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연서를 받아본 게 꽤 오래 전 같습니다.

연서라는 건 받으면 좋은 거지만,

평소 마음에 있는 사람한테 받으면 기분이 더 좋은 법이지요.

바람구두님의 연서를 받곤 공중에 부웅 뜬 느낌이었습니다.

잘쓴 글이란 나처럼 무거운 사람을 공중에 띄울 수도 있구나,며 감탄에 감탄을 했습니다.

구두님의 글을 계속 떠올리다 보니

잠자리에 들 때도 계속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구두님의 연서는 감사히 받겠지만,

하루 동안 생각을 해보니 그게 저한테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제가 한 일은 크게 보아 내부고발에 해당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제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다른 내부고발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저는 이미 다른 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고,

이번 일이 제 신분에 하등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요.

저는 생각보다 참 비겁하고, 구두님도 잘 아시지만 보수적이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격동의 80년대에 데모 한번 하지 않고 학교를 다녔고,

그 이후에도 제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왔지요.

만약 이 일로 인해 제가 직장에서 쫓겨나야 한다면,

아마도 전 언론사에 제보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긴 해도 일을 벌일 당시 전 많이 무서웠습니다.

제보를 할 땐 나약해지는 자신을 다독거려야 했고,

뒷모습이 나온 인터뷰를 할 때는 무지하게 떨렸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제 고발을 칭찬해 준 업계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스승한테 누가 되는 일을 하냐?" "동문으로서 그렇게 학교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게 옳은 일이냐?"는 게 그분들의 반응이었으니까요.

아내 역시 "자기도 이제 홀몸이 아니잖아!"며 저를 타박합니다.

제가 여기다 글을 올려 "나 이런 일 했다"고 떠벌인 건,

잘했다는 칭찬에 목이 말라서였답니다.

하지만 다른 님들이 해주신 서른일곱개의 추천에 충분히 목을 축였는데,

구두님이 연서까지 보내주시니 이거 참, 제가 스스로 대단한 놈이라는 착각을 하게 됩디다.


아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저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이런저런 나쁜 짓을 이 동네에서도 많이 저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 저를 저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제게 있어 구두님은 벼슬을 마다하고 먼 곳에 내려가 학문을 닦으시는 퇴계 이황 선생 같은 분이랍니다.

구두님의 글들은 자꾸만 나쁜 길로 빠지는 제게 그러면 안된다고 말해 주셨고,

올바르게 산다는 게 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눈 적은 없다해도,

님은 지난 몇 년간 제 스승이셨어요.

이번에 제가 한 행동이 제가 받은 추천에 값할 만한 올바른 일이라면,

그 공은 제 정신적 스승이신 구두님께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구두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쭈욱 지켜봐 주세요.

저도 구두님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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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3-1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흐뭇한 미소가 감돌게 만드는 아름다운 답신이네요.^^

기인 2009-03-1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의 가장 큰 매력이자 마력. 솔직함과 겸손함. 마태님 좋아요 :)

Mephistopheles 2009-03-1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람구두님께 마태님이 술이 부족하다고 고자질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랬더니 한 번 모신다고 하십니다.(저는 빼고요) 참고로 바람구두님이 자랑하신 음식점이 하나 있으니 그곳에서 보자 조르시기 바랍니다. (http://blog.aladdin.co.kr/windshoes/2647216)

이리스 2009-03-1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역시 구두였던 저로서는 어쩐지 므흣해집니다. ㅎㅎㅎ
-__-;;;;;

마늘빵 2009-03-1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훈훈한 마태님! 어려운 결정한 만큼 그 일이 온전히 드러나 제 자리를 찾았으면 합니다.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고, 알려질 사실은 알려져야죠. 마태님 응원합니다! 뭐 도울 일이라고 있음 알려주세요.

paviana 2009-03-16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생처음 뉴스를 다시보기로 봤어요.뉴스꼭지마다 선택해서 볼 수가 있더군요.
말투보고 님인줄 알겠더라구요.ㅎㅎ
어쨌든 좋은 점도 있네요.바람구두님께 이런 연서도 받으시고요.좋으시겠어요.^^

마노아 2009-03-16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참, 난 이 답서를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아요. 아름다운 두 분, 제 맘이 다 따뜻해져요.^^

조선인 2009-03-16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레리꼴레리~ 아이참, 내가 왜 부끄럽죠.

2009-03-16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09-03-16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무스탕 2009-03-16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므낫~
두 분 조만간 오붓한 자리 마련하시겠어요 ^^

딸기 2009-03-1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이 사귀시는구낭.

2009-03-19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9-03-23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잠적 그거,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이다. ^^ 하지만 님은 알라딘의 정신적 지주신지라 그러심 안되죠
요.^^
순오기님/흐뭇한 미소가 감돌게 만드는 아름다운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기인님/아이 참, 저 장가 갔습니다^^
메피님/저 지인짜 술 부족해요. 지난주에도 한번밖에 안마셨다구요!! 연락주심 달려갈께요
이리스님/아앗 절세미녀이신 이리스님! 격려의 댓글 감사드려요
아프님/도울 거라곤 역시 닭발에 소주지요. 제가 맛있는 꼼장어집을 아는데....^^
파비님/잉 제 말투를 보고 저인 줄 아셨다구요 흐음, 저희 엄니도 모르시던데
마노아님/제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님이 아름답습니다....
조선인님/우리 나이 땐 낙엽만 스쳐도 부끄러운 법이죠
속삭님/아직은 님의 도움을 청할 일이 없네요. 제가 아무래도 더 이상 학회에 있긴 어렵겠단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레와님/이심전심이란 이런 거군요
무스탕님/동참하고 싶으시군요!!!
딸기님/소문이 안나도 밝혀질 건 역시 밝혀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