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선을 본 사람은 수의사였다. 내 주변에는 수의과를 나와서 생물학이나 기생충학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줄기세포 연구로 히트를 친 황우석 박사도 수의과 교수다. 하지만 그녀는 진짜로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로부터 평소 잘 몰랐던 동물병원의 실상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나: 학생 때 주로 개에 대해서 배우나요?
그녀: 지금은 다들 개만 하죠. 하지만 우리 때는-그녀는 88학번이다-개 시장이 그다지 활성화가 안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개보다는 돼지나 소를 주로 다뤘죠. 병원 나가면서 개에 대해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흐음, 그렇군.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돼지를 다룬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길거리에 시베리아 허스키를 끌고 나가면 사람들이 몰린다. 주로 여자애들이. 이국적으로 보이는 회색빛 털에 풍채도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듯 고고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어필하는 까닭이다. 짖는 건 두려움의 징표, 몸집이 큰 개들은 그래서 잘 짖지 않는다. 그런 걸 알기에 사람들은 처음 보는 개라도 부담없이 만질 수 있는 거다. 언젠가 우리 벤지가 나 하나 믿고 겁도없이 허스키에게 덤벼들 포즈를 취하는데, 그 허스키는 가소롭다는 듯이 외면해 버린다. 난 그랬다. '역시 인물이야!'
하지만 그놈이 겉만 그렇지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린애를 물어죽인 유치원 원장집 허스키 기사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개는 개고, 안무는 개는 없었다.

나: 큰 개들이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나요?
그녀: 일전에 미용사(?)가 털을 깎는데, 마취가 일찍 깨는 바람에 허스키가 그 여자의 볼을 물어뜯은 적이 있어요. 거의 다 끝나서 꼬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나: 저런, 그래서요?
그녀: 의사가 떨어진 살점 가져오면 붙여준다고 해서 살점 찾고...난리가 아니었죠. 제가 아는 다른 병원에서도 미용사가 허스키한테 코를 물린 적이 있다고 해요.
보시라. 그러니 허스키한테 너무 방심할 일은 아니다. 짖기만 하고 물 줄은 모르는 작은 개들과 달리, 얘네들은 수틀리면 물어 버린다.

나: 개 말고 또 다른 동물이 오나요?
그녀: 고양이가 많죠. 그거 말고는 새가 비교적 흔한 편이고, 거북이도... 최근에 본 가장 신기한 동물은 이구아나였어요.
나: 호오, 그렇군요.
이쯤 되니까 사람이 더 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도 다 저마다의 특성이 있지만, 새와 개의 차이만큼 심하지는 않잖는가? 게다가 사람은 어디가 아픈지 스스로 말을 할 수 있으니 진료하기 편하지만, 동물들은 도통 말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내가 다루는 기생충 역시 말을 못한다. 그들이 과연 아픈 걸 느끼기나 할지 모르겠지만, 주사기 바늘로 기생충이다 찌르기라도 하면 미안하다. 한번은 시약을 타는데 염산을 열배나 더 많이 넣어 기생충들이 다 죽어 버렸다. 쫙 뻗어있는 녀석들을 보니 가슴이 쓰렸다. 그러고보니 기생충을 본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도대체 실험을 해야지 기생충을 보지!! 논문보다는 "책으로 업적을 쌓겠다!"며 글만 쓰고 있는 나, 과연 내년 8월 이후에도 내 방에서 계속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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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6-26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쫙 뻗어있는 녀석들을 보니 가슴이 쓰렸다....에서 왜 웃음이 나는거냐, 뚝!
왜 그러세요, 의예과장님!!! 당근 그러셔야지요!!!!

마태우스 2004-06-26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지적 감사합니다. 지금사 바꿨어요.
진우맘님/아니 기생충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그러세요!!!

groove 2004-06-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마태우스님이랑 기생충이랑은 왠지 절묘하게 잘어울립니다. 그나저나 볼이뜯어져서 다시 붙인다니 캬캬캬 수의사님들 고생이 너무많으시네요.

가을산 2004-06-2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개들은 물기 방지 마스크를 씌우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마태님, 그 수의사님은 벤지에게 관심 안보이던가요?

sweetmagic 2004-06-2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의사... 개를 무서워 하는 저로서는 수의사분 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 만큼이나 대단해 보이더군요. 웬지 님이랑도 잘 어울리시는 듯 ^^ 어떻게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보심이...
뭐 어떻게 필요하신거 있으심 말씀만하세요.... 바라만 봐도 사랑에 빠진다는 도룡뇽 콧털, 바르기만 하면 누구나 멋있게 보이는 천년묵은 카멜레온 이똥, 지상최대의 매혹의 향 오백년 뒷간 물에 숙성시킨 이구아나 응가 ...마태우스 님께는 공짜로 드립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6-2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반드시 허스키를 키우리라 마음 먹고 있던 저로써는 생각을 다시하게 만든 페이퍼셨습니다 마태우스님 ㅡ ㅡ;;;;;;; 그러고보니 저희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있으셨죠 짖는 개는 검먹은 개니까 발로 차버리라고 ㅡ ㅡ;;;; 그래도 차는 시늉은 해봤어도 정작 차보지는 못했지요. 그런데요...... 실례지만 마지막 실험날짜가 언제신지요? 부디 의예과장님의 장기집권을 기원합니다^^

starrysky 2004-06-2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TV에서 '모기의 역습'이라는 다큐를 하면서 1시간 내내 기생충 얘기만 하더군요. 저로서는 너무나 으악스러웠지만(죄송. 제가 아직 기생충적인 심미안에 눈뜨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마태님 안 나오시려나 억지로 눈 똑바로 뜨고 봤는데 안 나오시더군요(혹시 제가 잠깐씩 눈 가리고 있는 동안 나오셨나요?). 부디 연구활동 열심히 하셔서 TV에서도 종종 뵙게 해주세요. ^-^

LAYLA 2004-06-26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이야기 말고 맞선결과는?

부리 2004-06-28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아래 멘트로 보건대 꽝이 아닐까요?
라일라님/조만간 또 선을 보기로 했답니다.
스타리님/전 티브이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지라 실험을 한다해도 출연은 안할 생각이랍니다.
로렌초의시종님/마지막 실험날짜... 작년이었던 것 같은데...그것도 중반쯤. 일년 놀았네요.
스윗매직님/도롱뇽 코털을 주세요.
가을산님/귀여운 마르치스를 키운다고 했는데도 그러냐고 하곤 말더군요. 벤지의 가치를 몰라봐서 그러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