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지가 처음 왔을 때, 우리집은 작지만 마당이 있었고, 벤지는 그곳을 자신의 화장실로 사용했다. 벤지를 위해 겨울에도 문을 열어 두었기에, 대소변을 볼 때 남의 눈치를 볼 까닭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후, 우리집의 마당이 없어졌다. 다섯 살로 중년이 된 벤지에게 그런 경험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으리라. 난 화장실에다 싸도록 교육을 시켰지만, 녀석은 웬만하면 내가 밖에 데리고 나갈 때까지 참으려 했고, 소변은 화장실에 싼다해도 대변만은 집 안에 싸지 않았다. 그래서 난 아침 저녁으로, 그리고 내가 집에 오는 순간마다 벤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결과 벤지에게는 많은 위험이 닥쳤지만, 그 위험들을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이제 17세의 노년 개로서, 인생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위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 차
오늘 아침, 벤지가 웅크린 자세로 대변을 보고 있을 때, 봉고 한 대가 미친 듯이 커브를 돌아 질주했다. 놀란 나는 잽싸게 달려나가 봉고를 세웠고, 벤지를 안아올렸다. 행태로 보아 그가 벤지를 발견하기 힘들었을 것 같고, 발견했다고 해서 차를 멈추었을까 하는 데 난 회의적이다. 그 차 말고도 골목길을 미친 듯이 질주하는 차들은 무지하게 많다. 벤지는 개지만, 그 자리에 얘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얘들은 돌발적인 행동을 잘 하는데, 왜 그렇게 빨리 달리는 것일까? 난 아무리 급해도 골목길은 거의 기어가는데 말이다. 그런 차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의 골목길 교통사고가 굉장히 많다는 게 이해가 된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 벤지가 대변을 보는 동안 신문을 보는데, 차 한 대가 벤지 쪽으로 달려간다. 그래서 난 신고있던 슬리퍼를 그 차에 던졌다. 그 차가 섰고, 난 운전자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안그랬으면 어찌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벤지가 정말 위험하면 내가 차를 향해 뛰어들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을 향해 무엇이든지 하듯, 벤지를 자식처럼 키워온 나도 차 앞에 뛰어들지 않을까? 한해에 교통사고로 1만명이 죽어나가는 판에, 벤지가 그동안 무사히 살 수 있었다는 건 어찌되었건 감사할 일이다.
2. 개
벤지가 일을 보는 와중에, 집채만한 진돗개가 벤지에게 달려들었다. 몸을 날린 난 겨우 벤지를 구해냈지만, 그 개는 내게도 적의를 보였다. 원래 큰 개들은 작은 개를 공격하지 않는데, 그 개는 참으로 인간성이 더러운 개였다. 잠시 후 나타난 개 주인과 난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저렇게 큰 개를 풀어놓으면 어떻게 하냐"는 내 말에 "너도 지금 개를 풀어놨지 않느냐"고 맞선다. 그 개에 그 주인, 내가 슬리퍼만 안신었다면 대번에 이단옆차기가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이라면 내가 도사견을 풀어놔 그 개를 물게 해도 그놈은 할말이 없겠네?
그로부터 며칠 뒤, 또 그 개를 봤다. 벤지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그 개. 난 다시금 몸을 날려 벤지를 안아올렸고, 진돗개는 빈곳을 덮쳐야 했다. 이번엔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신고있던 슬리퍼를 개한테 던져 옆구리를 맞췄으며, 개주인 앞에 달려가 핏대를 올렸다. 처음과는 달리-내가 세게 나가서일까?-주인은 미안하다고 했다. 그 이후 난 벤지가 일을 볼 때마다 주위를 경계했지만, 별일은 없었다.
3. 사람
벤지가 대변을 누는데 어떤 사람이 수박을 들고 지나가다 때리는 시늉을 한다. 벤지는 워낙 민감한 녀석이라 일보는데 방해하면 참지를 못하는지라, 그 사람에게 마구 짖어댔다. 그 사람은 더더욱 흥분했고, 벤지는 더 크게 짖었다. 내가 벤지를 안자 그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수박으로 확 머리통 깨버려!"
세상에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벤지가 짖는 걸 보고 "어머나 이뻐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벤지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벤지가 조그만 개인데, 어찌 싫어할 수 있냐고 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그런 걸 이해해도, 난 벤지가 부당하게 공격을 받으면 화가 난다. 사람과는 웬만하면 싸움 같은 건 안하려고 하는 나지만, 벤지 때문에 싸울 뻔한 적은 몇번 있다. 한번은 어떤 놈이 술에 취해 지나가다 벤지를 발로 차는 시늉을 했다. 득달같이 달려간 난 그에게 협박성 발언을 했었는데, 그가 그대로 물러나 싸우진 않았다. 산에서 어떤 아저씨와 싸울 뻔한 적도 있으니, 개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무예도 갖춰야 할 성싶다.
이런 고난을 이기고 벤지는 17세가 되었다. 88년생이니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만으로도 16세다. 더위를 무척이나 타는 벤지가 올 여름을 무사히 넘기고, 나와 함께 16세 생일을 맞을 수 있기를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