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고고학
에릭 H. 클라인 지음, 류광현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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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책을 읽을 때는 먼저 성서가 말하는 역사적 사실들과 이에 대한 신뢰도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들이 있으며 최대주의자 내부와 최소주의자 내부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료를 두고도 해석들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조금 거리를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요즘 전문가들의 글들에서도  특정 유물이 성서가 진실이라 입증한다고 주장하거나, 반대로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말하는 등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히타이트 유물이 비교적 최근인 19~20세기  안쪽에서 발굴 되었음을 생각할 때, 거짓이라는 유물이 발굴 되기 전까지는 한 걸음 물러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소주의의 입장을 따른다면 성서의 많은 부분을 후대 편집으로 보거나 깔끔하게 ‘역사적 근거가 없음’으로 본다. 다시말해  최소주의에서는 결정적인 사료가 나오기 전까지 성서의 역사적 가치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은 얼핏 객관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어떤 사료가 나온 경우 조차 이에 대해 성서와 반대되는 해석을 하려고 무리하게 주장하는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이 관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않다.

 

  그래서 지금까지 객관적이라 생각했던 최소주의자들에게서는 결정적인 사료가 나와도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혹은 무리하게 반박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아쉬움을 느꼈고, 반대로 최대주의자들에게서도 아직은 불확실한 사료일 뿐인데도 너무 성급하게 성경과 연결시키려 해, 이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안타깝기까지 했다.

 

  하지만 본서는 성서를 지지하지도, 혹은 반박하려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작은 입문 수준의 책이지만 전공자들에게도 이후 공부를 위한 바람직한 관점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으며, 입문자들에게는 성서 고고학의 첫걸음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양에 비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성서, 그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들   

  저자는 1부를 시작하기 전에 도표를 통해 항목별로 고고학 자료들과 성서 본문의 일치 여부를 간략하게 보여주는데,가나안 정복시점의 하솔 파괴불확실하고(이에 대한 논의는 뒤에 나온다) 여리고성 기록고고학 사료와 ‘일치하지 않음’ 이라 분명히 밝히면서도 다른 부분들은 일치한다거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하는 등 중립적인 관점을 잘 보여준다.

 

(저자의 관점을 보여주기 위해 미리 이야기하자면 본서 2부에서 “주전 1천년기에 관한 성서의 내용이 성서 외의 비문에 의해서 완전히 거짓이라고 밝혀진 경우는 현재까지 없다.”(130p)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신앙인을 위한 신학 서적도, 성경을 반박하기 위한 책도 아니다. 따라서 본서는 ‘고고학’, 특히 성서고고학(=근동고고학) 개론서로 접근 했을 때 가치가 있으며,

“기록과 사료, 그리고 이들 사이의 불일치나 이에 대한 흥미진진한 논쟁이 펼쳐져 승패가 갈린다.”같은 자극적 내용을 기대 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서는 고고학 개론서답게 이런 논쟁 자체보다는 고고학계의 발견과 논쟁이 지금까지 걸어온 역사를 보여주고 어떤 시기에 어느 학자가 무슨 방법으로 발굴했는지 보여줄 뿐이다.

 

  특정 관점을 가지고 있는 두꺼운 책들과 비교할 때, 이런 부분은 자칫 지루할 수 있으나 배경 지식이 있는 경우, 예를 들어 “왕정시대 유물 해석을 두고 히브리 대학교와 텔아비브 대학 간 논쟁이 있다.”같이 피상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는, 핀켈슈타인과 마자르의 논쟁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도 있다.

 

본서의 중립적인 입장은 유물의 해석을 두고도 찾아볼 수 있는데, 텔 단 비문

(‘다윗의 집’이란 표현이 내오는 가장 오래되었을 수 있으며 가장 명확한 유물, 메사비문에도 ‘다윗의 집’이란 표현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까지는 텔 단 비문이 가장 분명한 사료가 된다.)

  해석에서 ‘닐스 페테르 렘케’가 이 비문을 위조물이라 주장하다가 묵살당하는 이야기처럼 성급하고 극단적인 몇몇 최소주의자들의 무리수나 실수들을 지적하는 한편 여리고 발굴 작업에서 파괴 흔적을 발견했다는 가스탱이 이 발표를 후회하였다는 이야기나 노아 방주 발굴 소란처럼 극단적인 몇몇 최대주의자들의 잘못들 역시 분명하게 보여주어 독자들이 균형을 잡도록 한다.

 

이후에도 성서의 시대별로 발굴 성과나 논쟁점이 나오는데

 

유목민은 영구적인 기반시설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러한 출애굽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를 찾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반박이라도 하듯 고고학자들은 시내(Sinai)사막에서 여러 시기에 걸쳐 유목민들의 시설들을 발굴했다.... [중략]

 

이와 같은 사실이 출애굽이 실재로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고고학적 증거가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뿐이다. [113~114p]

 

이처럼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시각이 돋보이며,  비교적 모호하게 보이는 출애굽 시대와 달리

 

“따라서 주전 1천년기에 관한 성서의 내용이 성서 외의 비문에 의해서 완전히 거짓이라고 밝혀진 경우는 현재까지 없다. (130p) 

 

라고 하는 왕정시대와 사해문서, 신약시대의 이야기들은 분명하여, 족장시대와 출애굽 이야기 같은 애매함은 없고 편집도 깔끔한 편이다. 하지만 역시 분량상의 아쉬움이 큰데, 필요한 경우 사진자료를 적절히 제시하지만 분량 면에서 다른 여러 고고학 서적들, 또는 성서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다룬 전문서적들에 비해서는 양이 적어 아쉬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야고보 유골함이나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라지만 벌써 8년도 더 지나간 이야기다)를 다룬 책이자 다큐인

 

예수의 무덤- 역사를 뒤집을 고고학 최대의 발견

찰스 펠리그리노 | 심차 자코보비치 (지은이) | 강주헌 (옮긴이) | 예담 | 2007-07-29 | 원제 The Jesus Family Tomb (2007년)      

 

에 대해

  “자코보비치의 다큐멘터리는 단지 신앙심으로 그러한 주장에 이르렀다는 이유로 다른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148p) 처럼 분명하게 비판하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린다. 그러므로 본서를 통해 균형 잡히지 않은 책들과 근거 없는 사이비 학자들의 글이 넘치는 지금, 이들을 구분할 건전한 기본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예수의 무덤’에 대한 다큐멘터리 평에서 한 학자(윌리엄 데버로 기억한다.)는 고고학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식으로 평했고, 다른 학자는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이지만 남는 건 없는 고고학 포르노”라고 평했다.]

  요즘 성서 고고학이나 구약학에서는 성경을 신학적인 가르침을 주기위한 책이라면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것처럼 서술하는 한쪽 극단과(최소주의 고고학자들, 진보 신학자들) 성경의 모든 것을 문자적으로 증명하려는 이들(극단적 최대주의자나 몇몇 창조과학회 사람들 등) 사이에서 현대 성서학자들 역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전문성까지 갖춘 이 책의 가치는 크다.

 

 

균형 잡힌 해석과 발굴을 생각하며

  94p 역자 주에서도 말하지만 현재 성서의 역사성에 대한 대다수 유럽과 미국 성서학자들의 입장은 성서를 있는 그대로의 문자적 의미로 해석하는 극단적 최대주의도, 성서를 후대 기록일 뿐, 역사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폄훼하는 극단적 최소주의도 아니며, 이 사이의 어딘가, 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중도적 위치에 있다.

 

[비교적 온건한 최소주의자와 최대주의자의 책을 찾는다면 이안 프로반 외 공저: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온건한 최대주의>와 레스터 L. 그래비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온건한 최소주의> 정도가 있으며 두 책 모두 본서의 역자 주석 등에서 한번 이상 언급 된다.]

 

  물론 이 책은 작은 책인 만큼 제한된 유물만을 다루지만 그 고고학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러 유물들만 나열, 설명하고 끝나는 몇몇 서적들에 비해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게다가 원서에는 없었던 여러 각주들과 구체적인 참고서적들(각주들과 추천서적들을 역자서문과 역자가 따로 달아놓은 각주를 통해 충실하게 안내해준다.)은 추가적인 공부를 원하는 이들의 욕구까지도 잘 채워준다.

 

[특히 번역서가 나온 경우에는 원서 제목뿐 아니라 “~는 -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같이 번역서적 제목까지 모두 표기해주어 국내 독자들이 더 깊은 공부를 위해 어느 책을 읽을 지 안내하는 데까지 세밀하게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서평을 마무리하면서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장로교단의 신학교들에서 사용하는 트렘퍼 롱맨(저서: 창세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등) 등처럼 문서가설의 허점을 비판하고 성서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보수적 최대주의 계열에서 나온 여러 구약학 서적에서도  모세오경이 본질적으로는 모세의 저작임을 인정’하지만 후기에(범위를 말하자면 비교적 초기인 사사시대는 물론이고 포로 귀환 시대나 그 이후까지도 포함한다) 편집된 부분 역시 있다면서 이 정도 이야기는 다 인정하고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런 부분은 보수적인 성서신학계에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부분인데 최근에는 극단적 최소주의’를 인용하는 몇몇 <반기독교적> 고고학 비전공자들[예: '신없는 우주' 등을 쓴 빅터 스텐저=> 텔단 비문이 위조라는 의견이 있다는 점만 하고 그 주장이 학계에서 어떻게 반박당했는지는 말하지 않음]이나

극단적 최대주의를 지지하는 <지나친 보수기독교 측>고고학 비전공자들[예: 창조과학회 등에서 나오는 몇몇 글들과 서적 등]이 더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한쪽 입장을 지지 하지 않는 책에는 관심이 적다.

  게다가 일반 독자들은 발굴의 역사나 접근법 보다 화려한 사진과 유물자료들이 넘치는 서적에 더 관심이 많아 이처럼 가장 극단적인 두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볼 수 있는 책이 인기를 끌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전문 지식을 얻을 수는 없더라도 균형 잡힌 연구와 글들을 읽으며 바른 관점을 갖는 일은 바람직한 일임이 분명하다.

 

  여러 유물보다 유물의 해석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과 연구,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건전한 거리감이 저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람직한 고고학일 것이며, 한 걸음 더 멀리 서서 성서의 배경이라는 매력적인 장소에서 벌어진 일들, 지금은 볼 수 없는 과거를 탐구하는 학문이 걸어온 길과, 흔적을 찾아가는 일은 충분히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오래 전 잊혔으나 지금도 남아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과거의 흔적들과의 소통.

이러한 문제는 비단 성서 고고학만이 직면한 문제는 아니다. 호메로스(Homer)나 헤로도토스(Herodotus), 투키디데스(Thucydides), 그리스의 극작가들, 그리고 로마의 저자들, 그리고 로마 역사가들의 문서에 담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관한 묘사는 각각의 문서마다 그 정확도에 있어서 판이하게 다른 게 사실이다. (22p)

비록 오늘날 성서 고고학이 더욱 과학적으로 철저해지고 고고학자들이 인류학적인 주제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100여 년 전의 성서 고고학 태동기적 모습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기본적인 성서적 의문들은 여전히 무시될 수가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의문점들을 풀기가 언제나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23p 서문 마지막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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