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년 6월 권장도서 - 김훈의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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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의 패권자로 부상한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기며 명을 섬기던 조선은 결국 청의 공격을 받아 두 차례의 전쟁을 겪는데, 전쟁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일방적 패배를 당하고 만다. 결국 우리나라 임금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부딪치는 수모를 당하고 만 이 전쟁을 옆에서 보듯이 담담하게 기술한 책이 바로 김훈의 <남한산성>이다. 뻔히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새로운 관점도 제시하지 않은 채 소설로 쓰는 건 웬만큼 내공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누구나 결말을 알고, 반전 같은 건 애당초 없으니 무슨 재미로 책을 읽겠는가. 문장의 대가 김훈이 쓴 책이 아니었다면 난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책은 내 기대를 한치도 저버리지 않았다. 이순신의 활약을 그린 전작 <칼의 노래>가 그러했듯이.
김훈의 뛰어난 점은 전쟁의 참상을 누구보다 더 잘 묘사하며, 그럼으로써 전쟁이 왜 일어나면 안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주린 말들은 묶어 두지 않아도 멀리 가지 못했다...말들의 뼈 위로 헐렁한 가죽이 늘어져 있었다...뱃가죽을 보이며 발랑 뒤집힌 말도 있었다...말들은 죽을 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85쪽).”
책에서 저자는 제대로 대비도 안한 채 청나라와 대립한 인조를 탓하지 않고, 항복하자는 주화파와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전쟁을 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려한 문체로 기술하는데, 읽다보니 마음이 짠해 와서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남한산성에 갇힌 채 오지도 않는 구원병을 기다리며 서서히 굶주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란 얼마나 가슴 아픈가. 그 전쟁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는 모르겠지만, 명분보다 중요한 건 민중들의 생명이 아닐까 싶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김훈은 몇 년 전 한겨레 21의 쾌도난담에서 자신의 소신을 말했다가 시사저널에서 잘리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이지메를 가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에 기가 찼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 김훈의 솔직성에 무척 감명을 받았었다. “남녀평등이 꼭 이루어져야죠” 같은 식으로 적당히 둘러댔다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을 자기 소신껏 말하는 건, 비록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해도 멋진 일이 아닐까. 생뚱맞게 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는 건, 김훈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전율이 느껴지는 이유가 그의 솔직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는 언제나 솔직하다. 그리고 그의 소설 또한 그렇다. 내가 김훈을 좋은 소설가라고 느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