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원래 그러세요?"
내가 흔히 듣는 말이다.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사람들과 시선 마주치기를 꺼리는 내 모습이 처음 만나면 당혹스러운가보다. 나랑 좀 친한 애들은 알겠지만, 그게 내 원래 모습이다.
"그럼...강의는 어떻게 해요?"라는 질문도 가끔 받는다. 강의할 때? 교탁만 보고 한다. 학생들과 눈을 마주친다는 것도 난 어려우니까.

이런 것들은 다 나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소산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소리도 듣는다. "지나치게 겸손하다" 겸손한 걸 가진 게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척을 하는 거라고 정의한다면, 난 겸손한 게 아니라 솔직한 거다.

어릴 적 내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동네에는 친구라곤 없었고, 그 바람에 구슬치기와 딱지먹기, 팽이돌리기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치마바람이 유난히 심했던 초등학교 시절, 내 성적은 언제나 중간을 맴돌았고, 외모가 안되는데다 말주변마저 없으니 놀아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내 주위에 친구가 바글바글한 것은 아마도 그때의 아픈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지만, 성적이라는 게 그렇게 갑자기 오르지 않는 법, 두자리이던 반등수를 한자리 숫자로 올리는 것도 정말 힘이 들었다. 하지만 성적이 오르면서 나랑 놀아주는 애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오직 그 이유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난 보람을 느꼈다).

고교 1학년 때, 중학교 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그 상황에서 내가 애들한테 어떻게 비춰졌을까는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두 번의 시험을 보고나서 내가 제법 공부를 잘한다는 게 알려졌을 때, 우리반 애가 나에게 오더니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하게 생긴 놈이 있어서 유심히 봤지. 그랬더니 수업 시간에 책 뒷장을 보더니 혼자 막 웃데? 그래서 생각했지. 내가 그래도 꼴등은 안하겠구나"
참고로 내가 책 뒤를 펴면서 웃었던 것은, 선생님들이 웃긴 말을 하면 책 뒤에 옮겨적었다가 심심할 때마다 펼쳐본 탓이다.

첫시험에서 내가 일등을 했다는 소문이 나자 애들은 믿지 않았다. "에이, 설마! 농담하지 마!" 그들은 내게 몰려왔다. "너, 진짜야? 일등 했다는 거?" 난 이렇게 대답했다. "미, 미안해. 그렇게 됐어" 진짜로 미안했던 게, 그 전까지 난 한번도 일등이란 걸 해보지 못해서였다.
언젠가 수학 선생님이 내 명찰을 보면서 한 말도 기억이 난다. "이봐 동민!(내가 서민이니까) 공부 좀 해!"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얘 공부 잘해요. 우리반 일등이에요" 수학선생의 대답이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별 이유없이 날 미워하던 xx 선생님은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걸 알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친한 척을 하기도 했다. 그 3년이, 최소한 공부에 있어서는 나의 전성기였다. 쟁쟁한 애들이 몰린 대학 시절, 난 다시금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난 그저 그런 대학생활을 보내다가 졸업을 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딱 3년만 공부를 잘했던 삶, 그러니 나의 낮춤은 내 삶에서 한결같았던 태도였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운좋게도 내가 공부를 잘했던 그 기간이 마침 공부를 잘하면 좋은 그런 때였다는 것도 있지만, 순탄하지 못한 학창 시절을 보낸 덕분에 남들로부터 "교수같지 않다" "겸손하다"는 칭찬을 듣고 사는게 아니겠는가. 내 주위 몇몇 애들처럼 일등만 하고 살았다면 절대 몰랐을 것들을 난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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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4-2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태우스님이 좋아요.. *^^*

LAYLA 2004-04-2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많이 좋아요!! ^_^ 솔직한 모습이 얼마나 좋은건데요 ㅎ

플라시보 2004-04-24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삼년이나마 일등을 해 보셔서 좋으셨겠어요. 저는 도무지 제 삶에 1등이라고는 없는걸요. 그런데 별로 겸손하지도 않으니 이게 왠일일까요? 전 혹 구제불능? 하핫

가을산 2004-04-2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3년이 어딥니까? ^^
저도 '1등'이나 '반장' 모 이런거 별 인연 없었어요. 오히려 되면 스트레스던데..

다이죠-브 2004-04-2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마태우스님 인기폭팔이시네..쿠쿠 혹시 그걸 노리신건지요?

책읽는나무 2004-04-2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설마 기억력에서도
겸손을 떠시는건 아니시죠??^^

진/우맘 2004-04-2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자신을 낮춤과 동시에 다른이를 높여, 행복하게 해주는...그런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비로그인 2004-04-24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께 전적인 동감..... 침묵으로 일관하던 제가 마태우스님 덕분에 입을 열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놈의 알라딘에 서서히 중독 됐구요 ...
페이퍼고 뭐고 다 닫고 현실과 가상현실의 거리조정에 필사의 노력 중인데 ,,,
아 잘 안되네요 .... 책임지세요 !!!

*^^*에너 2004-04-24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앗~ 부끄부끄..저두 마태우스님이 좋아요. ^^

▶◀소굼 2004-04-2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기폭발;이신데요~[아 원래 그러셨지;;]

갈대 2004-04-2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은 낮춤개그의 달인이십니다. 오랜 세월 몸에 쌓아둔 내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머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마태우스님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네요..^^

비로그인 2004-04-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코멘트(위에 모두의 글) 듣고 싶어서 글 올리셨구만요 눈치 깠습니다. ^^

아라비스 2004-04-2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치는 깠다만... 저도 좋습니다.^^ 일등만 해 본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감히, 생각해왔어요.

마냐 2004-04-2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염없이 답글이 붙고 있슴다. 사랑받는 삶, 행복하시겠어요. ^^ 글구, 이건 삼천포로 새는 얘긴데요. 제가 아토피거든요, 그래서, 미모와 인간성을 겸비한(오옷, 뻔뻔 모드!) 제가 공주병에 걸리지 않고, 비교적 겸손(다시 뻔뻔~)한게 다 '아픔'과 '상처' 덕분이라 생각해요....어디가서 돌 맞지 않고 사는게 다 그런 '트라우마'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아픈만큼 성숙해진다. 아라비스님 말처럼 일등만 한 이는 불쌍하죠....마태우스님의 무시무시한 내공 역시 역사와 깊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여다보니, 저는 더 좋습니다요. ^^

마태우스 2004-04-25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어머, 아토피라. 님에게 그런 아픔이...님 말씀대로 알라딘 분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 때문에 행복합니다.
아라비스님/감사합니다. 일등만 한 사람들이 불쌍할 것까지는 몰라도, 하나도 안부러워요!
폭스바겐님/들켰다...역시 님의 촌철살인은...
갈대님/내공이랄 게 뭐 있습니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소금님/제 인기는 순전 알라딘의 정책적인 밀어주기 때문이랍니다. 베스트서재로 초기화면에 벌써 한달째 띄우주고 있거든요

마태우스 2004-04-2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너님/어머나. 인터넷은 얼굴이 안보인다는 게 참 좋습니다!
sweetmagic님/어머나, 님 폐인되신 게 저 때문이구나! 책임지는 뜻으로 님을 주인공으로 한 공주 소설 하나 써야겠군요^^
진우맘님/알라딘 덕분에 님같이 좋은 친구를 알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답니다.
책나무님/제 기억력이 좋나요? 글쎄요. 제가 사람하고 이름은 잘 기억 못하는데...
LAYLA님/알고보면 저 나쁜놈인데, 그렇게 좋게만 보시면 어떡하나 싶습니다.
가을산님/님도 반장을 한번도? 호호, 반갑습니다. 외모로 보아서는 반장 타입인데...
플라시보님/님처럼 미모고 글 잘쓰면 겸손 안해도 됩니다^^
panda78님/님의 이 코멘트 때문에, 다음 소설에 님이 등장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음하하하.

책읽는나무 2004-04-26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력이 좋은게 아니라......
넘 안좋아서요.....
제페이퍼다 님 기억력 별루라고 험담을 좀 했더랬는데....
못보셨죠??^^
이코멘트도 보실수 있을랑가 몰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