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에서, 아니면 서점에 나가서 책을 둘러보다보면 마음에 드는 책이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꼭 읽어야 할 책이라면 한권도 주문을 하지만, 대개 두권, 세권, 네권이 모아지면 그때 주문을 한다. 책을 읽는 속도는 한계가 있지만, 사는 속도는 한계가 없다. 맘에 드는 책이라도 읽는 데 하루, 이틀은 소요되지만, 맘에 드는 책을 사는 건 하루에 열권이라도 가능하니까. 게다가 내가 마음이 관대하기까지 해, 웬만한 책은 다 맘에 든다. 그 결과 앞으로 삼십일간 책만 읽어야 방바닥에 쌓인 책들을 전부 책장에 꽂을 수 있을만큼-난 읽기 전에는 책꽂이에 들여놓지 않는다-읽을 책이 밀려버렸다. 버림받은 책들은 바닥에서 애처로운 눈으로 날 바라본다. 경쟁력이 있는 책들은 "올해의 첫책" 혹은 "이달의 첫 책"에 자신을 선택해주기를 기다리며 요염함을 뽐내고, 심지어 로비까지 하지만, 그렇지 못한 책들은 제발 관심만이라도 가져 달라고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보니 일년이 넘게 바닥에 방치된 책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나란 놈은 학생 때부터 산 책은 대충 다 읽었을만큼 본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라, 바닥에 있는 책들도 언젠가는 읽히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주변 동료들이 하나씩 불려가는 걸 보면서 바닥의 책들은 지금도 읽힐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알라딘 내에서 책 바꿔보기가 유행하고 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책이라는 걸 거의 읽어본 적이 없는 나는 서재 주인들이 방출하는 책들을 내게 산재한 수많은 빈곳을 채울 기회로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책을 주문하고, 또 선물을 받고 나니 내 직장에도 책이 높이 쌓여버렸다. 갑자기 고민이 생겼다. 어느 책부터 읽어야 할까 하는 고민. 책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내쉬는 한숨은 무시할 수 있지만, 책을 내게 보내준 주인장들은 자신이 느꼈던 감동을 나 역시도 느끼기를 기대할 텐데. 예컨대 <악녀>를 읽고나서 "이 책은 xx 님께서 주신 책이다"라고 쓰면, <악마같은 남성>을 주신 주인장이 "내 책은 왜 안읽지?"라고 서운해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공평을 기하기 위해서 난 직장에 쌓인 책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직 읽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흘러 주인장들의 기억이 '내가 무슨 책을 방출했더라'라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읽을 생각이다.
모 인터넷 신문에 실린 내 인터뷰를 보고 어떤 분이 싸인이 담긴 내 책을 줄 수 있냐고 하셨다. 책과 직장을 초록색으로 뒤덮을만큼 내 책이 많은지라, 흔쾌히 한권을 보내줬다. 메일이 왔다. 답례로 자신이 쓴 책을 보내겠단다. 난 이렇게 답장을 썼다.
[어머나, 님도 저자시네요? 님 책을 제가 제일 먼저 읽고 알라딘에 리뷰도 쓸께요]
그리고 책이 왔다. 저자 사인과 함께. 하지만 이럴 수가. 책은 가야의 역사에 관한, 매우 어려운 거다. 마한, 진한, 변한 얘기가 나오고, 금관가야, 임나일본부가 나온다. 어제 몇장을 보다가 잠이 들어 버렸는데, 다 읽으려면 한 일주일은 걸릴 듯 싶다. 읽을 책은 갈수록 밀려 가는데 갑자기 웬 가야? 하지만 좋게 생각하련다. 책을 통해 내가 잊고 있던 가야사를 알게 되는 건 분명 좋은 것일 테니까. 방화관리자 교육을 받고난 뒤 불조심 얘기만 했듯이, 이 책을 읽고 나면 가야 얘기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