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엔 어머니와 나, 그리고 벤지가 산다. 나도 그렇지만 어머니도 꽤나 바쁘신 편이라, 내가 7시에, 어머니가 8시에 나가시고 나면 벤지 혼자서 집을 봐야 한다. 그러다보니 소포를 받는 게 '일'이다. 중요 우편물은 4층에서-우리집은 5층이다-받아주곤 하지만, 그것도 한두번이지 영 미안하다. 특히나 책 주문을 자주하는 나는 죄의식까지 가질 정도가 되어 버렸다.
모닝365의 지하철역 배달을 부러워하던 나는 내가 주로 거래하는 알라딘에서 편의점 배달을 시작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젠 더 이상 4층에 미안해할 일이 없는데다, 우리집 근처에는 편의점이 여러 군데 있었으니까.
하지만 첫 번째 편의점은 실패였다. 매번 신분증을 확인하는 건 그렇다 치자. 문제는 조회를 해야 한다면서 날 몇분씩 세워두는 거였다. 술에 취해 헬렐레하는 날 확인이 안된다면서 십오분이나 붙잡아둔 적도 있었다. 그런 게 너무 짜증이 나서 홧김에 다른 편의점으로 주소를 옮겨 버렸다. 그 편의점 아저씨, 정말 화끈했다. 책을 찾으러 오라고 친히 전화를 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고, 두 번째 가니깐 신분증 확인도 안했다(이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난데...). 더 좋은 건 그전 아저씨가 그렇게 정성을 들이던 '조회'를 안하는 거였다. 그런 거 안하냐고 물어보니까 이렇게 대답한다. '에이, 그딴 걸 뭐하러 해?" 아저씬 내가 가면 삼초도 안걸려서 내게 책을 건네줬고, 그후부터 난 뭐하나 산 적 없던 그 편의점과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자주 오가다보니 이따금씩 뭘 사기도 했다.
책은 그렇게 해결이 되었지만, 모든 게 다 편의점으로 배달되는 건 아니다.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내겐 시골-장성, 백양사 역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이모가 있는데, 그분이 김치며 고추, 참기름, 상추 등을 심심치 않게 보내준다. 그 맛이 워낙 탁월해 김치 하나에도 충분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정도인데, 그걸 받는 건 어쩔 수 없이 4층 신세를 져야 했다. 이모는 꼭 착불로 택배를 보내는지라 4층 사람에게 더더욱 미안하다. 그쪽에서 불만을 표시한 적은 아직까지 없지만 말이다.
얼마전엔 이모가 닭-칠면조만한 장닭이란다-을 보냈다. 4층 사람들이 우리집에 몇 번 왔지만 우리집이 번번히 잠겨 있었단다. 그래서 그 닭은 푹푹 찌는 4층에서 하루를 잔 끝에 다음날 저녁에야 어머님의 손에 들어왔다. 거의 이틀을 무더운 날씨에 방치되었던 닭을 귀한 아들에게 먹일 수 없었던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닭을 버려야만 했단다.
닭의 고귀한 희생이 헛된 죽음으로 귀결된 이 사태를 누구 책임으로 돌려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닭의 죽음을 기리는 뜻에서 내 휴대폰 벨소리를 닭울음 소리-꼬끼오-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람들은 내 휴대폰에서 꼬끼오가 나오면 피식피식 웃지만, 사정을 안다면 그들 역시 애도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오늘도 내 휴대폰은 닭 울음 소리를 낸다. 꼬-끼-오!
* 알라딘에서 편의점을 선택하는 건 귀찮은 일이다. 교봉처럼 즐겨 이용하는 주소를 등록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