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님의 혼사가 있던 날,
난 여간해선 입지 않던 양복....을 입는 대신
양복 비스무레한 옷을 걸치고 식장에 갔다.
그래도 예의는 갖춰야 하기에
늘 하던 곰가죽 허리띠 대신
장모님이 사주신, 악어 껍질로 만든 허리띠를 맸다.
구멍이 뚫린 구식허리띠가 아닌,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멋진 허리띠를 맸더니
배도 좀 들어가 보인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축의금을 낸 뒤 뷔페에 가서 세접시를 해치웠다.
뿌듯한 마음으로 차를 몰고 돌아오다 본가 근처에 사는 동료를 데려다줬다.
참고로 말하면 지금 사는 집과 본가는 양화대교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다.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오려다 일이 터졌다.
뷔페를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사정이 좀 급해졌다.
난 허겁지겁 본가로 차를 몰았고, 골목 어귀에 주차를 했다.
벨을 누르니 아무도 없다.
엄마와 할머니, 모두 어디 가신 모양이다.
안되겠다 싶어 3층에 있는 공용화장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변기 앞에 섰다.
허리띠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놈의 허리띠가 풀어지질 않았다.
뭔가 방법이 있을텐데 급한 마음에 계속 당기기만 했더니 더더욱 안됐다.
사정은 점점 급해졌고
식은땀까지 났다.
안되겠다 싶어 버클을 제거하려 했지만 그것도 잘 안됐다.
하지만
영화 같은 데서 주인공이 죽을 듯 죽을 듯 안죽는 것처럼
난 결국 허리띠를 푸는 데 성공했다.
버클 밑에 있는 레버를 당기면서 푸는 거였는데 그걸 모른 채 당기기만 했던 거다.
변기에 앉아 휴우 하고 한숨을 쉬면서
새것이 늘 좋기만 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이제는 그 허리띠의 사용법을 알아냈지만
난 그 허리띠를 다시금 장롱 속에 넣어둔 채
예전에 매던 허리띠를 매고 다닌다.
그 허리띠는 급할 때 걸림돌이 된 적이 한번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