까. 우리 나중에 졸아서 지나친 이야기만 잔뜩 모아봐요. ;;;

연우주 2004-07-1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고초를 겪으셨다니 이래저래 죄송하네요. 제가 괜시리 오시라고 강권했군요. 죄송합니다. 마태우스님..ㅠ.ㅠ

2004-07-19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eylontea 2004-07-1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 차라리 가지 마시라고 더 열심히 붙잡을 것을 그랬군요.. ㅠ.ㅜ
7-17좌석...이런~~~ 쯧~~!!

비로그인 2004-07-19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사과님 안녕하세요, 반가와요^^
근데 이렇게 글과 상관없는 코멘트로 인사나눠도 되는건가요? 저의 이름을 불러주시니 저도 멍든사과님과 인사 나누고 싶은데, 해도 되는지 망설였어요^^; 전 서재도 없고 알라딘은 익숙치가 않으니 어떤 분위기인지를 몰라서...^^; 앞으로 많이 가르쳐 주세요. 감사합니다. 꾸벅.

starrysky 2004-07-19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같은 일을 당했다면(?) 아니, 스스로 자초했다면 겁많은 저는 경찰서로 달려가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생각지도 않던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라니.. 부르르.. -_-;;;
알라디너분들과의 즐거운 만남 뒤에 그런 아픔이 있었을 줄 정말 몰랐습니다. 무사히 생환(?)하셔서 다행이예요.

tarsta 2004-07-19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글만 봐도 너무 겁나고 힘드네요. 6학년이라자만 어린아이인데..버스에서 한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니 고생 많으셨겠어요. 길찾는거, 버스 노선 찾는거 정말 너무 어려워요. -_-;

sooninara 2004-07-1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할말이 없습니다^^

털짱 2004-07-19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페이퍼가 한편의 시트콤이라면
줄님의 코멘트는 한편의 동화같네요.

진/우맘 2004-07-19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음...왠지, 혼자 고소해 하고 있는^^;;)

갈대 2004-07-19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낭패스러운 상황이었네요. 마태우스님은 삶이 시트콤입니다^^

마태우스 2004-07-19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제가 원래 안그랬는데 알라딘에 가입하고 나서 그렇게 되었다는 설이....
진우맘님/그 웃음이 제 가슴을 아프게 하는군요. 으으윽.
털짱님/싫어요. 저도 한편의 동화 할래요!!
원피스가 매력적인 수니나라님/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tarsta님/맞아요. 6학년에게는 너무 아픈 기억이었을 듯.... 졸아서 고생한 얘기 한번 모아보자는 데 콜!!
스타리님/님은 경찰서에 가셔야 합니다. 미모는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야 하니깐요!!
쥴님/님의 미모 뒤에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야광별예술가님/여기서 뵐 때마다 반가움에 가슴이 설렙니다. 그리고...님은 아직도 님의 서재를 깨끗하게 보존하고 계시더군요. 쓰기만 하면 여기 평정은 시간문제면서...
실론티님/아닌 게 아니라 그 좌석번호를 보는 순간 머리칼이 쭈뼜했다는...
연보라빛우주님/아니어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전 님을 봐서 반가웠다니깐요!!! 자꾸 그러심 울어버릴 겁니다.
폭스바겐님/따가운 눈빛을 보낸 사람의 하나로서 드리는 말씀, '역시 님은 멋지십니다"
멍든사과님/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는 님으로부터 이 사회가 얼마나 따뜻한 곳인가를 느낍니다.

클리오 2004-07-1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여관의 상황 생각만해도 끔찍합니다. 다른 곳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을 듯 한데... 그 종착역 어디예요? (종착역들 중 하나가 고향이라서리 --;;)

마태우스 2004-07-1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lio님/종착역은 결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별 비밀도 아닌데 님이 궁금해 하시니 갑자기 안가르쳐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그리고 5천원만 더 주면 좋은 여관을 잡았을 텐데, 제가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멍 하니 서있다가 삐끼 할머니를 따라 갔지요.

클리오 2004-07-1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끼 '할머니'라니.. 미모에 홀린 것도 아닐테고... 종착역은 사생활 차원인데 굳이 꼭 알아야겠어서 여쭤봤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종착역에 대한 항의차원에서.. ^^ (한발 빼면, 뭔가 허전해하시지 않을까나~)

마태우스 2004-07-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lio님/앗 치사하게 한발 빼시다니! 궁금해 해야 제 작전이 성공하는데...

sooninara 2004-07-19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요...이미 다른 서재쥔장들은 안궁금해 하는구만요^^
그때 기차표를 뺏어서 찢어버리고 올나잇모드로 들어가 버릴것을...흑흑..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못했다니깐요(누구?=당연히 우리집이죠)

클리오 2004-07-19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제 작전이 성공하고 있는 듯 합니다.. 흠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