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왕이 탄 가마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했다. 왕은 그야말로 높은 존재였고, "고개를 들라"고 하기 전에는 얼굴을 들 수도 없었다. 조선 역사를 뒤집어봤을 때, 왕이 그들에게 특별히 해준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왕의 얼굴을 옛날에는 '용안'이라 불렀다. 용안, 즉 용의 얼굴이란 뜻이다. 왕의 말소리는 '옥음'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왕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낸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옥같은 소리'라고 불렀던 거다. 왕의 옷은 '용포'다. 용의 옷이란 소리다. 왕이 궁녀 중 하나랑 자면 '성총', 즉 왕의 은혜라고 했다. 늙은 왕이 젊고 이쁜 궁녀랑 동침하는 게 은혜를 내리는 거라니, 은혜 내리고 싶은 사람들, 겁나게 많을거다. 사극에서 보면, 신하들은 왕이 무슨 말만 하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해댔다. 왕의 모든 것은 그러니까 용, 옥, 성 이런 말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왕의 거시기는 뭐라고 불렀을까? <정관정요>를 읽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옥봉'이었다. 옥봉, 옥같은 막대기. 정말 죽이지 않는가? 용봉보다야 낫지만, 그걸 그렇게까지 불렀다는 게 나로서는 어이없다. 그뿐이 아니다. 그 책에 의하면 왕의 변소는 거의 초호화 궁전같아, 일을 마치고 나면 궁녀가 기다렸다가 거시기를 닦아 줬으며-부끄럽지도 않나?- 변소 안에는 왕이 쉴 목적으로 침대 같은 것도 비치해둔 모양이다. 대변, 소변 보는 게 뭐가 힘들다고 침대에서 쉰담? 후후, 그건 아마도 소변을 보면서 욕정이 생기면 궁녀랑 자기 위해서일게다. 중국의 몇 안되는 여자 황제인 측천무후도 왕의 옥봉을 닦아주다가 눈이 맞았고, 결국엔 왕이 되지 않는가.

시대는 변해서 지금은 보통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 '용안' 대신에 주위 사람들은 노무현이 TV에 나오면 이런 표현을 쓴다. "저 쌍판 안보니까 좋더만" "저 낯짝을 3년 반이나 더 봐야 해?" '옥음'은커녕, 노무현이 하는 앙탈은 '투정'이나 '막말'로 표현된다.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법이니, 앞으로 나오는 대통령들도 그전 대통령들같은 대접을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러니까 노무현은 우리가 대통령에게 가졌던 권위주의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주는 긍정적인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걱정이다. 그게 그의 유일한 업적이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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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7-11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대통령 욕 하다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던 시절도 있었잖습니까. 업적이라면 업적입니다. 설마....유일한 업적까지야...-.-;;

진/우맘 2004-07-11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호홋~~ 오랜만에 연이은 일등으로 마태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얼씨구나~

미완성 2004-07-11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추천1은 제가 한 겁니다 (강조강조!!)
전 정말 님께 많은 것을 배웁니다. 칼의 노래에 대한 님의 리뷰에서 제가 얼마나 깜짝 놀란 줄 아십니까. 전 산문문학의 정수,까지만 느꼈지 마초적인 시선에 대해선 정말 까막눈처럼..ㅠㅠ
님은 럭셔리엘레강스핸섬가이의 완결판이십니다-_-V

마태우스 2004-07-11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진우맘님과 요즘 부쩍 친해진 듯... 우리가 과거에 전쟁을 하던 사이였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져요.

마태우스 2004-07-11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코멘트 올리는 사이 멍든사과님이... 진우맘님과 제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이유가 뭐죠?라고 하려는데, 코멘트가 제 칭찬이라서...하핫. 다시금 작성해야겠네요. 멍든사과님, 님도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미녀의 유머는 더 웃긴다는 것을 비롯해서요!

밀키웨이 2004-07-11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봉이라고 해도 될 것을 왜 옥봉이라고 했을까?
전희 포함 1분짜리 왕도 있었을테니 차마 '용'자를 붙이기 그랬을라나요?
어쨌거나 옛날의 왕들은 정말 대단하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왕이기에 그의 똥까지 먹기도 했을까요?
먹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꼬?
복이나인들은 똥 닦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도 향기라고 생각하며 감지덕지? ㅋㅋㅋ

그나저나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적어도 쌍판 내지는 저놈..이라는 단어는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4-07-11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YLA 2004-07-11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텔레비젼에서 보니 어릴적부터 궁녀들이 닦아주기 때문에 부끄러움이라는 개념이 없었데요..오호
그리고 또 정치인들 이름을 막 부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고 그건 우리나라 국민성때문이라는 말도 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사실. 어른들이 정치인들 이름 막부르고 무슨 새끼, 무슨 놈 등등 하는 걸 보며 그 자식들은 자라고 또 그 자식들은 정치인들에게 그런 호칭을 쓰는게 당연시 되는 분위기 인거 같아요.
그런데 그건 안좋은거 같아요.
명절때마다 모이면 작은아빠 큰아빠 담배연기 자욱하고 고스톱 찰싹거리는 소리에 정치인들이 새끼가 되는 순간. 그걸 듣는 많은 아이들.사촌들.
정말 정치인들이 좋은 호칭 들을수 있게 잘해주면 참 좋으련만....

연우주 2004-07-11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첨엔 뜬금없다 생각했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진국이었다는. 물론 그게 마태우스님 글의 매력이지만요. 상상력의 대가. 마태우스님께 제가 드리는 칭호입니다. 또다른 별명은 립서비스의 제왕^^ 팟팟팟. 물론 마태우스님의 그 칭찬 덕에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지만요.

로렌초의시종 2004-07-11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제발 그것이 그의 유일한 업적이 되지 않기를 저도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단순히 현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뒤를 이을 인물을 정할 그날을 위해서 말이죠.

stella.K 2004-07-1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언제 또 <정관정요>를 다 섭렵하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정말 노무현 대통령 요즘 넘 걱정되요. 지난 탄핵 때가지만 하더라도 전, 그에 대한 일말의 동정을 가졌었더랬는데, 요즘엔 저 분이 어찌할려고 저런...!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정말 마태님 말마따나 그분의 업적이 그거 하나면 어쩌죠...
저도 추천 한방해요.

마태우스 2004-07-1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님이 추천을 해주셨다니, 제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몰려옵니다. 철썩, 철썩.
로렌초의시종님/노무현의 실패는 개혁적 인사에 대한 광범위한 회의를 가져오겠지요. 그러니 정말 잘해야 할텐데...........싹수가 어째..........
연보라빛우주님/흐음, 드디어 님이 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군요^^
LAYLA님/텔레비젼에서 그런 게 나왔군요. 흐음... 왕을 철부지로 키우는 듯... 정치인의 호칭에 대한 님의 통찰에 공감합니다. 그런 것들도 정치불신의 풍조를 조장하는 거겠지요.
밀키웨이님/옥봉을 언급하면서 제가 예상한 반응은 "부끄.." "어머나..." "화끈" 이런 거였는데, 으음, 아무도 놀라지 않는군요

플라시보 2004-07-1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봉. 죽입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