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12월 12일(화)
마신 양: 공부가주 1병
12일은 교수모임(우린 상조회라고 부른다) 송년회, 그날 30분 동안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난 11일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준비를 잘 하려니 끝이 없었고, 시간을 보니 어느새 새벽 다섯시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략 80점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절친한 선생님의 말씀, “전반부는 진짜 환상적이었고, 후반부는 환상적이었어요.”
웃음의 대부분이 초반에 나왔을만큼 초반부는 내가 생각해도 기발했고, 정성이 뻗쳤다. 하지만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머리가 안돌아가 후반부는 좀 대충 한 감이 있었는데, 그렇긴 해도 종합을 해보면 재미 면에서 내가 진행한 상조회 중 2-3번째는 될 듯하다. 시간을 하루만 더 투자했다면 훨씬 환상적이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갈수록 내 시간이 없어져가는 삶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모임이 끝난 뒤 상조회 총무가 내게 오더니 이런 말을 한다.
“상조회장이 번번이 수고한다고 봉투를 좀 하랍니다. 수표가 좋아요, 현금이 좋아요?”
난 원래 결벽증이 있는지라 “제가 이렇게라도 학교에 기여해야죠. 그리고 전 재벌2세잖아요.”라며 거절했는데, 회장의 뜻이 워낙 완강했는지 며칠 후 내 방에 놓고 간 상품권마저 안받을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난 어머님께 효도했다.
* 술 얘기: 상조회 날 우리는 테이블마다 공부가주를 한병씩 시켰다. 공자가 고향에서 먹던 술이라는데, 맛도 맛이지만 향기가 아주 그만이라, 향수 대신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은 중국집마다 틀리지만 대략 2만원 내외, 내 돈 내고 먹긴 아깝지만 공금으로 먹긴 딱이다. 그날 운이 좋게도 우리 테이블엔 술을 먹는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어서, 마음 놓고 한병을 다 마셔버렸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는데, 차가 세차장으로 와 아주머니가 청소를 할 때까지 안일어난 걸로 봐서는 혼자 마시기엔 좀 벅찬 술이었나보다. 차를 향해 퍼붓는 물줄기를 맞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보람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