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도저히 잠이 안오길래 TV를 켰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관한 토론이 열리고 있다.
-한나라당 박성범: 아직 당론이 없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국민여론을 보고 당론을 결정할 것입니다. --> 모 신문사 여론조사에서 국민 60%가 반대했다면 우리 당도 반대, 다음날 모 방송사에서 찬성이 더 많아지면 그땐 찬성? 그게...당론이야?
-열린우리당 이강래: 지난 연말에 87%로 통과했으니 국민적 합의를 이룬 것이다!
박성범의 반론: 그럼...탄핵도 국민적 합의냐?
이강래: .....
-사회자: 지난 연말에는 왜 동의했어?
박성범: 행정수도 이전인 줄 알아서 찬성했는데, 노무현이 연설에서 천도라는 말을 썼어. 그래서 반대하는 거야.--> 행정수도 이전이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닌데, 노무현의 말 한마디에 입장이 그리도 쉽게 바뀌나.
-이강래: 한나라당이 당론을 정해서 국회에서 다시 토론을 제기하면 그땐 원점에서 모든 걸 협상할 수 있다.
박성범: 국회에서 해봤자 소용없다.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수인데...--> 16대 땐 한나라당이 과반수였는데, 왜 동의해 줬을까?
박성범이 좀 안되어 보였다. 당론도 없는데다, 작년 말에 합의해준 걸 뒤집으려고 하니 얼마나 궁색하겠는가. 논리가 궁할 때는 역시 전여옥이 나와야 한다. 그랬다면 제법 재미있는 토론이 되었을텐데. 여기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아깝게 떨어진 자민련 유운용 대변인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드림팀일 것이다. 다음과 같이 되지 않았을까.
유시민: 노무현은 호랑이입니다. 한다면 합니다.
전여옥: 유의원이 아까 노무현을 호랑이라고 했는데, 호랑이는 동물원에 있어야지 청와대에 있어서는 안되죠.
유시민: 비열한 인용입니다!
전여옥: 그게 왜 비열해요?
유운용: 호랑이의 털색깔이 뭡니까. 붉은 색 아닙니까. 노무현이 빨갱이라는 걸 유의원도 시인하시는 거죠!
사회자: 지금 수도 이전에 관하여 토론하고 있습니다. 이념공세는 자제해 주시면...
유운용: 그게 왜 관계가 없습니까? 수도이전은 공산세력의 책동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야당은 수도이전에 관해 국민투표를 하자고 한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아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점에서 수도이전의 효과는 전 국민에게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건 충분히 국민의 의사를 물을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그 효과를 피부로 느끼기에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제주도에서 귤을 따는 주민이, 경상도에서 기계를 돌리는 노동자에게, 전라도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수도 이전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수도이전은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는 충청권 주민과,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수도권 주민들간의 대립이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지금처럼 언론이 수도이전에 대해 정략적 보도를 일삼는 상황에서, 수도이전에 관한 국민투표는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영남에서 반대가 유독 많은 것도, 호남에서 찬성률이 높은 것도 노무현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반대 혹은 지지를 되풀이해온 지역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때론 국민의 뜻과 합치되지 않더라도 밀고나가야 할 때가 있다. 포화상태에 달한 수도권과 그로 인한 천문학적인 손실을 생각한다면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명분이 없어 보인다. 다만 지난 연말의 수도이전 특별법 통과는 매우 졸속으로 이루어진 행위였음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보다 친절한 설명을 해주며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필요할 것 같다. 참고로 내가 수도이전에 찬성하는 이유가 항간의 루머처럼 천안에 땅을 잔뜩 사두어서는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