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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하여
쇼펜하우어 / 하문사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철학자가 말하는 사랑이지만 철학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주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을 말하는데, 세상을 무가치한 듯 바라보는 염세주의와 달리 여기서는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사랑은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한다." 고 말하거나, "우리의 삶 중에서 가장 시적이며 아름다운 삽화는 바로 사랑이다."라며 세상에 속한 '사랑'을 긍정한다.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 철학 분위기가 나는 '심리학'이었다면, 이 책은 종종 '심리학 분위기가 나는 철학' 냄새를 풍긴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엄숙한 주제를 너무나 간단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사랑이 운명적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적극적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사랑을 한다. 사랑을 위해 내가 먼저 무엇인가를 헌신하지 않아도 언제인가는 그 사랑이 저절로 다가올 거라는 환상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비극적이고 불행한 삶을 만들뿐이다. 사랑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사랑은 언제나 능동적이다.
"사랑을 만드는 지혜 5번
(이 책에는 이렇게 다른 책들에서 말하는 이야기와 유사한 말이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사랑이 형이상학적이면 절대적인데, 특히 남.여간의 사랑은 이성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18년이란 나이차이가 있다면 지금 처럼 사랑하기 어려울 거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공감하지 못할 사람들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성을 사랑하는데 가장 중요한 걸로 '연령'을 꼽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1세기 경 로마 에서는 이런 나이 차가 먾이나는 연인도 꽤 있었다고 들었다.)
사랑이 성욕과 밀접하다는 주장은 심리학 서적에 많이 나오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강력한 사랑의 힘에 대해 사랑을 '자기 존재의 회복'으로 보고,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혹한 형벌이자 축복"으로 보는 일은 철학적이다.
그러나 21번에서 분명히 말하는 것처럼, 저자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꿈이나 환상과 달리 사랑의 최종 목적을 "후손을 낳는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저자는 책의 여러 부분에서 '인류 생존과 계승'을 사랑의 가장 큰 요소로 말하는데, 이 문제를 '연인에 대한 찬사'보다 앞에 두기 때문에, 철학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생물학' 느낌도 강하다.
물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랑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첫번째 작업은 사랑의 진정한 주인은 지금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지맘 나중에 태어날 다름 세대라는 걸 인식하는 일이다." 고 하지만, 사랑의 목적을 후손으로 삼는 저자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들도 현대에는 많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부족한 특질을 가진 가진 이성을 선택한다는 쇼펜하우어의 관찰이 심리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열렬한 사랑에 정열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남자와 여성의 차이는 여러 심리학 서적에 나와 있는 내용이니 건너 뛰더라도 남을 내 방식대로 움직이기보다 나 자신의 삶을 보다 건전하게 발전시키라는 조언은 생각할 가치가 있다.
제목은 희망에 대하여지만 이렇게 중매 결혼과 연애 결혼의 차이까지 제세히 다르는 이책은 차라리 '사랑에 대하여가 더 적당하지 않았을까?'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를 나 자신으로 보는 저자는 모든 선택과 책임도 '나에게 둔다.' 이런 독립성은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사상은 아무리 고귀한 것이라고 해도 그대의 사색에서 우러나오는 지식보다는 못하다. "는 본문에도 잘 드러난다.
저자는 학문에 대해서도 '배움'보다 ' '발견과 창조'를 더 강조한다.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려는 '독서'보다 '자신의 사색'을 강조하여 말하는데, '철학'에선 어느정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일반 학문에서는 내가 하려던 연구를 남들이 다 해놓은 경우가 있어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독서'의 반대쪽에 균형을 잡기 위한 추로 '사색'을 두는 건 건전하다.
(정리하다보니 앞부분 내용에 너무 집중해버렸다.ㅠㅠ)
제목은 '희망에 대하여'지만 사실 대부분 내용이 '사랑'에 대한 내용이고, '인생을 즐기기 위한 개인의 책임과 자유'처럼 인생론에 가까운 내용도 많이 있다. 설계하고 목표 했던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니 현제와 미래에 더 집중하라거나 미래의 재앙을 두려워 하지 말라, 또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하는 말은 그저 그렇게 흘려보낼 수 있지만 '염세주의'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라 더 관심을 끈다.
'희망을 강조하는 염세주의자.'
사회가 심어준 생존 욕구에 속지 말라거나, "인간은 결국 혼자서 살 수밖에 없으니 타인에게 의지하려거나 타인의 시선에 의지하지 말라."고 외치는 본문은 그의 사색 찬미와 어울려 독립성을 잘 보여준다.
종교에 대해서도 '반 종교성'을 보이진 않는다. 다반 철학을 종교보다 위에 놓고 종교를 '필요악'으로 볼 뿐이다.
사실 어떤 조언들은 심리학 서적들에서 이미 읽었고, 어떤 내용들은 진부 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얻을 것은 사랑에 대한 통찰들과 더불어, 사색을 통해 쇼팬하우어의 이 책에서 조차 독립할 수 있는 '자유'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