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사거리에는 30-40개, 아니 그 이상의 성형외과가 있다. 예전에는 명동이나 압구정동이 성형외과의 메카였다면, 지금은 단연 강남역이 중심이고, 그 근처에 자리를 잡는다면 최소한 망하지는 않는다. 다른 수술과 마찬가지로 성형외과 수술시에도 피검사같은 일반적인 검사를 필요로 하는데, 성형외과 내에 검사 장비를 갖추지 못했으니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 강남역 사거리에 위치한 베스트클리닉은 각종 검사장비를 갖춘 몇 안되는 병원으로, 이 병원 혼자서 수십개의 성형외과에서 보내는 환자들의 검사를 전담한다. 사람이 워낙 많으니 한시간 이상 기다리는 건 예사지만, 환자는 끊이지 않는다. 몇 개 없는 약국도 근처 병원에서 쏟아지는 처방전을 처리하면서 돈을 쓸어간다. 식당? 강남역에 있는 그 많은 빌딩 사람들을 먹여살려야 하니, 낮이나 밤이나 미어터진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말은 그래서 생겼나보다.
소방교육을 받는 사흘간 가장 불편했던 게 식사 문제였다. 건물 내 식당이 있지만, 12시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600명의 수강생들을 처리할 수 없는지라 천상 밖에 나가서 먹어야 한다. 하지만 당산역 아래는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다들 허름하고, 허름한 거 이상으로 맛이 없었다. 그래도 사람은 바글바글했다. 열 개 남짓한 식당들이 처리하기엔 수강생들의 숫자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첫날은 중국집에 갔다. 대부분이 수강생이고, 혼자 왔다. 사람이 많아 합석을 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시킨 볶음밥이 너무 맛이 없었다. 4500원을 내고 나오면서 "다신 안온다"고 결심했다. 둘째날, 분식집을 갔다. 사람이 많아서 종업원은 정신이 없었고, 주인은 계속 짜증을 냈다. 맛이 없기가 힘든 제육덮밥을 시켰다. 정신없는 종업원은 내게 오징어덮밥을 갖다주기도 했다 (알고보니 내 옆 테이블 거였다). 하여간 내가 제육덮밥을 남긴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제육덮밥도 맛이 없으려면 얼마든지 맛없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똑같은 결심을 했다. "다신 오나봐라!"
셋째날, 전날 술을 마신 탓에 아침부터 배가 고팠다. 조금 일찍 가서 다른 분식점에 가서 라면과 김밥을 시켰다. 라면은 누가 끓여도 기본은 되지 않을까 했지만, 그집은 김밥은 물론 라면조차 맛이 없었다. 국물 한방울까지 다 먹는 나지만, 면까지 남긴 채 나왔다. 가는 길에 파리 바게뜨에서 샌드위치를 샀고, 편의점에서 우유를 샀다. 점심시간에 수강생들이 다 나간 틈을 타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사흘 중 가장 맛있게 먹은 점심이었다.
당산역 아래쪽에 맛있는 식당이 없는 것은 대충 해도 장사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수강생들은 모두 처음 오는 사람이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은 A식당에서, 내일은 B 식당에서 각각 맛없는 식당을 간다. A를 갔던 사람은 다음날 B를 가고, B를 갔던 사람은 A를 간다. 어차피 수강생은 넘치고, 그들 모두가 점심을 먹어야 한다. 땅짚고 헤엄치기, 요리 실력이 없는 식당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쓸어담기만 하면 된다. 8월부터는 교육기간이 4일, 혹은 5일로 늘어난다고 하니 더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수강생들을 위해 내가 식당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외관이 번듯하면서 맛까지 있고 값도 싼 그런 식당을. 수강생들을 위한 식당이니 수강증이 있으면 10% 할인도 해주고. 메뉴? 내가 아는 아주머니 중 육개장을 죽이게 맛있게 만드는 분이 계시다. 고기도 많이 넣고, 국물도 진하게 해서 육개장을 만들고, 돼지고기를 아주 맛있게 만들어 제육덮밥을 하자. 반찬을 풍성하게 한 백반도 하고, 혼자 먹기에는 벅찬 양의 김치찌개도 팔고싶다. 내가 만든 식당이 잘된다면, 수강생들에게 맛없는 식사를 제공했던 허름한 식당들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 식당을 하는거야.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식당의 정신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물론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로또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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