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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끝은 어디인가
리처드 모리스 / 동아출판사(두산) / 1992년 8월
평점 :
품절
물리학 공식이 아니라 현대 물리학이 성취한 부분과 각 이론들이 갖는 한계들을 자세히 다룬다. 과학과 비과학,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고 균형 잡힌 관점을 유지하기 때문에 과학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이론들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기보다 각 이론들의 특징과 한계들을 지적하는 한편, ‘과학의 영역’을 명확히 하여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즉, 과학의 한계를 비교적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책이었다.
예를들면 저자는 “‘자연 법칙은 단순하다’는 명제가 많은 과학적 발전을 이루어왔지만, 그 생각 자체는 증명이나 반증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가정이다.” 고 말하거나 “과학적 가설은 반드시 반증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포퍼의 이야기처럼 과학이 아닌 부분을 명확히 나누기 때문에, 비록 그가 책 후반부에 끈 이론 처럼 ’물리학‘과 ’형이상학‘이 섞여 있는 듯 보이는 주제까지 다루고 있더라도, 철학이나 신학 등 비과학 분야에 속한 사람들이 보기에도 적당하다.
(당연히 저자는 많은 창조 신화들이 현대 물리학에 어떤 예고를 준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원시 혼돈으로부터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개념이 오늘날에 와서 갑자기 재출현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라고 이야기 할 뿐이다.)
만일 우주가 어떤 특별한 시각에 창조되었다고 상상하면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주가 만일 초기에 무한대 밀도의 특이점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른 어떤 특별한 초기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 법칙은 왜 그것이 그러한 상태에 있었고 다른 어떤 상태는 아닌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물리학 법칙은 단지 우주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에 관해서만 말해 줄 뿐이다.
- ‘무로부터 나온 유’ 단원 중 -
이렇게 철학이나 신학 등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건전한 논의를 진행한다. 이 책을 쓸 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을 초 끈(슈퍼 스트링) 이론 역시 다루고 있을 정도로 넓게 바라보며, 뮤온이나 타우소립자, 암흑물질, 코스모스처럼 비전공자들이 교양 수준에서 알아야 할 용어 정리도 잘되어 있는 편이다. ‘우주 끈’(초 끈이 아니다)이나 인플레이션 우주, 우주는 평탄한가? 등에 대한 논쟁들을 통해 현대 물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주제들을 잘 정리하는 한편,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처럼 과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궁금해 할 만한 내용까지 친절하게 다루고 있다.
초끈이론이 말하는 10차원 개념은 흥미롭다. 하지만 섭동이론에 따른 근사치 추정처럼, 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공식 설명처럼 특정 공식 등을 설명하는데, 개념 설명과 달리, 이 책에서 어떤 공식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 책 한권으로 공식까지 해결 할 수 있으려면 인류의 대부분은 물리학자들이 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지금도 이 책을 추천할 수 있을까? 세부 항목을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90년대 초에 나온 책이기 때문에 추천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는 ‘중성미자가 실제로 질량을 갖는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하지만 90년대 말~2000년대 초 연구 결과에서는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지금은 여러 발전된 이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최신의 책을 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성미자의 질량을 발견하는 등 그 발전된 지식을 가진 과학자들이 과학이 아닌 영역(신의 존재 등)에 대해서 과학만으로 바라보고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데 반해, 이 책은 ‘과학이 아닌 분야’와 ‘거짓 과학’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는 몇 안 되는 책이라는 점에서 여러 발전된 지식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현대 서적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신 존재’, ‘형이상학’ 같은 분야는 빅터 스텐저 등 몇몇 과학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연성과 법칙성” 등을 갖고 풀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영역은 ‘입증’도 ‘반증’도 불가능한 영역에 있기 때문에 ‘과학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오래되었지만, 맞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이 책이 오히려 지금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고 건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