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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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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테사 모리스-스즈키의 <북한행 엑서더스>를 읽고 재일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해서 재일조선인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나름의 연구를 해 나간 것은, 그들의 디아스포라적 입장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1세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고 정착하게 되었고, 현재 그 후손들은 일본 내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내가 그 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서경식 선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내게 일종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재일조선인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서승, 서준식 선생의 동생으로, 결코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아온 그의 글은 의외로 담담했다. 무지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을 그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서경식 선생의 다른 책들을 하나씩 구입해 나갔고, 지금은 대부분의 책들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돌베개에서 번역 출간된 <언어의 감옥에서(원제 植民地主義の暴力-「言語の檻」から)> 역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서경식 선생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한국에서 출간한 첫 번째 평론집인 <난민과 국민 사이>에서 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국민주의를 비판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는 <난민과 국민 사이>의 의도를 계승하고 있지만, 추가되고 심화된 내용들이 있다. 1부에서는 2006년부터 2년간 한국에 머물 당시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저자의 강렬한 체험을 윤동주의 <서시>, 재일작가 이양지의 단편 <유희(由熙)>, 파울 첼란과 프리모 레비 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나로써는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두었던 부분이다. 재일조선인으로써 일본어를 모어로 하여 일본 사회에서 사는 재일조선인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마저 일본어로 형성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식민지의 민중이 지적 자원을 가지고 싶어도 종주국의 지적 제도를 통해 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知)의 식민주의적 지배구조로 연결된다. 또한 나 역시 느꼈던 이양지 작품들의 몇몇 부자연스러웠던 점들을 저자가 지적하고 비판하는 부분들이, 약간 혹독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 명쾌하고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발버둥치며 괴롭게 살아갔던, 이양지의 짧은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2부에서는 또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생환해 잔혹한 정치폭력의 시대를 증언한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야기는 저자의 다른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형들이 간첩으로 몰려 한국에서 옥중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저자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커다란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살아 돌아와 증언한다'라는 의지의 역할이 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7년, 프리모 레비는 자살했다. 그는 '증언의 불가능성'이라는 아포리아를 자살로써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기억의 투쟁' 역시, 아직 출구를 찾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재일조선인 1세였던 아버지의 삶을 통해 식민지 지배와 민족분단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3부에 수록된 글들은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頹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리버럴 세력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점을 잘 이해하는 것은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많은 사람들이 일본 우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일본의 리버럴 세력에 대한 인식은 부정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사회는 우경화의 길을 걸어왔다. 리버럴 세력이 힘을 모았다면 식민주의 극복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화해와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호기였으나,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시종 양비론에 서서 방관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그 결과 우파가 득세하게 되었다. 우파와 싸워야 할 국면이었음에도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오히려 '국민주의'로 퇴락해간 것이다. 국민주의는 사람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가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일본 지식인들의 온정주의적 레토릭과 자기중심적 욕망, 그리고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의 단절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국민으로써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적인 면에서 비롯된다. 또한 박유하의 책 <화해를 위해서>를 통해 저자는 식민지 문제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화해라는 미명하에 피해자들에게 타협이나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책임의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의 해결을 멀어지게 만들며 가해자가 진상규명, 책임 승인, 사죄, 보상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원한과 분노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그는 반문한다.  

4부는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통일에 대한 인터뷰와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과 북이 단순히 민족통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혈통주의를 타파하고 내부적으로 디아스포라를 많이 포용해야 하며, 이중국적이 허용된다면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들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에서의 참정권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상당히 희박한 국가관을 갖고 있는, 그래서 자신을 반쯤 디아스포라로 규정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순혈주의와 국민주의의 타파가 참 반가운 느낌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일본의 차별 문제로만 보는 경향을 지적하며, 재일조선인을 포함한 해외동포들이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해외동포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재외동포들이 대부분 귀국하지 않는 이유는, 돌아오더라도 국적 정비, 호적, 생활, 직업 등의 기반이 불확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선족(재중동포)들이 한국에 들어와도 대부분 저임금 비숙련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서경식 선생의 치밀한 논리의 구사와 글의 날카로움, 명료함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와 대담을 가졌던 일본의 지식인들은 진땀 꽤나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가혹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모든 조선 민족이- 처해있는 상황이 가혹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참으로 그러하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숙명은 언제나 일종의 멍에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식민지 지배라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 또한 이 책의 표지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글자들이 뒤섞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이 그가 느낀 모어와 모국어의 괴리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서경식 선생의 사유와 성찰을 통해,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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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1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경식 교수님의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이 책도 구입하고 서평이 없는지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쿄고구도님의 서재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저도 재일조선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서경식 교수님을 통해 프리모 레비도 알게 되고 특히나 서경식 교수님의 서릿발 같이 서 있는 날카로운 문체를 좋아하는 개인입니다. ^^

근데 이 서재에 들어와 보니 재일조선인에 대한 내용이 한가득이어서 너무나 좋네요. 전 재일조선인과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 그리고 미국의 인종차별에 괴로움을 겪은 흑인들에 대해 관심이 좀 많거든요. ^^ 앞으로 자주 들려 열심히 읽고 가겠습니다.

저도 일본을 참 좋아해요. 가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구요.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교고쿠 2011-05-14 10: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으음, 저는 제가 재일조선인과 비슷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어로 말할 때, 약간의 괴리감을 갖고 있어요...재일조선인들이 한국어로 말할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항상 약자,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라 정말 반갑습니다. ^^

루쉰P 2011-05-15 08: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일본어로 말씀하실 줄 안다니 대단하신데요. ^^

재일조선인의 감수성은 차별 받은 자들의 감수성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약자, 소수자, 그리고 사회의 시스템에서 이탈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거든요. 정말 정말 여기 서재에 있는 리뷰들만 봐도 굉장히 감사해요. ^^

관심 있는 분야를 한 번에 이렇게 읽을 수 있는 일은 쉽지가 않으니까요 헤헤

교고쿠 2011-05-15 19:01   좋아요 0 | URL
실은 제 본진(?)이 네이버 블로그라, 거기 더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이양지, 현월, 양석일 등의 책에 대한...)
http://blog.naver.com/satsukinovel 입니다.

루쉰P 2011-05-19 23:01   좋아요 0 | URL
아! 본진이 거기시군요. ^^ 예비군 훈련을 2박3일 동안 다녀오느라 이제 정신차리고 사회인으로 복귀했습니다. 본진으로 곧 놀러 가겠습니다. 좋은 정보 왕 감솨!!
 
자백
노나미 아사 지음, 이춘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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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의 취조실, 어두컴컴한 방에 스탠드가 켜져 있고 책상을 사이에 두고 형사와 피의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예전과 달리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가혹행위 같은 것은 거의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취조를 당하는 피의자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느낄 것이다. 개중에는 자신의 죄를 후회하며 순순히 자백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형사들 역시 항상 흉악범들과 대면해야 하니 대부분 냉혹하고 무서운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나미 아사의 소설 <자백>은, 의외로 굉장히 인간적이고 정이 넘치는 형사 도몬 고타로를 등장시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 책에 등장하는 4개의 단편들은 의외로 평범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추리소설들에 수반되는 클라이막스의 긴장감이나 기발한 트릭 역시 찾아볼 수 없다. 범인 역시 금방 잡혀 버린다. 하지만 쇼와 40년(1965년)부터 60년(1985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형사 도몬의 인간적인 모습은 우리를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세상으로 안내해 준다. 돈을 차지하기 위해서 젊은 남자에게 남편의 살해를 의뢰하는 중년 부인의 이야기인 <낡은 부채>는 훌리오가 도쿄에 올라왔을 때 느꼈던 외로움과 좌절감, 그리고 그가 하치오지에서 따뜻한 분위기와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다른 삶을 생각하는 모습이항상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해왔던 내게 상당히 와닿았다. 지금도 하치오지는 그러한 따뜻한 분위기를 갖고 있을까. 또한 남편을 죽인 도쿠코의 첫인상에서 뭔가에 찌들고 낡은 시부우치와(渋団扇 : 주로 부엌 등에서 쓰는, 막 쓰는 부채)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도몬의 사람 보는 눈이 꽤 정확하다.  

이주 노동자의 슬픔이 묻어나는 <돈부리 수사>에서는, 도몬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형사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장면으로, 일본이 아직 가난해서 먹을 것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았던 시절에 형사들이 취조하면서 돈부리를 시켜 주면 완고했던 피의자들의 마음이 풀어져서 자백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비록 죄를 지은 사람이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낯선 파키스탄 출신의 피의자를 배려해 매일 다섯번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카레를 만들어 주는 모습은, 상당히 감동적이다. 내가 피의자였더라도, 자백하지 않고는 못 배길만한 따뜻함이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에서는 형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신참 도몬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습절도범 부부를 추적하면서 잠복하고 있다가 배가 고파서 남의 집 배를 몰래 따먹고, 세제로 이를 닦고 머리를 감는 모습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아메리카 연못>에서는 피의자를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그의 가족들까지 배려해주며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마음까지 헤아리려 애쓰는 도몬의 배려가 참 든든하다. 결국 구치소에 있는 피의자에게 감사 편지를 받을 정도니 정말이지 대인배다. 이런 형사들만 있다면 범죄자들도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다시 안좋은 길로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건들의 배경이 7~80년대다 보니 아날로그적인 배경에서 따뜻함과 일종의 향수를 느낄 수 있고 도쿄 디즈니랜드 개장, 호텔 뉴재팬의 대형 화재, 적군파에 의한 JAL 항공기 납치 사건 등 그 당시의 일들이 잠깐씩 언급되는 부분 역시 흥미롭다. 그러한 부분들을 보면 이 사건의 배경이 현재가 아니라 한참 전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또한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지 않고, 그에게 묻고 들어주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아 그가 스스로 자백하도록 하는 도몬 형사의 취조 방식은 정말 인간적이다. 그는 동료 형사들에 대한 정 역시 깊으며, 가정에서도 딸들과 아내에게 더없이 따뜻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다. 추리소설을 기대했다면 좀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어떤 평범한 형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로는 꽤 훌륭하다. 읽으면서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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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움베르토 에코 <책의 우주> : 작년에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가 나왔을때 저는 꽤 기뻐했습니다.^^이번에는 에코와 장 클로드 카리에르의 '책'에 대한 대담입니다. '그래도 책은 죽지 않는다'라니! 멋지지 않습니까. ^^ 

 

 

 

 

한윤형 외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세대간의 대립, 요즘 들어서 생긴 것인지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누르고 억압하려 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뿐일까요.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로, 자신들의 착취 행위를 미화하며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원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장시간의 노동과 부당한 대우, 박봉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끔찍하지요. 이제 젊은 사람들의 열정까지 이용해먹는 신자유주의가 악마같이 느껴집니다. 

 

 

야스카와 주노스케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 후쿠자와 유키치, 바로 일본의 1만엔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이지요. 일본 내에서는 '일본 근대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한국이나 대만 등 다른 나라 입장에서 보면 원흉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는 알려진 것처럼 '자유주의자'도 아니었고, 전후세대의 사상가들이 그의 발언들 중 그러한 이미지에 반대되는 것은 외면한 채 입맛에 맞는 문구들만 주목해왔다고 이 책의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후쿠자와 유키치,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싶습니다.  

 

    

 

조정환 <인지자본주의> :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는 조정환 선생님의 책입니다.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인지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이 책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가히 21세기의 <자본론>이라고 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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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 개정2판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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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오래 전에, 귀여운 동물들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던 <The Blue Day Book>을 서점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때 그 책을 구입했었지만, 누군가에게 주거나 처분해버렸는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책이, 얼마 전에 양장본으로 새로 개정되어 나왔다. 혹시 내용이 바뀌었나 했지만, 내용에는 달라진 점이 없는 듯 하다. 양장본으로 나오면서 디자인이 더 세련되어진 느낌이다. 표지에는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한 포즈의 고릴라 사진이 있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한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꽤 사람과 닮은 표정이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물들의 사진과 저자의 메시지를 통해, 우울한 마음을 달래 주고 있다. 페이지 수도 많지 않고 텍스트 양이 꽤 적어서, 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동물들의 사진은 꽤 코믹한 느낌이 든다. 축 늘어져 있는 사자,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고양이, 친구들 앞에서 발라당 넘어진 펭귄, 머리를 싸매고 있는 곰, 선인장 위에 올라앉아 있는 원숭이, 꽤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포즈의 침팬지, 눈물을 닦는 듯한 모습의 백곰 등의 사진을 보며, 우울함과 비참한 마음에 빠져서 괴로워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건 정말 나랑 닮았다 싶은 사진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저 골목만 돌면 멋진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세상에는 향기롭고 행복한 냄새들, 맛좋은 스낵, 신나는 게임, 그리고 로맨스도 있다고 말한다. 역시 곁들여진 동물들의 사진이 참 재미있다. 사이 좋게 뭔가를 먹는 쥐들, 당근 더미 위에 올라앉은 채 흐뭇해하는 듯한 토끼,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코끼리, 마치 노래하는 듯한 모습의 얼룩말들, 뛰어오르며 격렬히 춤을 추는(?) 토끼들, 서로 포옹하고 있는 백곰들 등 코믹하면서도 귀여운 모습들을 통해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산책도 좋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웃는 여유도 잃지 말라고, 그리고 큰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거닐고 있는 펭귄, 유쾌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돼지, 고양이 머리 위에 올라앉아 있는 쥐, 빙산에서 바다로 힘차게 뛰어내리는 펭귄, 그리고 흐뭇한 표정의 개구리까지, 어떻게 이런 절묘한 장면들을 포착해냈나 싶을 정도의 멋진 사진들이 많다.  

사실 나도 꽤 자주 우울함에 빠진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를 넘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 몇날 몇일을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삶에 즐거운 일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 어떤 것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라는 말이, 지금 읽어보니 어느 정도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자신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le petit bonheur)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내가 존경하는 분이 내게 말해주신 적이 있다. 참으로 그러하다. 삶에 있어서 항상 즐거운 일만 넘치지는 않겠지만, 사진 속의 동물들처럼 때로는 향기로운 홍차 한 잔이, 화창한 날의 산책이, 내게 매일을 살아갈 힘을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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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섬을 품다 - 섬은 우리들 사랑의 약속
박상건 지음 / 이지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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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의 섬은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난, 일종의 휴식의 공간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기껏해야 내가 가 봤던 섬은 제주도 같은 큰 곳밖에 없지만, 진정한 섬의 묘미는 인구가 많지 않은 고즈넉한 섬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곳을 찾아가려면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어쩌면 많이 걸어야 해서 힘들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이끌어 주지 않으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 나로써는, 여행 관련 책들을 읽으며 일종의 간접적 경험을 하는 것으로 어쩔 수 없이 만족하고 있다. 그러한 책들을 읽으며 나는 작은 상자와도 같은 방 안에서, 암청색의 바다와 한적한 섬을 생각하곤 한다. 살아 있는 한 언제고 가보고 싶은 바닷가가 참 많다. 얼마 전 읽게 된, 박상건의 <바다, 섬을 품다>는 국내의 항구와 섬들을 직접 탐방하고 소개한, 아름다운 풍광들이 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책이다.  

저자의 섬 탐방은 동해 최북단 대진항에서 해안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동해와 남해가 접해 있는 부산 영도등대, 가덕도 등대를 거쳐 서해의 강화도, 석모도, 용유도를 거쳐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섬 팔미도,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공해상을 돌아 충청권으로 내려와 영목항, 원산도, 웅도, 무창포 해변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남해로 발길을 돌려서, 철새 떼 비행이 인상적인 압해도를 시작으로 흑산도, 홍도, 완도, 소안도, 사량도, 욕지도를 거쳐 제주도로 건너가서 제주의 유일한 유인등대인 산지등대, 섬 속의 섬 우도,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까지 그의 여행은 이어진다.  

지형의 특성상 동해에는 섬보다도 포구가 많다. 사실 그 동안 동해 쪽에 가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태백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꽤 멀기 때문인지, 크게 마음먹고 가야만 할 것 같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동해의 최북단 작은 포구 마을 대진항, 드라마의 촬영지였던 아름다운 해변 화진포, 동해 바다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속초항, 유치환의 시 <깃발>을 떠올리게 하는, 아우성 치는 파도가 인상적인 묵호항, 꽤 고요하고 적막한, 그래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곳 죽변항, 한반도 지도의 꼬리 부분으로 알려져 있는 호미곶, 신비의 섬 울릉도,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 그 외에도 저마다 많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갖춘 바닷가 마을들이 많다.  

서해는 아무래도 동해보다 고즈넉하고 한적한 느낌은 덜하다. 하지만 서울과 가장 가까운 섬 강화도, 영종대교를 건너면 나오는 용유도, 바닷길이 하루에 두 번씩 열리는 제부도, 빨간 등대가 인상적인 팔미도, 긴 뱃길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최북단의 백령도, 서해안 최초로 해수욕장을 개장한 무창포, 그 외에도 작은 섬들이 많아서 서해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내가 가끔씩 용기를 내어 멀리 갈 때 종종 찾는 월미도와 오이도는 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나름 간단히 바다 구경을 할 수 있고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편리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몇 년 전인가 한여름에 오이도에 가서 한참동안 사진을 찍던 중 강한 햇빛으로 인해 팔에 화상을 입어서 따가웠던 추억이 떠오른다.   

또한 남해에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압해도, 홍어가 유명한 흑산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도,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완도, 일몰이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있는 삼천포, 한려수도 끝자락의 욕지도 등, 풍광이 아름다운 섬들이 가장 많다. 남쪽에는 봄이 빨리 오기 때문에 사계절 모두 여행하기에 좋다고 한다. 제주도는 굳이 말할 것도 없이 그 자체로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섬 안의 섬 우도와 한반도 최남단의 마라도처럼 아름다운 작은 섬들 역시 속해 있다. 사진들 중 마라도의 풍광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이국의 외딴 섬과도 같은 느낌이다. 푸른 초원이 있는 작은 섬과 드넓은 바다, 그리고 푸르른 하늘과 작고 아늑한 성당 건물이 아름답다. 이 곳에서 단 며칠이라도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할까. 

이 책을 읽으며, 섬과 등대,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와 멋진 풍광의 사진들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일종의 관념 속 바다와 달리, 이 책에 등장하는 섬과 바다는 고독하고 적막하다기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고 일종의 활기와 생동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역시 나름대로 마음에 든다. 또한 실제로 갈 때 도움이 되도록 교통수단의 정보와 편의시설 유무, 간단한 지도 등이 제시되어 있어서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제시된 트래킹, 걷기 코스는 10km가 넘는 먼 거리가 대부분이라 평소에 많이 걷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겐 역시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녕 강인한 체력을 갖추지 못하면 훌쩍 떠나기 어려운 것일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의 시 <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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