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이방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0
알베르 카뮈 지음, 방곤 옮김 / 범우사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들은 '인간 존재'에 대해 그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는 인간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생각할 주제들을 던져준다.

 

 

[신이 없는 인간 존재, 그러나 다른 강조점]

이 두 작품에서 까뮈가 그리고 있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페스트가 창궐하고,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회 (비록 '이방인'에서 조차 배경 사회는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저자가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는 모습은 그렇게 느껴진다.) 속에서 작가는 인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까뮈는 '허망한 인간의 존재' 그리고 그 속에서 허위 등을 벗어 던지고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된 인간 (적어도 저자는 그렇게 그리고 있고 역자도 그렇게 보고 있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이방인'과 '페스트'에 나타나는 인간상은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1.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모든 것에 대해서 관조하지만 스토아 학파 등 특정 철학의 관조와는 다르다. 일종의 냉소랄까? 그의 생각에 따르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어진다. 죽음은 인간에게 당연한 것이니까. 그리고 뫼르소의 생각처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전혀 다른 사건'인 '살인'까지 영향을 주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방인의 뫼르소는 위와 같은 부조리를 드러내는 데는 성공 했지만, '인긴이 보여줘야 할 진정한 모습의 전형'을 보여주는데는 실패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에게는 어머니를 비롯한 '타인의 죽음' 역시 별거 아닌 듯 보이며,  미행은 아랍인들이 했지만 먼저 습격한 것은 뫼르소의 일행들이었다. 그러므로 '칼을 가진 아랍인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정당방위'로 보기도 어렵고, 그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허위를 벗어 던지면 살인할 자유도 얻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일까? 혹은 그가 가진 삶에 대한 관조에는 타인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일까?.

 

(몰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뒤에 이어서 "그러나 신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여 '신이 없는 세상의 무질서'를 경고했다. 이걸 샤르트르가 뒤집어서 "신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게 가능하다"고 바꾸어 나타냈고 이 표현이 유명해져서 대표적인 무신론 명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

 

[덧 붙이면 위와 같은 이유로, 까뮈가 정말로 그리고자 했던 '신에서 벗어난 진정한 인간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페스트'까지 읽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두 작품을 엮어 놓은 이 책의 구성은 뛰어나다.]

 

2.

반대로 페스트가 그리는 종교나 기존 질서(억압)들은  여전히 허식이지면 여기에 나타난는 인간만은 숭고하다.  이 이야기의 인간에게 '신'이라는 것은 '있어서 나쁘지는 않으나, 필요하지도 않으며, 도움이 되지도 않는 것으로, '인간 존재'라는 책의 주제와 상관 없기 때문에, 이 책에는 신이 허상인지, 아니면 실존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그저 담담하게 '신을 믿는 자들'도 페스트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일반 사람들과 같다는 점을 보여주는 한편, "어린 아이의 고통에도 움직이지 않는 신의 덧없음."을 말한다.

 

리외와 파눌루의 대화를 비롯한 책의 곳곳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은 "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충분히 "숭고한 것 처럼" 보인다. 저자는 작품 곳곳에 종교인(정확히는 신부)들을 자주 보여주면서 그들의 무능함을 담담하게 말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기존의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하지 못했던 "신 없는 인간을 위한 방향 제시"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다른 무신론 작품들보다 더 큰 의미를 던진다.

 

('우주에는 신이없다''물리학의 세계에 신의 공간은 없다' 같은 과학계의 무신론 서적들이 "과학을 통한 신 존재 반박"이라는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은 이런 의미를 던져줌으로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p.s1] 왜 과학으로는 신 존재 반박이 안 되는지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잘 나와 있다. 물질 세계의 밖에 있는 '신'이라는 존재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으로는 증명도, 반박도 안 된다. 위에서 말한 '물리학의 세계에~'가 "신을 증명하기 위한 가설을 검증하고, 실패 했음을 들어 신은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칸트가 오래전에 했던 말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으로는 '형이상학' 또는 그 이상의 존재인 '신'을 증명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p.s2] 이 작품에서 까뮈가 그리는 '신에 대한 부정'은 "다른 것에 의지 하지 읺기에 독립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숭고한 인간" 을 가져온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 나타나는 스메르자꼬프(표도로비치 포함)의 모습을 보면   '신 없는 세상'은 까뮈의 작품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두 명작은 모두 읽어볼 필요가 있다. 

 

 

어쨋든 이 작품은 고립된 사람들의 생각을 잘 그리고 있는 한편, 독자들이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는 명작이며,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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