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지게 생긴 남자가 말한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때 이쁜 여자가 지나가고, 남자는 그 여자를 쳐다보다 반지를 떨어뜨린다. 광고카피가 나온다. "아직 남자들의 말을 믿는가!"
남자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래서 매우 인상적인 광고지만, 대충 봐서 그랬는지 난 이게 뭘 선전하는 것인지 몇번을 봐도 알 수 없었다. 타이어가 화면에 뜨는 것 같은데, 설마, 타이어 광고는 아니겠지. 화장품 아니면 장신구 광고? 하지만 어느날 맘잡고 집중해서 광고를 봐보니 그게 진짜 타이어 광고다. 한국타이어가 외모가 이쁘다는! 아니 바퀴야 잘 굴러가면 되는거지, 이쁠 필요가 뭐가 있담?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많을테니, 광고가 아무리 인상적이라도 타이어가 잘 팔릴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누가 차살 때 타이어 어느회사 걸로 해달라고 주문하나? 그냥 주는대로 받는다. 그런데도 이런 광고를 하는 이유는 일반 시청자가 아닌, 차 만드는 사람을 겨냥한 걸까. 그렇다면 그게 공중파를 타야 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또다른 광고는 남녀가 한판 대결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을 한다. 여자의 공격에 남자는 일방적으로 밀리고, 급기야 코피까지 난다. 괜찮냐고 다가간 여자, 하지만 남자는 그틈을 노려 여자를 머리로 받고, 쓰러진 여자는 일어서려고 발바둥치다 끝내 뻗어버린다. 광고카피가 나온다. "머리를 쓰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휴대폰이 막바로 나오는 걸로 보아 휴대폰 광고겠지만, 그게 휴대폰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난 지금도 알 수 없다. 비겁하게 승리한 남자를 옹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효리가 섹시한 포즈로 나오는, "작업중이야"라는 멘트가 나오는 광고면 모를까 상상력이 빈약한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 광고를 이해할 수 없는데, 그래도 이 광고가 꾸준히 방영되는 걸 보면 신세대들은 이 메시지를 이해했나보다.
정우성이 나온 노트북 선전도 여러 버전으로 다 봤지만, 어느 하나도 마음에 안든다. 이쁜 여자가 정우성이 쓰는 노트북에 루즈를 칠하고, 물을 쏟고, 눈물을 보이고 하는 게 전혀 와닿지 않는거다. 차가 꽉 막힌 다리 위에서 젊은 애들이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질주하는 광고, 그건 뭘 선전하는 거였는지조차 까먹었다. 제품과 광고의 유리, 이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컨셉이라고 우기겠지만, 이미 구세대가 된 나는 그 광고들을 보면서 머리가 아프다.
마음에 드는 광고가 없는 건 아니다. "부자되세요!"를 외쳤던 김정은의 BC카드 광고, 윤리를 떠나서 그건 나같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광고였다. 장난감 차를 타고 온 애한테 과자를 주는 송혜교의 주유소 광고도 얼마나 쉬운가. 이거 말고 내가 좋아하는 광고는 두루넷 광고다. 귀여운 커플이 컴퓨터를 하는데, 남자가 여자를 따라한다. 기지개를 켜다가, 혹은 키보드를 기타처럼 치다가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따라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수줍은 표정을 짓는데, 이때 광고 카피가 나온다. "두루넷 안에서도, 두루넷 밖에서도 사랑할 거예요" 내가 이 광고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은 젊고 잘 어울리는 애들끼리 정다운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을 때는 이쁜 여자를 보면 무조건 어찌어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나이들고 힘빠진 지금은 어울리는 한쌍이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겁다. 하여간에, 포스트모더니즘도 좋지만 광고를 좀 쉽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형님먼저 아우먼저"라든지 "열두시에 만나요 브라보콘"같은 광고카피가 멋은 없어도 얼마나 정겨운가.
* 오늘 한겨레에서 '알라딘 미안해!'라고 쓰여있는 광고를 봤다. 알라딘에서 너무 혜택을 많이 받아서 미안하다는 이 카피는 어느 광고에 뒤지지 않는 멋진 광고카피라고 생각한다. 이걸 선택한 알라딘 편집팀도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 카피를 만든 진우맘님도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이 광고로 인해 알라딘도 잘 되고, 진우맘님에게도 그 공로에 부응하는 혜택이 있었으면 좋겠다. 진우맘님은 그 혜택을 측근들에게 나눠줄 것이고, 난 누가 뭐래도 진우맘님의 측근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