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지를 잃고 방황하던 내게 예삐는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 외모, 그 애교, 그 영리함, 지난 2년간 예삐는 내게 너무도 많은 웃음을 줬다.


어느날, 고양이를 쫓던 예삐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한번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그런 일은 이따금씩 계속됐다.
병원에서 잠정적으로 내린 진단은 디스크,
하지만 실신의 양상은 디스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병원에서 예삐 가슴에 청진기를 대본 의사는 예삐의 심장이 늦게, 그것도 불규칙하게 뛴다는 걸 발견했다.
심전도를 찍어보니 120번은 뛰어야 할 예삐의 심장은 50번 정도밖에 뛰지 않았고,
위 심전도 그림에서 보듯 안뛰는 구간이 수시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인공 심박기를 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걸 할 수 있는 곳은 강원대밖에 없어요."


지방선거날, 선거를 일찍 마치고 우린 춘천으로 떠났다.
검사를 마치고 수술 시간까지 강원대 잔디밭에 앉아서 놀았는데,
잠시 후 자신에게 닥칠 시련을 모르는 예삐는 계속 애교를 부리며 놀았다.
수술에 들어간 지 한시간 반이 지났을 때, 의사선생님은 마취에서 덜깬 예삐를 안고 왔고,
조금 있다가는 저 상자에 들어가 회복을 기다려야 했다.
예삐가 좋아하는 육포를 내밀어 봤지만 먹지 않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자길 저렇게 만들었다고 우릴 원망하지 않을까...
의사가 말했다.
"참 담력이 있는 강아지네요. 검사 때도 그랬지만 잘 견뎠어요."

예삐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데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이틀 후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현관에 마중을 나온 예삐는
늘 하던만큼은 아니지만 반갑게 날 맞아 주었다.
인공 심박기의 도움으로 뇌에 혈액공급이 원활하게 되서 그런지
예삐는 더이상 실신을 하지 않아도 되며,
예전보다 더 건강하게 달리고, 애교를 부린다.
예삐가 예뻐 죽겠을 때, 가끔씩 벤지 생각이 난다.
내가 다른 애를 좋아하는 걸 벤지가 싫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가장 내 걱정을 많이 해준 벤지의 성격으로 보아
내가 예삐와 더불어 웃으며 사는 걸 바라리라고 생각해 본다.
배터리의 수명이 십년 정도라니,
십년쯤 있다가 또 예삐를 데리고 춘천에 가야지.
원래 담력이 있는 녀석이고, 두번째 하는 거니까, 더 잘 견뎌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