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뚫고 하이킥>의 준혁은 가사도우미로 들어온 세경을 좋아한다.

준혁의 생일날, “선물 뭐 받고 싶으냐?”는 세경의 물음에 준혁은 영화를 같이 보자고 한다.

세경은 영화를 예매하고, 준혁은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그 다음날, 세경은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세경이 좋아하는 사람은 준혁의 형인 ‘이지훈’이었으니까.

덕분에 준혁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뼈저리게 슬픈 생일을 보내야 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86년 내 생일날이 떠오른다.

생일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된 이후 가장 처참했던 그 생일날이.

그날은 내가 우리 나이로 스무살이 되는 날이었다.

성년식을 해줄 여친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별다른 계획도 없었는데,

그날 아침 아버지는 아침을 먹는 내내 날 야단치셨다.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었고, 그냥 내 모든 것이 마음에 안든다는데 어쩌겠는가?

더 이상 집에 있기 싫어진 난 가방을 싸들고 밖에 나갔고,

소주를 먹으며 영화나 볼 요량으로 소주 두병을 샀다.

 

우리 동네에 있던 동시상영 극장으로 가던 중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그때는 내가 머리를 스포츠로 하고 다니던 때였으니,

어느 모로 보나 내가 범죄자로 보였나보다.

그네들은 내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소주 두병이 나올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던 경찰들은

모르는 사람의 지갑이 나왔을 땐 얼굴빛을 확 바꿨다.

그 지갑은 내가 길에서 주운, 이름만 달랑 써있는 것이었는데,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가방에 넣어둔 거였다.

내 순수함과는 별개로 경찰들은 날 한적한 곳으로 끌고가 본격적으로 조사를 했다.

지금 내 가방이 그렇듯이 그때도 난 별의별 것들을 다 넣어가지고 다녔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내 가방에서 범죄의 흔적을 찾는 건 그리 쉽진 않았다.

이 심각한 사태는 한방에 해결이 되었다.

경찰이 내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던 것.

난 학생증을 내밀었다(예나 지금이나 난 주민증을 안가지고 다니는데, 그건 술먹고 분실할 걸 우려해서다.)

당시엔 대학생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게다가 난 비교적 좋은 대학의 학생이었다.

경찰의 태도는 갑자기 누그러졌고,

그 중 한명은 내게 왜 아침부터 방황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냥 좀 울적해서요.”

경찰이 말했다.

“기분 풀고 집에 들어가세요.”

 

그들과 헤어진 후 난 내가 원래 가려던 동시상영 극장에 갔고,

줄이 벅벅 그어진 화면으로 영화 두편을 봤다.

그걸 보고난 뒤 집에 가서 하루종일 잤던 기억이 나는데,

내 인생에서 그렇게 처참한 생일이 또 있을까 싶다.

결국 난 영화를 봤으니 <지붕킥>의 준혁보다는 상황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스무살이 되던 됐고, 그 후부터는 한번도 쓸쓸한 생일을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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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1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돌아볼 수 밖에 없는 우울한 마음이 종종 남아있을 때가 있어요.

메르헨 2010-01-14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이 겨울이라 학교 다닐때 좀 쓸쓸했어요.^^
꼭...기말고사 기간이거나 종강후라서...
마태우스님 글을 보고 있자니 그냥 막 그림이 그려지네요.
마직막 멘트가 참 맘에 들어요.
늘 행복하시길 바래요.^^

Mephistopheles 2010-01-14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죠. 중학생때 생일날 아버지에게 구타와 더불어 갖은 모욕을 당했었죠. 근데 세월이 그리 흘렀는데 그게 트라우마로 전 아직도 기억하는데 가해자이신 분은 전혀 기억을 못하더군요..ㅋㅋ

보석 2010-01-14 14:03   좋아요 0 | URL
원래 그렇습니다. 당한 사람(?)은 기억해도 가해자(?)는 기억을 못해요.ㅎㅎ
저 역시 어릴 때 방학숙제 안 했다가 정말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은 기억이 생생한데-체벌이라 하기엔 수위가 참 높았던-정작 본인은 기억 못하시더군요.

BRINY 2010-01-14 20:29   좋아요 0 | URL
남자들은 그 기억이 오래가나봐요. 저랑 여동생은 커가면서 그냥 이해하고 사는데, 남동생은 그걸 절대 못잊더라구요.

L.SHIN 2010-01-1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다가 난 비교적 좋은 대학의 학생이었다.
경찰의 태도는 갑자기 누그러졌고,"

아..이 무슨 편협한 행동이란 말인가...ㅡ.,ㅡ
어느 시대나 저렇게,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잣대'를 가지고 차별하는 건 좋지 않아.

그나저나 슬픈 생일이었군요. 그런데, 깜짝 놀랐던 것은, 그 당시에는 소주를 들고
영화관에 들어갈 수 있었나요?


무스탕 2010-01-1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 다니는 12년동안 생일은 꼭 제일 바쁜 시기에 있어서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다녔었죠.
그만두고 좋아졌냐구요? 아뇨.. 이젠 그 시기에 알바하느라 못 챙겨요 -_-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후로 생일이란 그저 주민등록번호에만 박혀 있더라구요.
그래도 크게 아쉽고 속상한건 없어요. 다른날 놀면 되니까요 ^^

카스피 2010-01-1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지나가는 사람 가방을 경찰이 뒤졌다간 인권시비에 걸린테지만 마태님 학창시절은 경찰이 아무가방이 뒤지던 때셨지요.
슬픈 생일이셨겠지만 그 후부터는 한번도 쓸쓸한 생일을 보내지 않았다라니 정말 다행이시네요^^

레와 2010-01-1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참말 다행이예요. 마태우스님..


그리고 지훈이는 준혁이 형이 아니라 삼촌이예요. 헤헤..:)
실제로는 지훈이와 준혁이 동갑이라더군요. 으흐..

이네파벨 2010-01-14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피엔딩이군요^^

세실 2010-01-14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증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지금은 생일날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하시죠~~

Mephistopheles 2010-01-14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달으신 분들...우린 정작 중요한 걸 안물어봤습니다...

"마태님...생일이 언.제.에.요...??"

순오기 2010-01-14 23: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마태님 생일페이퍼를 올린 것 아닐까요?
그럼 우리 모두, 해피버스데이투유~ 를 불러야 하는 거고...

산사춘 2010-01-15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려드릴께요~ (글 분위기에 어긋나게 잘난 척하는 춘)

마태님 생신은 2월 4일이구요,
파비아나님 생신은 1월 20일이어요.
전 메피님 생신도 알아요. 아직 멀었어요.
(다만 양력으로 하시는지 음력으로 하시는지는 몰라요.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과연 어떻게 아는 걸까요? 움홧홧홧홧홧홧
(개인정보노출로 춘 잡혀가면 저 세 분 중 한 분이 신고하신 거예요. 후닥닥~)

paviana 2010-01-15 10:34   좋아요 0 | URL
헉 제 생일은 어케 아세요? 알려드릴적이 없는데...
흠 우린 정말 천생연분이에요.ㅎㅎ


paviana 2010-01-1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경찰이 아부지 모셔오라고 협박안한게 천만다행이야요.
물론 아부지 전화번호 받으면 경찰 아자씨 놀라서 그냥 보내주었을게 틀림없긴 하지만...

sweetmagic 2010-01-15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일이 제 생일이었는데 마태님 축하가없어 슬펐어요.

마태우스 2010-01-1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매직님, 안녕하셨어요? 이게 얼마만이어요!!! 내년엔 꼭 잊지 않을게요
파비님/그, 그러게요 호호.
산사춘님/님은 너무 많은 걸 아시네요 진짜 어케 아시는 걸까...
메피님/얼마 안남았습니다 님 눈치 짱!! 순오기님, 기대할게요
세실님/헤헤 뭐 그렇죠. 호호.
이네파벨님/잉? 아, 그렇죠 해피엔딩...^^
레와님/그렇다면서요. 저도 놀랐어요. 동갑이란 사실에...

아내가 불러서 나머지 댓글은 이따가..죄송.

노이에자이트 2010-01-1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란 게 남에게 당한 일은 잘 기억해도 자기가 남에게 가한 상처는 망각하나 봅니다.그렇다고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 필요는 없겠지만요.

마태우스 2010-01-1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글고보니 제가 가해자였던 적도 숱하게 많네요. 나이들어선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더 많아지는 듯...
카스피님/그래서 해피엔딩이죠 호호.
무스탕님/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생일날이 더 기다려지더라구요. 저를 사랑했던 적이 그리 많지가 않았는데, 지금은 좋아하는 편입니다
LSHin님/너무 웃기는 일이죠. 학생증 한방에...치사하게시리. 글구 영화관이 동시상영이고, 가방 안까지 뒤지진 않았거든요
메피님/저랑 비슷하네요. 반갑습니다. 이런 걸 반가워하는 게 조금은 거시기하지만요.
보석님/안녕하셨어요. 저도 참 먼지나게 맞은 기억이 많이 있지요. 대부분이 억울한 체벌이었다는...
브리니님/그게 남자여자가 다른 게 아니라 정도가 차이있는 게 아닐까요. 저희 누나도 잘 못잊는 것 같던데요..
메르헨님/앗 저는 생일이 겨울이라 좋은데... 제가 그래서 추위를 안탄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주드님/그러니까 우리가 친하게 지내야 한다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