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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대의 초상
이윤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평점 :
탁월한 번역가이면서 소설가인 이윤기, 그가 쓴 <내 시대의 초상>을 구입한 지 6개월만에 읽었다. 200페이지 남짓의 짧은 소설이지만 그의 책은 왠지 무게감이 느껴져 선뜻 집어들기가 꺼려진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고 나면 재미도 쏠쏠하고, 두고두고 여운이 남는 게 이윤기의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도 그랬다. <진중권의 현대미학강의>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머리를 식히려고 집어들었다가 이틀에 걸쳐 다 읽어 버렸다.
이 소설은 연작 소설이다. 조세희님의 <난쏘공>이 그런 것처럼, 단편으로 끝나지만 그 단편들이 서로 연결이 되는 것. 연작이긴 해도 소설은 소설이건만, 난 이 이야기들 중 얼마가 저자 자신이 겪은 이야기인지가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저자 자신의 이야기로만 느껴져,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로 읽혔다. 그건 그만큼 각 소설들의 리얼리티가 뛰어나다는 얘기일게다.
다 읽고나니 머리가 묵직하게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리뷰를 쓰려니 막막하기만 하다. 원래 난 책을 읽는 동안 책 뒤에다 리뷰 쓸 거리를 잔뜩 써 놓는데, 이 책의 맨 뒷장은 텅 비어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끔 새까만 종이로 뒷장을 마무리한 탓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거다!' 하는 게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고 썼는지 참고하려고 알라딘을 뒤졌더니 이럴 수가. '이 책의 첫번째 마이리뷰어가 되어 주십시오'라고 나와있다. 유수신문 4군데서 이 책을 다뤘지만, 책의 세일즈 포인트도 이윤기의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461이다.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어 불후의 명작 <대통령과 xxx>을 찾아봤다. 세일즈 포인트 2121, 한창 때에 비해 떨어지긴 했지만 대 문학가인 이윤기의 책보다 앞서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이 '문학부문 2004년 상반기 베스트 100'에 들었다는 사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물론 기쁨의 웃음이다. 내가 사재기를 했던 게 이렇게 놀라운 금자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쁘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맘도 있다. 맘을 독하게 먹고 사재기를 좀더 열심히 했다면 베스트 50에도 들 수 있었을 텐데.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저자의 농간에 흔들릴만큼 우리나라 책 시장이 작다는 것. 나오는 책의 종류나 권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0등 안에 드는 출판대국이 맞지만,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고, 그나마도 몇몇 책들에 편중이 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고. 아마존처럼 몇십만권이 팔려야 100위 안에 들 수 있다면 이런 사태는 없었을 텐데. 나도 책을 읽고 사람이 된 경우라서 하는 소리인데,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왕 읽는 것, 매스컴과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자기만의 눈으로 책을 골랐으면, 그래서 <대통령xx>이 순위에서 빠질 수 있었으면 더 좋겠다.
다 쓰고나니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것도 리뷰가 될 수 있을까? 이윤기님이 부디 이 리뷰를 안보길 바란다. 참고로 제목을 '녹차 냄새가 난다'고 한 이유는, 제목을 안쓰면 리뷰가 안올라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녹차를 쏟아서이기도 하다. 강한 냄새가 아니면 냄새를 못맡는 나로서는 그 책에서 녹차냄새가 나는지 어쩐지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