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알라딘에서 책 바꿔보기가 성행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건 아마도 검은비님이 먼저 시작했고, 비롯한 다른 분들이 동참하면서 활성화가 되고 있는 거다. 좋은 일이다. 갖고 있어봤자 사실 그 책을 다시 볼 일이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만도 좋은 일인데, 다른 분이 읽었던 그 책을 읽으면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면 소록소록 정이 쌓일게다. 내가 알라딘의 대주주고, 그래서 알라딘에서 책이 많이 팔려야 좋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난 이 운동을 지지한다. 엊그제 처음으로 panda78님이 갖고 계신 책을 주문했고, 그 보답으로 다른 두권을 보내기도 했다. 알라딘 서재의 활성화가 알라딘의 매출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대주주들은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대주주를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하니, 이 운동이 점점 더 활성화됨으로써 서재 주인장들의 친목도모에 기여하길 빈다.
엄마 친구 중 내게 책을 빌려달라고 하는 분이 있다. 몇 번 빌려줬더니 꼬박꼬박 갖다줬고, 매번 고맙다고 인사를 하긴 하지만, 영 내키지가 않는다. 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난 뒤부터.
나: 엄마, 그 사람 혹시 책살 돈이 없어?
엄마: 아니, 엄청나게 부자야. 집에 차가 세대고...
나: 그럼 책 좀 사라고 하지?
엄마; 아유, 그사람이 얼마나 구두쇤데. 책 사는데는 십원도 안쓸걸.
책을 살 때 경제적 이유 때문에 잠깐이나마 망설인다면 빌려보는 게 좋다. 하지만 좀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좀 사줄 필요가 있다. 안그래도 출판계가 불황이고, 인세에 의존하는 전업작가들의 삶은 정말 넉넉지 않을텐데, 돈 있는 사람들까지 저렇게 알뜰해서야 어떻게 배겨나겠는가?
경제를 조금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저축이란 게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것처럼 미덕만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소비가 필요할 수도 있는 법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지만 97년의 외환위기도 언론의 지적처럼 과소비 때문은 아니었다. 수출은 연일 기록을 경신해도 내수의 침체 때문에 긴 경제불황에 빠진 작금의 현실에서 소비의 확산은 무엇보다 필요하며, 좀더 가진 계층이 앞장을 서야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벤츠를 굴리며, 비싼 헬스장을 가면서도 책 사는 돈을 아끼는 그분이야말로 출판계의 공적이 아니겠는가.
투덜대면서 난 얼마 전 읽은 권지예의 <아름다운 지옥>을 빌려줬다. 그분은 고맙다고 하면서 책을 돌려줄 것이고, 그러면서 또다른 책을 요구할 것이다. 빌려주면 빌려줄수록 얄미운 사람, 다음번엔 중요한 대목마다 화이트로 칠해서 빌려줘 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