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평범한 가족
마티아스 에드바르드손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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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족 앞에 "거의"라는 단어가 붙음으로 책의 내용은 평범함의 범주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지극히 평범해 보였던 한 가족을 향한 광풍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가족이라고 하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 같은 상황을 보아도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최선이 아닌 구속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가족은 혈연이라는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다 용서될 수 있다는 선입관 때문에 더 어긋날 수 있는 관계이고, 나아가서 가장 가까운 관계기에 행동을 더 조심해야 하는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스웨덴 서남부의 고즈넉한 도시 룬드는 스칸디나비아 가톨릭교회의 중심지였고, 스웨덴 국교회의 주교구이다. 목사인 아빠 아담 산델은 신실한 크리스천이다. 아내인 울리카는 명망 있는 변호사로 둘 사이에는 외동딸 스텔라가 있다. 18살의 스텔라는 이웃에 사는 친구 아미나와 함께 뛰어난 핸드볼 선수로 알려져 있다. H&M에서 알바를 하는 스텔라는 요 근래 들어 늦은 시간에 귀가한다. 그날도 알바가 끝난 후 친구 아미나를 만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는 딸 때문에 아담은 노심초사한다. 2시가 다 된 시각에 돌아온 스텔라는 2층으로 올라가서 내는 소리를 들은 아빠는 그제야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스텔라가 사라진다. 핸드폰을 놓고 말이다. 부모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돌아오지 않는 딸 때문에 아담과 울리카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얼마 후 변호사 미카엘 블롬베리로 부터 연락을 받는다. 스텔라가 경찰서에 구류되어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씐 혐의는 크리스토퍼 올센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크리스토퍼 올센이 형법 교수인 마르게르타 올센의 아들이고 사업체를 여러 개 경영하는 33세의 사업가라는 사실로 입김이 센 어머니를 둔 관계로 그 어떤 사건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했던 스텔라는 학교에서도 종종 친구들을 강압적으로 대한다는 우려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무슨 촉이었는지, 아담은 스텔라가 세탁기에 넣어 둔 흰색 블라우스가 붉은 얼룩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스텔라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그 아이를 지키고 싶었던 아빠 아담은 스텔라가 집에 들어온 시간을 조작해서 경찰에 증언한다. 그리고 블롬베리와 아내 울리카와 함께 딸을 이 모든 사건으로부터 구해낼 방법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사건은 스텔라에게 불리해지기만 하다. 아미나는 사건 당일 스텔라를 만나지 않았다고 아담에게 털어놓는다. 사건이 있던 곳에는 스텔라가 신고 있던 신발과 같은 크기의 족적이 남겨져있었고, 스텔라를 봤다는 증언자까지 생긴 상황이다.

과연 크리스토퍼 올센을 살해한 사람은 정말 스텔라가 맞는 걸까?

책에는 아버지 아담의 시선, 딸인 스텔라의 시선, 어머니인 울리카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누구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진실은 다르게 보인다. 셋의 시선이 교차하며 사건은 점점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셋의 시선이 모두 동일한 결과를 도출해 내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에 가닿게 된다. 책의 말미를 향해가면서 사건의 진짜 본질이 드러난다. 반전이라면 반전일 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목회자의 자녀들의 경우 두 가지 모습을 띄는 것 같다. 부모처럼 종교적인 사람이 되거나, 철저히 반대적인 모습을 가지거나... 정직한 목사 아버지를 둔 스텔라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기에 더 쉽게 유혹과 퇴폐적인 문화에 급속도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미 그렇게 중독적으로 빠져든 관계를 벗겨내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에게 최고의 가치를 둔 우정이 침해를 받자 다시금 올바른 시선을 갖게 된다. 그녀의 선택은 바로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반면, 부모인 아담과 울리카는 어땠을까? 부부에게 최고의 가치는 자녀 스텔라였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었던 부모의 모습 말이다.

내가 어떤 가치를 가장 우선으로 두고 있느냐에 따라 사건의 본질은 달라진다. 책을 덮으며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한다.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하게 잘라낼 수 있는 가치가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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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군주론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9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용준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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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는 순간 무척 반가웠다. 얼마 전 군주론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 군주론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지만, 쉽지 않겠다 싶었다. 다행이라면 읽기 쉽게 풀어쓴 시리즈를 통해 어렵게 느껴졌던 고전들을 한결 편안하게 읽고 있었는데 이번 시리즈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나온 것이다. 물론 번역자는 마키아벨리 속 어려운 표현과 단어들이 그마다의 필요가 있기에 어려워도 원문의 뜻을 최대한 살려서 번역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번역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막상 책을 읽으면서 보니, 내가 그동안 군주론의 원서만 보지 않았을 뿐 이런저런 책이나 매체들을 통해 예방접종 격의 이야기들을 접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접했으면 당황스러웠을 격한 표현들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번역가는 군주론을 이해하기 앞서 저자 마키아벨리와 그를 둘러싼 배경들에 대해 먼저 설명을 시작한다. 군주론이라는 이름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유력한 정치가 거나 힘 있는 뒷배가 있는 고위직 관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기 싶은데, 그는 하급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냉철하게 주변 국들의 정치를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있었기에 명 저서를 남길 수 있었다.

군주론 속에는 유럽의 정치제도에 관한 이야기가 전면 부를 차지한다. 군주국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 상당 페이지를 할애한다. 타 국을 정복했을 때 군주가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닌 소위 찍 소리도 나지 못하도록 완전히 짓밟아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어설프게 정복하면 복수를 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뿐만 아니라 군주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자격과 노력 없이 쉽게 군주가 된 사람은 오래 지위를 이어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생도 해보고, 경험도 해봐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21세기인 요즘에 읽어도 놀랄만한 군주의 리더십은 어설픈 리더보다는 냉철하고 현실감각이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기존의 정치제도와 괴리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도 교훈을 시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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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무임술차 좀 할게요 - 방구석 혼술 유튜버의 인생 해장 에세이
이다정 지음 / 북라이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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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성공은 한 세트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서운한 짜장면과 짬뽕처럼.

그래서 세상은 공평하게 짬짜면이라는 것을 만들었지.

역시 사람은 행복의 밭 몇 개가 비워져 있어야 머리가 잘 돌아간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많이 웃었던 것 같다. 저자의 필력에 한 번, 허심탄회하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솔직함에 한 번, 왠지 모를 공감에 또 한 번. 유튜브를 안보지만, 이 정도로 흥미롭다면 인기가 있을만하다 싶기도 했다.

술을 즐겨서 회식마저 즐거운(나는 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어서 회식이 즐겁지 않은 것일까?) 저자는 의외로 우울할 때는 금주를 한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는 우울할 때 술을 마시지 않나? 이렇게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저자이기에 지금껏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고수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올 6월부터 만 나이로 바뀌어서 상당수가 나이가 줄었다고 좋아하지만, 저자는 어떻게 먹은 나이인데 순식간에 빼앗기냐며 반대적 의견을 내뱉는다. 그와 함께 다시 사는 36세이기에 선물 받은 기분으로 잘 살고 싶다는 예상치 못한 답도 내놓는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참 많고 상상의 나래를 펴지만, 정작 현재 남자친구조차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비혼 주의가 아니기에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의연함과 아직은 중매라는 말보다 소개팅이라는 말로 이성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모습도 귀여웠다. 나이가 들수록 소개팅이 덜 들어온다고 넋두리를 하지만, 누구와의 만남이건 술안주가 맛있는 곳으로 약속 장소를 잡고 첫 만남에서부터 소주를 시키는 대범함은 절대 쉽게 가질 수 없다는 사실. (본인은 자만추라 하지만, 글쎄요.... 아무리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도 첫 만남부터 술잔을 기울이면 저자의 경험대로 애프터가 들어올 수 없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엔조이보다는 결혼을 염두에 둔 만남일 테니까...)

책 속에는 직장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수 등장한다. 입. 퇴사 경력만 놓고 보자면 한참 선임인지라(나는 두 번째 직장에서 14년째 근무 중이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흥미 또한 마주할 수 있었다. 직장과 가족 이야기에서 저자는 정말 긍정적인 생각의 소유자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 년에 두 번씩 결혼에 대한 잔소리 타임(명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장을 다니길 포기한다는 센스는 아무나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말이다.

비록 대기업을 다니지 않아도, 멋진 남친이 없어도,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어도 내 삶을 내 스스로 만족한다면 그걸로 ㅇㅋ 아닐까?의 자세는 참 부러웠다. 수시로 주변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끌어내리는 성격을 가진 나로서는 저자의 무한 긍정의 자세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착각 속에서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보면 눈물이 핑 도는 이야기도, 배꼽 빠지게 웃픈 이야기도 있다. 비하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황(?)들도 특유의 건강함으로 가볍게 넘기는 자세는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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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공룡시대에 산다 - 가장 거대하고 매혹적인 진화와 멸종의 역사 서가명강 시리즈 31
이융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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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나 스스로 변화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들을 솎아내는 것이다.

나는 공룡을 참 좋아하는 어른이다. 덕분에 소리를 지르면서도 쥬라기공원 시리즈를 많이도 봤다. 공룡 관련 영화가 개봉하면 꼭 시간을 내서 극장을 가기도 하고, 피규어를 비롯하여 공룡 관련 책도 가지고 있다. 내 공룡 사랑을 주변에서도 아는 터라, 공룡 관련 피규어가 나오면 연락을 주기도 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아이들 역시 공룡을 참 좋아한다. (참고로 둘 다 딸이다.)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들 엄마랑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상당수의 아이들이 그 어려운 공룡의 이름을 꿰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아이처럼 부모가 공룡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 공룡 박사들이 나이가 먹을수록 공룡과의 이별(?)을 택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공룡에 대한 서적들의 경우도 주된 독자층이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가지고 있는 공룡 책 중 대부분이 아이들을 위한 책이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 못내 아쉬움을 느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융남 교수가 나와 같은 공룡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위해 서가 명강 31번째 서적을 집필했다는 사실이 무척 감격이었다. 실제 공룡을 연구하는 전문가를 통해 실제 발굴 현장의 이야기를 이토록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이 책은 충분히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있다.

물론 공룡에 관심이 없다 해도 이 책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책 속에는 공룡 발굴과 복원 현장의 이야기뿐 아니라 진화에 관한 이야기와 한반도에서 발견된 공룡이 흔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공룡과 조류의 연결점에서 이루어진 진화의 이야기 등이 등장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공룡 관련 영화는 꼭 찾아서 보는 터라, 우리 집에는 한국의 공룡으로 유명한 점박이(타르보사우루스)의 중형 피규어가 있다. 근데, 점박이가 우리나라 공룡이 아니라니...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정말 큰 충격이었다. 타르보사우루스는 우리와 멀지 않은 몽골에서 발견되었는데,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수각류(육식공룡)이다. 그 밖에도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부경고사우루스와 화성에서 발견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몽골에서 발견한 데이노케이루스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었고, 무척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3부에 직접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이야기였다. 사실 나 역시 과거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보며 잠시나마 고고학자의 꿈을 키우기도 했었다. 유물과 유적을 발견하는 모습이 영화 속에는 무척이나 극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발굴 작업의 이야기는 무척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3D라고 할 정도로 발굴은 쉽지 않았다. 우선 공룡 화석이 발견되는 곳 자체가 접근이 쉽지 않은 협곡이나 사막 등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자연적 제한이 컸다. 또한 화석이 발견된 경우 위로 쌓인 지층을 다 제거해야 하기에 하나하나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발견된 암석의 경우 연구를 위해 우리나라로 가지고 와야 하는데,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석고로 깁스하듯 화석을 싸야 한단다. 그러다 보니 무게나 부피 자체가 커져서 이래저래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고생물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적은 편이다 보니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새로운 공룡을 발견할 때의 기쁨을 알기에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역시 공룡덕후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닌구나 싶다. 우리나라는 OECD 가운데 유일하게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나라라고 하는데, 저자는 바로 기초과학에 대한 경시의 문화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많은 화석과 유적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등장해야 할 것 같다. 그를 위해서 여러 방면에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건이 확보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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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로리 넬슨 스필먼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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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트레스피아노 마을에 있는 폰타나 집안에는 한 가지 저주가 흐른다. 저주를 한 사람은 필로미나 폰타나라는 소녀였다. 그녀가 저주를 건 상대는 자신의 동생인 마리아 폰타나였다. 얼굴도 마음도 뛰어나지 않았던 필로미나에게는 코시모라는 애인이 있었는데, 그는 바람기가 심했다. 운명의 장난일까? 필로미나에 비해 얼굴도 마음도 뛰어났던 동생 마리아를 보고 코시모가 첫눈에 반했다는 것이다. 기회를 보던 코시모는 강제로 마리아를 추행하려고 했고, 그 장면을 보고 둘 사이를 오해한 필로미나는 동생에게 돌멩이를 던져 한쪽 눈을 멀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폰타나 집안의 모든 둘째 딸들에게 평생 사랑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내린다. 그로부터 200년이 흘렀고, 그동안 폰타나 집안의 둘째 딸들은 누구도 사랑을 찾지 못한다.

브루클린 남쪽 벤스허스트에 사는 에밀리아는 29살의 제빵사다. 외할머니인 로사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제과점을 운영 중이다. 엄마인 조세피나 폰타나 루케시 안토넬리는 에밀리아를 임신했을 때 백혈병이 걸렸지만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해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엄마의 얼굴도 모르는 에밀리아는 그렇게 언니인 다리아와 로사 할머니 곁에서 자란다. 유난히 에밀리아에게 차가운 로사 할머니. 딸을 잃게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집안에 흐르는 저주 때문일까? 에밀리아의 빵을 맛보고 칭찬하는 남자 손님에게조차 얼굴을 내밀지 못하도록 철벽 방어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 걸까? 일찍 혼자된 사위에게 추파를 던지는 이웃 여자로부터 사위를 지키기 위해(?) 도끼눈을 뜨고 감시하기도 한다. 에밀리아의 언니 다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에밀리아를 이용해 먹기만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동생에게 미룬다. 세 명의 자녀들의 숙제부터 북클럽 모임에서 먹을 케이크까지 말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다리아 보다 에밀리아가 훨씬 능력이 있다. 에밀리아는 제빵 기술뿐 아니라 작가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에밀리아는 스스로 뛰어난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다. 어려서부터 다리아와 로사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감을 잃어가는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보낸 사람은 포피 할머니였다. 로사 할머니의 동생이자, 집안에서 내쳐진 폰타나 집안의 둘째 딸. 에밀리아와도 그저 명절 인사 정도의 편지만 주고받은 사이인데, 포피는 에밀리아에게 이탈리아로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당연히 로사와 다리아는 포피와의 여행을 결사반대한다. 아니 협박에 가까울 정도의 반대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포피와 에밀리아 그리고 사촌이자 둘째 딸인 루시아나는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로 다른 이들의 여행은 쉽지 않은 법. 더더구나 세대가 다른 둘째 딸들의 여행은 각종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 여행을 통해 각자가 품고 있는 목적이 달랐다는 것도... 여행을 계획한 포피는 59년 전 마주했던 연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루시아나는 폰타나 집안에 내려진 둘째 딸에 대한 저주를 깨고 싶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여행을 통해 하나 둘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출생의 비밀 말이다. 왜 그렇게 로사 할머니가 자신의 동생 포피에게 적대적인 반감을 품고 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니 말이다.

어째서 폰타나 집안에 둘째 딸들에게 내려진 저주(사실은 못된 언니가 동생을 오해해서 내뿜은 말에 불과한 것이지만 말이다.)는 200년이나 내려온 것일까? 그동안 왜 집안의 둘째 딸들은 진정한 사랑을 맛보지 못했던 것일까? 아마 그들은 알게 모르게 이 말이 굴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에밀리아만 봐도 자신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타인과 관계가 진전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노력을 하기보다는 순응하는 면모를 보이니 말이다. 이 말은 그저 노력을 피하는 굴레가 되었다. 하지만 둘째 딸들의 여행을 통해 그녀들은 이 말이 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내려진 저주를 끊어냈던 것일까? 읽을수록 가독성 있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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