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경기를 볼 때 난 별일이 없는 한 끝까지 경기를 지켜본다. 이변을 기대해서라기보다 농구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의 그날, 난 끝까지 경기를 보지 못했다. 1분을 남기고 TV를 꺼버린 것. 술약속이 있었지만 2-3분 더 기다렸다 한들 크게 지장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그 경기는 한국과 중국의 아시안게임 결승전이었고, 1분을 남기고 9점 차이로 뒤져 패배가 확실한 그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기엔 내 마음이 너무 여렸다.


농구에 대해선 잊어버린 채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 사람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다.

A; 농구 봤어? 정말 재밌더라.

B: 진짜 통쾌한 승리였어.

난 그들이 중국인인 줄 알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중국말이 아닌, 우리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혹시 우리가 이긴 거 아냐? 설마, 1분 남기고 9점차를 어떻게 뒤집어. 3점슛을 세방이나 쏴야 겨우 동점이 되는데, 그 동안 중국 애들이 골 안넣고 구경만 해?


집에 가서 뉴스를 보고서야 난 우리가 믿기 어려운 역전승을 거두었음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내가 인생에 있어서 몇 번 안될 최악의 선택을 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생애 최고의 명승부가 되었을 그 경기를 난 보다가 때려치운 것이다. 그날밤에 해준 재방송을 비롯해서 그 경기를 세 번이나 더 봤지만, 생방송을 못 본 회한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난, 우리가 어떻게 역전승을 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간다는 뜻이다. 하긴, 그게 스포츠의 매력 아닌가.


엊그제 밤, 명승부 시리즈라며 또다시 그 경기를 재방송해준다. 마지막 1분을 못참은 자가 치러야 할 천형처럼 난 또다시 졸음을 참으며 채널을 고정했다. 1분 남은 상황, 9점차. 해설자가 말한다.

“지금은 무조건 3점 슛입니다. 왜 2점 슛을 쏘는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32초. 7점 차이다. “한국은 무조건 3점 슛이어요”를 외치는 해설자의 뜻을 거스르며 시도한 2점 슛이 성공한다. 5점 차이. 한국팀의 가드는 스틸의 귀재 김승현이다(그에게 공을 빼앗긴 선수는 뺏긴 사실을 모른 채 드리블을 친다고 한다). 그는 마술과도 같은 손놀림으로 공을 빼앗어 내고, 3점 라인 밖에 있는 문경은에게 패스한다. 3점슛이 터진다. 90-88.


당연하게도 반칙 작전이 나왔다. 중국의 자유투. 하지만 후웨이둥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실패하고, 리바운드 볼은 한국의 차지다. 남은 시간은 단 10초. 현주엽은 공을 혼자 몰고들어가 드라이브인 슛을 성공시킨다. 매직히포 현주엽이 바닥에 쓰러지는 동시에 공은 림을 통과한다. 90-90 동점. 중국 선수는 당황했는지 골밑의 야오밍에게 패스하는 대신 턱도 없는 3점슛을 시도한다. 노골. 그리고 연장. 서장훈의 3점슛. 김승현의 멋진 수비. 현주엽의 슛. 그렇게 우리는 이겼다. 하이라이트 장면을 합치면 열 번도 넘게 본 시나리오건만, 아직도 난 그때의 나를 자책한다.

“왜 보다 말았을까. 이 바보, 바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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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놓치기 아쉬운 정말 재밌는경기였네요. 저는 스포츠는 뉴스로도 안 보지만 가끔 넋놓고 앉아 보게 되면 연장전까지 가는 야구경기도 주먹을 쥐고 보게 되요.왜 그런지 모르는데 재밌더라구요.

마노아 2006-12-0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저는 이 페이퍼만으로도 긴장감이 팍팍 느껴져요! 이제 그만 자책하셔요6^^

가랑비 2006-12-02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에, 그러니까 이 글의 교훈은 뭐든지 끝까지 달려봐야 안다는... 달려~!!

moonnight 2006-12-0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마태님의 중계가 넘 박진감넘칩니다.;;; 사실 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는..요즘 세상과 벽을 쌓았더니. ㅜㅜ;

비로그인 2006-12-02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쉬움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아우~ 아쉬워~!

마법천자문 2006-12-02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좌편향 이념을 주입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습니다. 우리 뉴라이터 교과서포럼에서는 교수님을 요주의 인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민감한 시기에 세계화 정신에 어긋나는 민족주의 감성을 자극하고 친북좌파들이 좋아할만한 이런 글을 올린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해주시기 바랍니다. 해명이 충분치 않을 경우에는 교수님의 술일기를 쿠데타로 3류소설을 폭동으로 교과서에 서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스탕 2006-12-02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경기를 보는듯 합니다. (전 그 경기 안봤나봐요. 생각이 안나... --a)
슬램덩크의 긴장감, 박진감, 화려함, 통쾌함이 TV에서 생중계 됐었군요.

짱꿀라 2006-12-0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교수님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가 있습니다. 매번 읽을때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시나 생각이 매우 기발하시더라구요. 읽는 재미를 주시는 교수님 사랑한답니다. 농구 좋아하시나봐요. 저도 농구 보는 것 정말 좋아하고 예전에는 KCC감독인 허재 팬였답니다. 일요일 잘보내세요.

마태우스 2006-12-0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칭찬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사와요... 저 농구 캡 좋아해요. 허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현대랑 챔프전 치르는 걸 보면서 생각이 달라지더이다. 지금은 존경...하려 했는데 KCC 감독 맡아서 민랜드 뺐기고 최하위 달리는 거 보니까 다시금 원망이....흑.
무스탕님/제 글보다 백만배쯤 큰 감동을 TV가 줄 겁니다^^ 근데 녹화는....흑...생방송에 비하면 암것도 아니죠
드루이드님/아앗 드루이드님. 전 제가 좌편향인 걸 숨기고 있었는데, 별 생각없이 쓴 이 글에서 제 좌편향 사실을 알아채 버렸군요. 농구로 위장한 친북좌파 선동글을 알아채신 님의 눈썰미에 존경을 표하며, 앞으로는 더 꼭꼭 숨겨야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만 봐주세요
크리미슈슈님/제말이 그말입니다. 넘 아쉬워요....
달밤님/세상과 벽을 쌓더라도 저한테 그러심 안됩니다^^
벼리꼬리님/바로 그거죠! 핵심을 잘 캐치하셨군요
마노아님/그만하라는 님의 말에 다시금 자책을 하게 되네요 흑 으흐흐흐흑
승연님/스포츠에선 정말 예측불허의 일이일어나죠.그게 스포츠의 매력이구요. 야구는 쉬는 시간이 중간중간 많구 챤스 때만 봐도 되지만 농구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더 흥미진진.

모1 2006-12-03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일이 있었군요. 대단한데요. 1분에 그 큰 점수차를 따라잡다니..생방손 못보신 회한의 심정 이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