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따금씩 가족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게 된다. 가장 많이 부딪히고, 가식 없는 참모습을 어려서부터 봐온 탓이다.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 좋아하면서도 짐스러워하는 양가감정을 갖는 건 그래서 흔한 일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도 있는데, 내가 바로 그렇다. 난 여동생과 그다지 친하지 않다. 어느 정도냐 하면, 거의 7년간을 집 밖에서 만나도 아는 체조차 안하고 살 때도 있었다. 그녀도 자신이 정의라고 주장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가 악, 내가 선이다. 이런 곳에다 동생에 대한 비난을 하는 건 그렇게라도 해야 맘 속의 답답함이 풀릴 걸 기대해서일테고, 한편으로는 내 편이 좀 되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부모형제간의 우애가 깊은-에 비추어 코멘트를 날린다. "그래도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물씬 풍겨요!"라는 식으로. 잘 모르는 사람의 동생에게 "정말 나쁘네요!"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그렇긴 해도 "동생들은 다 그렇죠 뭐! 제 동생은 더해요"라는 코멘트를 보면 힘이 빠진다. '아, 이 사람은 내가 동생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알지 못하는구나' 하는 마음에서. 밖에서 자기 가족을 욕하는 건 사실 팔불출이나 하는 짓이지만, 오늘도 난 팔불출이 되어 보련다.
1. 필요할 때만...
여동생이 아침부터 할머니에게 열나게 전화를 했다. 투표를 하고 모임에 가신 할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자 엄마에게, 심지어 나한테까지 전화를 했다. 그녀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는 딱 한가지 이유밖에 없다. 애를 봐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오랜 기간 간병할 때, 그리고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가셨을 때, 여동생이 할머니를 찾은 적은 내가 알기에 없다. 그래도 할머니는 여동생이 말만하면 부리나케 달려가 한창 말썽을 피울 애 둘을 봐주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는데, 요즘은 필요할 때만 부르니 좀 낫긴 하다. 그게 워낙 자주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난 할머니를 여동생 집에 모셔다 드렸는데, 할머니는 오늘밤 거기서 주무시면서 애들을 보셔야 할 것 같다.
전에 말했듯이, 내 외삼촌-할머니의 아들-은 이십여년 째 직업이 없다. 최근에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본다고 몇 년을 허비한 것만 봐도 그리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할머니가 십여년 전에 들어놓은 교육보험까지 어느새 써버린 걸 보면, 가장으로서도 그리 높은 점수를 주고싶지 않다. 그래도 삼촌이니까 난 기본적인 예의는 갖춘다. 하지만 여동생은 뭐가 그리도 잘났는지 아예 안면을 깐다. 거의 인간 취급도 안한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삼촌이 여동생이 자기를 너무 무시한다고 불만을 터뜨리기까지 했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거다.
하지만 여동생은 아쉬울 때면 삼촌에게 뭔가를 시킨다. 얼마 전엔 새벽 6시에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삼촌에게 오전 동안 자기 운전기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란다. 자기는 낯짝이 있으니 직접 전화를 못하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후안무치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무시했다면, 난 그에게 죽으면 죽었지 아쉬운 소리를 못할 것이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어쩜 이렇게 다른지, 인간성이란 건 환경보다 유전자에 더 좌우되는 것인가보다.
2. 심지어는...
여동생이 나쁜 거야 우리 가족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 웬만한 일에는 그리 놀라지 않는다. 그저 "걔라면 그럴 수 있지"라고 하고 만다. 그래도 동생은 이따금씩 날 놀라게 한다.
요즘 여동생이 엄마한테 용인에 좋은 땅이 있다고, 투자를 하라고 계속 보챈 모양이다. 3천만원만 내면 금방 몇배로 뛴다고 하면서. 하지만 그돈이 있으면 어머님이 왜 마이너스 통장을 주렁주렁 차겠는가. 안된다고 거절했다. 물론 동생은 화를 냈다. 왜 그랬을까? 진실은 이렇다. 여동생이 최근 부동산 업자에게 속아 용인에 땅을 샀다. 사놓기만 하면 금방 몇배로 오르니, 잽싸게 팔면 된다고 했단다. 하지만 땅값이 오르기는커녕 본전에도 팔지 못하게 되자 초조했던 모양이다. 부동산에 전화해서 사기꾼이라고 욕도 하고, 싸우기도 무척 싸웠단다. 결국 손해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동생은 어머니에게 그 땅을 떠넘기기로 하고 집요하게 땅을 살 것을 권유했던 거다. 아, 정말 악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꼭 몇 명을 살해해야만 악인은 아니다. 날 몇 년간 힘들게 해놓고서 한마디 사과조차 안한 그녀, 2001년 아버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그녀와 지금껏 모른체를 하고 지냈을 거다. 하지만 다시 말을 트고나니 영 귀찮은 게 많고, 안면을 까던 옛날이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알면 알수록 손해인 사람, 그게 내 동생이니까.
3. 셀피쉬
우리 누나가 미국에 있을 때, 여동생은 애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한달간 미국에 건너갔다. 누나가 그랬다. 애들이 한국 과자를 먹고 싶으니, 조금만 사오라고. 여동생은 물론 그냥 갔다. 과자가 얼마나 비싼지 모르지만, 돈이 없다면서 짜증까지 냈단다. 다른 언니들은 다 그냥 오라고 하는데, 왜 뭘 사오라고 귀찮게 하냐고 했단다. 과자를 목놓아 기다리던 조카들은 당연히 실망을 했다. 조카들의 반응을 본 동생은 "멋진 로보트를 사주겠다"고 둘러댔지만, 자기 물건 사기에 바쁜 나머지 그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만다.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빈 채로 가져온 동생은 미국에서 열심히 산 물건들을 가방 가득히 채워 한국에 왔다. 미국서 2년간 살아 영어를 제법 잘하게 된 내 조카들은 여동생 얘기만 나오면 "selfish!(이기적인)"라고 말을 하며, 자긴 이모가 너무 싫단다. 열 살짜리 아이로부터 미움을 받는 여동생, 그녀가 과연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선'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