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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섬을 품다 - 섬은 우리들 사랑의 약속
박상건 지음 / 이지북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바다 한가운데의 섬은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난, 일종의 휴식의 공간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기껏해야 내가 가 봤던 섬은 제주도 같은 큰 곳밖에 없지만, 진정한 섬의 묘미는 인구가 많지 않은 고즈넉한 섬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곳을 찾아가려면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어쩌면 많이 걸어야 해서 힘들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이끌어 주지 않으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 나로써는, 여행 관련 책들을 읽으며 일종의 간접적 경험을 하는 것으로 어쩔 수 없이 만족하고 있다. 그러한 책들을 읽으며 나는 작은 상자와도 같은 방 안에서, 암청색의 바다와 한적한 섬을 생각하곤 한다. 살아 있는 한 언제고 가보고 싶은 바닷가가 참 많다. 얼마 전 읽게 된, 박상건의 <바다, 섬을 품다>는 국내의 항구와 섬들을 직접 탐방하고 소개한, 아름다운 풍광들이 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책이다.
저자의 섬 탐방은 동해 최북단 대진항에서 해안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동해와 남해가 접해 있는 부산 영도등대, 가덕도 등대를 거쳐 서해의 강화도, 석모도, 용유도를 거쳐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섬 팔미도,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공해상을 돌아 충청권으로 내려와 영목항, 원산도, 웅도, 무창포 해변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남해로 발길을 돌려서, 철새 떼 비행이 인상적인 압해도를 시작으로 흑산도, 홍도, 완도, 소안도, 사량도, 욕지도를 거쳐 제주도로 건너가서 제주의 유일한 유인등대인 산지등대, 섬 속의 섬 우도,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까지 그의 여행은 이어진다.
지형의 특성상 동해에는 섬보다도 포구가 많다. 사실 그 동안 동해 쪽에 가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태백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꽤 멀기 때문인지, 크게 마음먹고 가야만 할 것 같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동해의 최북단 작은 포구 마을 대진항, 드라마의 촬영지였던 아름다운 해변 화진포, 동해 바다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속초항, 유치환의 시 <깃발>을 떠올리게 하는, 아우성 치는 파도가 인상적인 묵호항, 꽤 고요하고 적막한, 그래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곳 죽변항, 한반도 지도의 꼬리 부분으로 알려져 있는 호미곶, 신비의 섬 울릉도,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 그 외에도 저마다 많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갖춘 바닷가 마을들이 많다.
서해는 아무래도 동해보다 고즈넉하고 한적한 느낌은 덜하다. 하지만 서울과 가장 가까운 섬 강화도, 영종대교를 건너면 나오는 용유도, 바닷길이 하루에 두 번씩 열리는 제부도, 빨간 등대가 인상적인 팔미도, 긴 뱃길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최북단의 백령도, 서해안 최초로 해수욕장을 개장한 무창포, 그 외에도 작은 섬들이 많아서 서해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내가 가끔씩 용기를 내어 멀리 갈 때 종종 찾는 월미도와 오이도는 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나름 간단히 바다 구경을 할 수 있고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 편리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몇 년 전인가 한여름에 오이도에 가서 한참동안 사진을 찍던 중 강한 햇빛으로 인해 팔에 화상을 입어서 따가웠던 추억이 떠오른다.
또한 남해에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압해도, 홍어가 유명한 흑산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도,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완도, 일몰이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있는 삼천포, 한려수도 끝자락의 욕지도 등, 풍광이 아름다운 섬들이 가장 많다. 남쪽에는 봄이 빨리 오기 때문에 사계절 모두 여행하기에 좋다고 한다. 제주도는 굳이 말할 것도 없이 그 자체로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섬 안의 섬 우도와 한반도 최남단의 마라도처럼 아름다운 작은 섬들 역시 속해 있다. 사진들 중 마라도의 풍광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이국의 외딴 섬과도 같은 느낌이다. 푸른 초원이 있는 작은 섬과 드넓은 바다, 그리고 푸르른 하늘과 작고 아늑한 성당 건물이 아름답다. 이 곳에서 단 며칠이라도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할까.
이 책을 읽으며, 섬과 등대,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와 멋진 풍광의 사진들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일종의 관념 속 바다와 달리, 이 책에 등장하는 섬과 바다는 고독하고 적막하다기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고 일종의 활기와 생동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역시 나름대로 마음에 든다. 또한 실제로 갈 때 도움이 되도록 교통수단의 정보와 편의시설 유무, 간단한 지도 등이 제시되어 있어서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제시된 트래킹, 걷기 코스는 10km가 넘는 먼 거리가 대부분이라 평소에 많이 걷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겐 역시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녕 강인한 체력을 갖추지 못하면 훌쩍 떠나기 어려운 것일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의 시 <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