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입원을 했다. 지난 몇 년간 여러번 입원을 했었지만, 이번 입원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의 병실을 찾았던 다른 친구들처럼, 나 역시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갔다. 몸에 끼워진 수많은 호스들, 평소와는 다르게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할말을 잃게 했다. 그의 손을 붙잡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의 병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아는데,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십분쯤 그러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 "미안해"라고. 난 뭐가 미안했을까. 그가 병마와 싸우는 도중 나 혼자 잘먹고 잘놀았던 것?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미안한 건, 내가 너무 건강해서, 였다. 나중에는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난 내게 남은 수명을 5년쯤 떼어 그에게 주고 싶었다. 물론 이건 내 수명이 수십년 이상 남았을 경우에나 가능한 거겠지만.
예과 때 그를 처음 보았다. 시원시원한 말투처럼 시원하게 생긴 얼굴, 부리부리한 눈. 그는 잘생긴 애였고, 대부분의 의대생들과는 달리 낭만이 뭔지 아는 친구였다. 그와 특별히 친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는 친구였긴 했다. 그는 의리가 있었고, 매사에 화끈했다. 졸업 후 비뇨기과 의사가 된 그의 폐에서 암이 발견된 것은 2000년이었다. 수술을 시도했던 의사는 전신에 퍼진 암덩어리를 보고 절개부위를 닫고 말았다. 많은 친구들이 그를 찾았던 게 그 무렵인 것 같다. 난 그때 그에게 병문안을 가지 못했다. 달리 뭐라고 할말이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갔다온 친구들이 "의외로 담담하다"고 말하긴 했어도, 난 끝내 그에게 찾아가지 못했다.
의사는 그에게 6개월의 잔여수명을 예고했지만, 그는 의학을 비웃기라도 하듯 5년째 버티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의 아내와 두 아들도 고생이 많았겠지만, 가장 고통받는 건 내 친구일 것이다. 그의 고통을 주변 사람들이 대신할 수 있는 길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는 종교에 귀의했다. 학생 때 터프하던 그의 모습으로 보건대 종교와 그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느님을 믿었고, 그 믿음은 아마도 그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병마와 싸우는 동안 그는 인터넷을 통해 활성화가 되어버린 우리 동문회의 상징이 되었고, 몇차례의 모임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나를 만날 때면 그는 언제나 "술좀 그만 먹어라"라고 충고를 했는데, 그에게 미안하게 난 그 충고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
화학요법도, 방사선 치료도 그의 암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는지라, 이제 그는 마지막 삶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너무 오래 있으면 힘들어한다"는 친구의 사전 경고가 있었음에도 난 십분이 넘게 그 방에서 머물렀고, "힘드니까 그만 가라"는 말을 듣고서야 병실을 나갔다. 2002년 월드컵 경기가 방영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곤 하는 나지만, 울려고 노력을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모르겠다.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나니 다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의사에 따르면 그가 우리들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기간도 1-2주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고, 그나마 일주일은 지나가 버렸다.
지금 그 친구의 상태라면, 그냥 막연하게 수명만 연장하는 건 의미가 없을 듯하다. 어떤 구차한 삶도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만,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채 첨단기계들에 삶을 의존해야 한다면 그게 과연 사는 것인지 난 의문스럽다. 그래서 난 그의 회복을 빌지 못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가 고통없는 곳에서 편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살아생전 내 친구가 죽은 적은 딱 한번 있다. 내가 스무살 때, 대만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떨어져 죽었다. 그러니 병마로 인해 친구가 죽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상을 당했을 때 만났지만, 이제부터는 서서히 친구의 주검 앞에서 술잔을 기울여야 할 나이가 되었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38세의 죽음은 너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