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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감에 압도될 때, 지혜문학 - 무의미한 고통에 맞서는 3,000년의 성서 수업 ㅣ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4
김학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기에, 성경의 내용이 익숙하다. 사실 이 책을 마주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꾸준히 읽어오는 인생 명강 시리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경 속 잠언, 전도서, 욥기, 야고보서가 담겨있기에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경 속 말씀을 토대로 쓴 글이긴 하지만 종교적 색채가 상당히 약하고 오히려 인문학적 색채가 월등히 진하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의 토대가 아닌 인문학의 토대로 쓰인 책이기에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정도냐면, 불교 경전이 도입부부터 등장한다. 곁들여지는 내용 중 상당수는 고대 문헌이나 그리스 로마신화도 있다. 책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의 경계가 부단히 다양하고 깊이 있다. 잠언, 욥기, 전도서, 야고보서가 성경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읽는다면 진짜 모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내 의도와 다른 책 내용에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렇기에 많은 독자들이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점은 강점이라 하겠다.
저자가 말한 4권의 성경들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지혜"다. 저자는 잠언에는 혼돈과 어둠을 이기는 지혜라는 제목을, 욥기는 고통에 맞서는 고귀한 지혜라는 제목을, 전도서에는 덧없는 삶을 즐기는 지혜라는 제목을, 야고보서는 삶을 조소하는 지혜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기에 앞서 책의 시작에 지혜에 관한 이야기로 책을 연다. 저자는 지혜를 지도, 시계, 나침반에 비유해 서명한다. 인생의 망망대해 속에서 표류할 때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고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지혜를 담고 있는 성경 속 4권을 통해 삶의 영역에서 필요한 지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책을 꼽자면 단연 욥기가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욥이라는 인물이 모든 것을 잃고(재산, 가족, 건강 등) 친구 셋과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바로 욥기인데, 문제는 그가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고통 속에서 욥은 자신이 믿는 신 야웨를 욕보이지 않는다. 욥기의 대부분은 친구들의 비난과 논쟁에 관한 글이다. 성경의 관점에서 욥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욕하지 않은 의인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책 속에서는 신보다는 고난을 이겨낸 욥의 관점에서 지혜를 논한다. 욥처럼 극적인 어려움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삶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인과관계로 이루어진 어려움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돌발적으로 주어진 어려움들도 상당히 많다. 그런 어려움 앞에서 우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저자는 욥기를 통해 인간으로의 고귀함을 잃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티끌에서 온 인간이기에, 티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삶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책의 시작인 잠언부터 야고보서까지 계속 이어지는 맥락이라 볼 수 있다.
혼돈과 고통, 공포와 허무함 속에서 인간은 어떤 지혜를 기억해야 할까? 4권의 성경 속 지혜를 통해 삶의 가치를 좀 더 바로잡고, 삶의 깊이를 재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