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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평점 :
“유쾌.상쾌.통쾌.”
메가패스 광고에 쓰인 이 카피만큼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고 난 내 느낌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은 없을 듯하다. 96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어 벌써 40쇄 이상을 찍은 이 책을 난 여성주의에 관해 스승으로 모시는 따우님으로부터 받았다. 책 앞장을 보니 받은 날짜도 벌써 2년 전,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묵혀 뒀는지 후회가 막심하다.
이 책의 저자 브란튼베르그는 현재의 상황을 180도 뒤바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세계에선 여성이 지배자이며, 남성은 애를 보고 자신을 치장하는 부수적 존재일 뿐이다. ‘man'과 ’woman'이 있는 게 아니라 여성은 ‘움’, 남성은 ‘맨움’이며, ‘젠틀맨 앤드 레이디’가 아니라 ‘젠틀움 앤드 로디(남성을 가리키는 말)’다. 다음 대화를 보자.
A: 왜 많은 맨움들은 발기하는 데 문제가 생길까?
B: 물론 움들이 더 강한 성충동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A: 그건 단지 신화라고. (내 생각엔) 아이를 임신시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 우리는 항상 아이를 만들지 몰라 조심하잖아(242-3쪽).
맨움해방주의자인 한 맨움은 이렇게 절규한다.
“우리의 존재는 섹스로 환원되어 왔습니다(294쪽).”
책에서 움들은 맨움의 수다를 한쪽 귀로 흘리며 신문을 읽으며, 맨움을 성희롱하며 심지어 성폭행하기까지 한다. 혹자는 이럴 것이다. 여성들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 세상이냐고. 물론 그건 아니다. 맨움해방전선의 주장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성적 차별이 만연하는 현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걸 남녀의 역할을 바꿈으로써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며, 남성과 여성이 같이 짐을 나누어지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갈리아의 딸들>이 뛰어난 작품인 이유는 여성주의에 대해 저자가 워낙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고 있어서다. 남성과 여성이 뒤바뀐 세계, 이런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하나둘이 아니었겠지만, 그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나가 그럴 듯한 책을 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움들은....그들의 신성한 자매애를 추구하고...움들이 서로 사랑하고 맨움을 경멸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모두 동성애로 보이기 때문이예요(314쪽).”란 구절은 여성주의에 대한 저자의 깊은 내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이 누구에게나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남성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고 여성의 참여를 배제하는 현 세상이 불만스러운 사람에게만 이 책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렇긴 해도 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좋은 약이 입에 쓰듯이, 불편함을 주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일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따우님은 도대체 언제쯤 돌아오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