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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엘리 위젤 지음, 김하락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읽은 뒤 꽤 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표지도 바뀌고(내 기억이 맞다면 사람 얼굴 그림은 원래 표지에 없었다.) 서문도 추가되는 등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그 만큼 책에 대한 내 처음 감정도 변했을 거라 생각한다.
[일상에서 시작되는 비극]
그때 처음으로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왜 ‘그’의 이름을 송축해야하는가? 전능한 존재, 지엄하고 영원한 우주의 지배자는 침묵을 택했다. ‘그’에게 고마워해야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76p
몸뚱이가 고요한 하늘 아래 연기로 화해버린 어린이들의 얼굴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영원히 앗아간 밤의 침묵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하나님과 내 영혼을 죽이고 내 꿈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그 순간들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하나님만큼 오래 산다 하더라도 이것들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77p
사실 이 책은 수기라 하기에는 문학적이며, 소설 같은 문학이라고 하기에는 개인의 체험이 강하게 담겨 있어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을지 모호하다.
이야기는 신비주의에 관심 있던 자신의 과거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추구하던 학문, 그리고 비극이 있기 전, 위험을 알리던 사람과 이를 무시하는 다수처럼 사회적으로 생각할 만한 이야기들이 종종 나오지만, 이들은 가볍게 자나간다.
대신 서문에서 강조한 바에 따라, 저자는 사회적 분위기나 집단의 안이함, 그리고 또 다른 집단이 보여주는 광기 등에 관심을 두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도입부와 달리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극한 상황에서 개인의 실존과 인간의 나약함에 집중한다.
우선적으로 저자는 재소자들이 죽은 이들을 위한 카디쉬를 암송했지만, 저자는 “왜 하나님을 찬미해야 하는가?”하는 저항심이 생겼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절대 정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가족의 죽음을 접하고 무너져 내린 사람이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자, 또는 “하나님은 어디 있지? 나도 그렇거니와 자비로운 하나님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나?” 라 말하는 랍비 등 책이 진행될수록 가족, 종교, 또는 그 밖에 각 사람이 의존하던 모든 것이 하나씩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그려지며, 이 모든 상실을 통해 인간의 실존 역시 하나씩 사라져 갈수록,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왠지 슬프다.
무너져 가는 인간의 종점, 다시 말해 신 앞에선 인간으로서 가지는 실존마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절정은 비교적 초반에 나온 소년의 처형에서 극에 달한다.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던 아이, 그의 얼굴은 마치 비탄에 잠긴 천사 같았다.”(120p)
교수형을 선고 받았으나 몸이 가벼워 바로 죽지 못하고 목이 매달린 채 30분이 넘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통당하던 그 소년.
이 때 누군가가 말했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122p)
그리고 저자는 여기서 신의 죽음을 경험한다.
그때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지.” (123p)
다른 이들의 교수형에서는 “그날 저녁 수프는 어느 때보다 유난히 맛있었다.”(119p)던 저자는 이렇게 새로운 유형의 죽음을 체험한 뒤 수프에서 시체 맞을 느낀다.
의지하던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순간.
물론 목숨과 바꾼 율리에크의 마지막 바이올린 연주 같은 아름다운 시간, 빵 하나를 위해 아버지를 죽인 아들 등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이미 앞에서 극단적인 죽음들, 신의 죽음까지도 체험해서일까? 대부분 이야기를 차갑다 못해 오히려 평범하게까지 전한다.
[아쉬움과 고민,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
극단적인 상황을 직접 경험한 자가 말하는 인간의 고통과 잔혹함은, ‘과연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 혹은 ‘극한 상황, 부당한 폭력 앞에선 개인의 나약함과 극한 상황에서 침묵하는 절대자는 존재 하는 것인가?’ 등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 책이 여러 가지 개인의 실존이 흔들리는 보습들이나 폭력, 학대 같은 장면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다른 작품들보다 문학성이 뛰어나다고는 하기 어렵다. 개인 내면과 체험을 어느 작품보다 생생하게 그려내지만, 이점이 길어지면서 얼핏 단조로울 수도 있는데다가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처럼 아우슈비츠의 시간을 새롭게 보여주거나 하는 독특한 작품도 아니다. 게다가 위에서 말했듯 그가 말하는 약자는 ‘유대인’에 한정 되어 있는 것도 아쉽다.
다만 추락한 인간의 모습, 동전을 던지고 원주민들이 그것을 잡으려고 서로 싸우며 죽이는 모습을 바라보기 위한 위선적 자선처럼(176p) 승자도 패자도 모두 인간성을 상실한 그 현장을 보다보면 화가 나기보다 두렵고 슬퍼진다. 내 안에도 인간으로서 그런 부분이 있을 것이기에.
정의란 찾아 볼 수도 없었던 살육의 현장을 무력하게 바라보던 소년, 혹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개인, 아버지의 죽음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끼기도 한 나약한 인간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한 뒤 거울에서 본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산 자나 죽은 자나 모두가 그곳에서 파괴되었을 뿐이다. 이 점이 서글프고도 두려운 것이다.
“거울 속에서 시체 하나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은 언제까지고 나를 떠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들만 피해자일까?]
하지만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존재, 특히 개인 실존과 변질, 인간의 나약함과 추악함을 생생하게 저하지만, 그 잔혹함을 넘어 다른 민족에 대한 사랑이나 박애까지는 보여주지 못했다.
예를들어 85쪽(이전 판에서는 63쪽)에
“집시 10여 명이 들어와서 우리를 감시했다. 곤봉과 채찍이 휙휙 주위를 날아다녔다.”
에서 보듯이 집시족 등 다른 민족을 가해가로 그리는데, 유대인들의 고통과 달리 세계 대전 중 다른 민족 역시 당했을 학대나 고통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물론 당시에 저자와 유대인을 감시하던 이들이 정말로 10여명의 집시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구 비로 보면 나치에 의해 유대인보다 더 큰 살육을 당한 민족이 집시족인데다가, 보상에 있어서도, 각지에서 강한 세력으로 정착한 유대인과 달리 세계 각지에서 부유층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경우가 많은 집시족은 여러 부분에서 소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폭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약자’의 괴로움을 그리는 과정에 단지 자신 주변만을 피해자로 묘사하는데 그쳤다는 점은 분명히 아쉽다.
이번 개정판에 추가된 노벨상 수락 연설문을 봐도 저자인 위젤은 분명히 폭력에 항거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의 테러에 비해 이스라엘의 폭력은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볼 때에도 사회나 민족 등 큰 틀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남겨진 이들, 또는 밖에서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파되 되어가는 모습, 그 장면 하나 하나가 주는 인상은 변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도록 만든다. 물론 우리가 그런 파괴된 약자들에게 해주어야 하지만 해줄 수 없는 말, 혹은 그 말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문의 프랑수아 모리아크를 따르는 일 밖에는 없다.
“하나님이 정말 하나님이라면 모두를 위한 마지막 말은 ‘하나님’에게 속한다.” 이 유대인 소년에게 그 말을 해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소년을 껴안고 흐느끼기만 했다.
(27p)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말
결국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이스라엘에서 조차 계속되고 있을 폭력 속에서 희생된 이들, 혹은 살아남았으나 결국 시체로 남겨진 자들과 다름 아닌 이들에게, 사건 밖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다.
같이 울어줄 수 있을까?
그들을 품에 안고 흐느낄 수 있을까?
"거울 속에서 시체 하나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은 언제까지고 나를 떠날 줄 몰랐다." (195p)
내 뒤에서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묻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그때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지." (123p)
신비주의자였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사람은 하나님보다 강하고 위대하다. [중략] 당신의 배반으로 날마다 고문당하고, 학살당하고, 독가스를 마시고, 산 채로 불태워지는 이 사람들을 보라,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신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다!(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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