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엄마
어제, 엄마가 이러신다.
"내일 매제가 오니까 니가 좀 놀아줘라"
내일? 할 일도 많은데? "왜 온데요?"
매제가 어버이날이라고 엄마한테 근사한 곳에서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했단다. 그걸 엄마가 "괜히 돈쓰지 마라"면서 반찬이 많으니 우리집에 와서 먹으라고 했다는 거다. 열이 받았다.
"아니 그럴 때는 비싼 것도 먹어보고 그러는 거지, 왜 그랬어요?"
"애들도 있고, 밖에서 먹으면 정신없지"
엄마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셨다.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가끔씩 오시는 파출부 아줌마다. "xx엄마, 내일 우리집에 좀 와줄래? 사위네가 온다고 해서... 뭐? 안된다고? 할 수 없지 뭐" 그래서 사위 반찬을 차리는 건 온전히 엄마 몫이 되었다.

오늘 아침, 엄마는 아침부터 반찬을 차렸다. 내겐 대충 밥을 챙겨주고, 매제가 온다는 시각에 맞춰 진수성찬을 차리기 시작했다. 닭, 돼지, 소에 생선까지, 그야말로 환상적인 식탁이 아닌가. 매제 내외는 "반찬이 너무 많아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신나게 밥을 먹었다. 애들은-그나이 평균에 비해 지나치게 산만한-여기저기 뛰놀면서 집안을 망가뜨렸고, 그네들은 늘 그렇듯이 산더미같이 쌓인 설거지를 남겨놓고 집에 갔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면서 말씀하신다. "아이구, 다리야!" 컴퓨터를 치다가 부엌에 나가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냄비에, 접시에, 수많은 그릇들.... "저걸 언제 다해요?"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버이날 이게 무슨 일이람? 어제도 어머니는 내가 할머니랑 밥을 사드리겠다는 제의를 거절했었다. 집에 반찬이 많다고. 나야 뭐 대충 먹어도 되지만, 사위네까지 집에 부른 건 좀 너무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그렇게 돈, 돈 하시는 걸까. 엄마가 아낌으로써 자식들에게 뭔가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나쁜 건 아니겠지만, 너무 그러니 자식들이 엄마를 우습게 알고, 돈이나 뜯어낼 봉으로 취급하는 것이리라. 권위는 누가 찾아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세우는 것, 우리 어머니는 그 점에서 실패하셨다.

물론 동생네도 나쁘다. 어머니가 오란다고 진짜로 와서 그렇게 민폐를 끼쳐야겠는가?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에도 애들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한끼를 해결하는 일이 잦았지만, 오늘은-정확히는 어제지만-어버이날이 아닌가. 지금도 설거지에 열중이신 어머님을 보니 마음이 아파온다. 차라리 오랜 기간 얼굴을 안비치는 누나네가 동생보단 더 효녀가 아닐까.

2. 오늘
친한 친구가 미국에서 왔다. 그래서 친한 애들끼리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원래 모이는 시각은 오후 세시다. 다른 친구집에 모여 수다나 떨다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난 지금도 안가고 버티는 중이다. 부부동반 모임이라서다. 혼자가 자유롭고 편한 건 있지만, 그런 모임에 가면 아무래도 쓸쓸하다. 쌀쌀한 가을에 반팔을 입은 것처럼, 혼자 그런 곳에 가면 스스로가 왜소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제법 커버린 애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친구들은 그런 애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겠지. 그래서 난 몇 번 그 모임에 불참하곤 했는데, 내가 불편해하는 걸 아는 친구는 내게 이런다. "너는 그냥 바로 식당에 와도 돼"
그 친구 딴엔 배려를 하는 거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더더욱 가기 싫다. 식당이라고 해서 좀 나을까? 가족끼리 한 테이블씩 차지한 마당이라, 내가 앉을 곳은 애매하기만 한데 말이다. 가기 싫은 마음을 아는지 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하지만 이젠 정말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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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5-0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셔서 드시는 건 몰라도, 뒷정리를 어머님께 온전히 맡겨두고 돌아가신 건 좀 잘못하신 것 같네요. ^^;; 적어도 설겆이는 했어야.. 음..

마립간 2004-05-09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친한 친구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을 예로 들면
한 친구가 결혼하기 전까지 누구도 여자를 우리모임에 함께 오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런던 중 하나, 둘씩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혼자는 기혼자끼리, 미혼자는 미혼자끼리 만나게 된 시간이 잠시 있었지요. 하지만 그도 잠시 나머지 친구도 결혼을 하면서 미혼으로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친구들 결혼식에 참여하면서 저만 혼자임을 느겼을 때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좀더 흐르게 되니 친구들의 아이들도 생기고, 친구에게 안부전화했을 때 제수씨들이 주로 전화를 받게되기도 하면서, (다른 친구들로 열심히 살면서 저녁에 안부전화를 하면 아직 퇴근을 안 했음.) 친구도 그리고 친구의 가족도, 만나면 만나는데로 평안한 친구가 되어 갑니다.

다이죠-브 2004-05-09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당당해 지세요. 그 길 밖에 없지 않나요?ㅡ.ㅡ 단지 비가 와서 기분이 꿀꿀한 걸 껍니다. 힘내세요!

비로그인 2004-05-09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컴터치고 있는 아들이 쫌 헹구기라고 했음 좋으려만...글로만 마냥 안되었다고 하시니..원~ 모임은 쫌 그렇겠군요. 잘 하셨어요. 맘이 안땡기면 안하는 겁니다. ^^

다연엉가 2004-05-09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이든 다 주고만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마태우스님 설거지라도 좀 하시지잉..

sweetmagic 2004-05-10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단락 첫째 줄 !! " 내겐 대충 밥을 챙겨주고 "-> 요대목 주시~~!!
님~~~ 또 삐지셨군요~~ ^^ ㅎㅎㅎ
아무리 그래도 설겆이는 좀 도와주시지 그러셨어요. 동생분은 몰라서 그랬다 치고,
어머니 힘드신 줄 뻔히 알면서도 하나도 안 도와드린 님이 더 나빠요 ~

세번째 단락 마지막 줄 !! " 우리 어머니는 그 점에서 실패하셨다 "
어머니께서도 실패 했다고 생각 하실까요 ?
어머니는 아마 기꺼이 이해한다고 하실 것 같은데..
성공,실패란 말보다는 이해 그리고 아직 덜 이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관계,
그게 ..... 부모 자식간의 관계..아닐까요 ?

비로그인 2004-05-1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와서 먹는건 그렇더라도, 설거지는 해두고 갈만 하건만...마태우스 어머님 설거지 하시는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요...마태우스님이 좀 더 잘해드리세요~ 집에 일찍 와서 저녁먹자고 하시면 그렇게 해드리구! ^^

책읽는나무 2004-05-1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댁이든...친정이든....자식들은 손주 보여드린다는 명목하에..때론 안부인사 여쭙는다는 명목하에.....정말 부모님께는 못할짓 하는것 같네요!!....님의 글 읽고 있으니 반성이 됩니다..ㅠ.ㅠ

플라시보 2004-05-1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한 기분으로 가셨을것 같네요. 어머니 사건도 그렇고 부부동반 모임도 그렇고. 술 많이 드셨을것 같습니다. 힘내시길..

마태우스 2004-05-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아네요, 가서는 즐겁게 놀았구요, 술은 출근 생각해서 마니 안마셨어요. 대신 화요일날 코가 비뚤어지기로 했답니다.
책읽는나무/무슨 말씀이세요. 훌륭한 따님이고 며느리신 것 같은데... 저희 집 사람들이 좀 너무한 거죠.
앤티크님/그쵸? 어머님 연세가 벌써 65세인데... 아들 뒷바라지도 모자라 딸 내외 접대까지...잘해드릴께요, 제가.
sweetmagic님/어머님도 실패하신 걸 아실 겁니다. 인정을 안하실 뿐이죠. 그리고 제가 설겆이를 하려는 시도를 여러번 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십니다. 제가 몰래 해놔도 다시 하시거든요. 우리 어머님이 좀 그러세요.
책울타리님/저도 설겆이 좋아하거든요. 근데 어머님이 절 못믿으신데요. 전 참 깨끗이 하는데..
마립간님/저도 뭐 젊은 시절부터 알던 여자들이니 친하게는 지내는데요, 스스로가 왜소해 보여서 문제죠.
폭스바겐님/님은 늘 저만 미워해!!!! panda78님을 본받으세요!!!
토끼똥님/ 당당하게 잘 마시고 왔습니다. 제 토크에 애들이 재밌다고 어찌나 좋아하는지...

sweetmagic 2004-05-10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희 엄마도 좀 그러세요...그래도 저희 어머님은 실패라고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부모님 권위는 부모님 스스로가 아니라 자식들이 만드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바뀌려고 노력 중 이거든요. 잘 안되지만.....참....안돼요...나쁜 습관에 너무 길들여 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