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의 유한함과 고통을 잘 그려내던 작가의 ‘자전적인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들에서는 이전에 보여준 냉소적인 문체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강이 사랑하던 것들을 말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한 작가의 삶만큼 자유로운 마음으로 삶 가운데 경험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애정이 넘치는 눈으로, 때로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묘사한다.

 

   빌리 홀리데이의 안타까운 죽음이나, 테네시 윌리엄스에 대한 그리움, 변해가던 오손 웨웰스, 혹은 그녀가 사랑했던 책들처럼 여기 나오는 대상들은 대부분 다정하게 묘사하지만. 그 와중에도 특유의 자유로움은 드러난다. 예를들면 그녀가 쓴 ‘슬픔이여 안녕’에 나오는 내용에 대해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비난받을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적어도 그때로부터 삼십 년이 지난 현 시대의 관점으로, 거의 냉혹할 정도의 급변을 고찰하면 그렇다...(중략)... 오늘날 사람들은 나이가 먹었는데도 섹스를 하지 않으면 유별난 일이나 웃음거리로 간주한다.”

(61~64p)

 

 

이렇게 말하거나,

 

  ‘시속 200킬로미터에 다르도록’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도(아무리 그녀가 2004년까지 살았어도 당시 기준으로 볼 때 200는 일반 자동차로 운전하는 최고속도라 할 수 있다.)

 

“스피드에 대한 애호는 스포츠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도박이나 운명과 통한다. 그것은 사는 것의 행복과 통한다. 그 결과 행복 속에 늘 감도는 죽음에 대한 어렴풋한 소망에 이끌린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모든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스피드는 어떤 것의 표시도 아니고 증거도 아니다. 도발이나 도전도 아니다. 그것은 행복의 도약이다.” (98p)

 

 

여기서 보듯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치던 특유의 자유로움은 군데군데 스며들어있다.

 

 

“장편 소설은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모든 자유를 갖고 있다. 장편 소설에는 우회와 방랑이 허락된다. 불론 이것은 단편소설이나 희곡에서는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장편소설이 거대하고 복잡한 정리라면, 단편소설과 희곡은 공리라고 말할 수 있다.” 123p - 연극 중-

 

 

라고 말하는 사강과, 도박에서 8로 딴 돈으로 8만 프랑에 집을 샀다가, 다른 도박으로 16만 프랑의 빚을 지고, 그 빚을 50파운드로 줄이는데 성공, 열흘간의 최종 성적 -300프랑(마이너스임에 주목)에 즐거워하는 사강은 왠지 거리가 있어 보이면서도 친근하다.

 

 

“이 세기는 광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부패한 것이 분명해요. 그러나 당신은 지성적이었고, 온화했고, 청렴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러니 당신은 삼가를 받아 마땅하지요”

(184p 사강이 샤르트르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일부)

 

 

“당신은 정말 친절한 여자예요. 그것은 좋은 징조지. 지성적인 사람들은 모두 친절한 법이거든.”

[189p 샤르트르가 사강에게 했던 말]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샤르트르는 1905년 6월 21일에 태어났고, 나는 1935년 6월 21일에 태어났다. 이 지구에서 그 없이 삼십년을 더 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192p

 

 

 

이만큼 애정 넘치는 관계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책을 마치는 그의 독서기록은 앙드레 지드의 『지성의 양식』, 그리고 “신이 없으면 인간이 신을 대신한다. 한쪽이 다른 쪽을 대체한다.”는 말을 통해, 종교 학교를 나왔던 사강이 ‘신은 나를 위해 이 이상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면서, 신 대신 인간 대상을 의지하도록 만든 카뮈의 『반항인』,

 이 마음을 강하게 만든 랭보의『일뤼미나시옹』등이 나오는데, 작가의 독서라는 사소한 점까지도 쓰고 있다.

 

독서에 대한 이야기는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마무리 되는데

 

프루스트의 이 큰 책에 대해 ‘사라진 알베르틴’편을 먼저 읽는 것이 ‘스완의 사랑’편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는 구체적인 조언도 생각하지 못한 소득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한 개인과 그가 사랑하던 존재들에 대해 알게 됨으로, 타인의 삶을 새롭게 볼 수 있고, 삶을 보는 관점과 시야도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는 데에 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 와서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던 기록들, 그것 역시 일종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걸어가는 길이 아닐까?

 

 사강의 시간을 통해 '삶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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