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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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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수리철학자, 탁월한 사회비평가, 그리고 반전반핵운동가였던 버트런드 러셀은 많은 글을 남겼다. <수학의 원리>, <게으름에 대한 찬양>,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행복의 정복>,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서양철학사> 등 그의 글들은 정말로 많은 분야에 걸쳐 있다. 평화와 시민권과 인권을 부르짖은 그는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거의 100세에 가깝게 장수했다. 하지만 이렇듯 유명한 그의 책들을 나는 여기저기서 약간씩 접했을 뿐, 아직 한 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그러던 중 그의 글들을 발췌하여 묶은,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원제 Bertrand Russell's Best)>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의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챕터의 시작과 끝에는 친절한 해설이 곁들여져 있고, 이는 번역본에만 있는 듯 하다. 그의 저서나 연설 등에서 핵심적이고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을 발췌한 그다지 길지 않은 길이의 글들이 모여 각 챕터를 구성하고 있다. 러셀은 정치적으로도 꽤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 국가간 분쟁을 야기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평화적인 수단을 찾아갈 것을 촉구하는 평화주의적 입장을 보였고 인류를 몰살시킬 수도 있는 핵무기의 사용에도 강력히 반대했다. 평화주의자에 가까운 나로써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여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하고, 정치와 정치이론을 비판하는 그의 글은 꽤 신랄하고 풍자적이다. 또한 그는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역시 상당히 날카롭고 비판적인 글들을 남겼다. 그는 거침없이 의견을 표명하고 여러 차례 보수주의자들과 계몽주의자들에게 공격당했음에도 '신성시되는'사안에 거리낌 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이처럼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시류에 영합하고 권력에 굴종하는 학자들은 결코 지식인답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전혀 동조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다는 점이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의 새로운 희망>에서, 유럽인 통치자들이 아프리카인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해온 일들이 인구 증가 때문에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고, 아프리카인들이 행적적인 훈련을 받고 책임감 있는 습관을 기르기 전에 갑자기 자유를 획득하게 되면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이식한 문명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제3세계의 인구증가 속도가 빨랐던 것은 사실이나, 과연 서구 열강 국가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도우려고' 그들의 땅을 식민지로 삼고 경제적 수탈을 일삼은 것인가? 그들은 자유를 누릴 능력이 없으니, 계속 식민지 지배를 당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러한 수탈로 인해 유럽 국가들은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제3세계 국가들은 아직도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일종의 차별적 태도에는 그다지 동조하고 싶지 않다.   

또한 그는 불가지론(agnosticism)의 입장에서, 종교적인 신화를 해부하는 일에도 주저 없이 뛰어들어 불합리한 사례들을 찾아낸다. 얼마 전까지 나는 그가 무신론자인줄 알았는데, 그의 신에 대한 입장은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으로 이는 무신론과는 다르다. 그는 종교가 인도주의와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은 수많은 사례들을 예로 들고 있다. 19세기에 마취제가 발명되었을 때, 성직자들은 출산하는 여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취제를 쓰는 것을 반대했다. 창세기에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인체 해부에 반대함으로써 의학 발전을 방해했고, 육체를 매력적으로 가꾸는 것은 죄로 이어지기 쉽다는 관점에서 목욕하는 것조차도 비난했다. 이처럼 과거 도그마로서의 기독교가 어떠한 이성적, 합리적 근거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박해했다고 러셀은 말한다. 나 역시 가톨릭 신자이지만, 중세 시대에 행해진 이단자 화형과 마녀사냥, 과학자들에 대한 탄압 같은 것은 결코 좋게 생각할 수 없다. 하느님은 옳지만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참 흥미로운 것은 러셀의 저서 중 <결혼과 도덕>으로 인해 그는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부도덕하고 선정적이며 음란하다는 이유였는데, 그가 노벨상을 받자 많은 미국인들은 격분했다고 한다. 하지만 발췌된 그의 글들을 읽어 봐도 특별히 음란하거나 외설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가 심하게 비난을 당한 이유는 아마 그의 성과 결혼에 대한 생각이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청교도주의적 도덕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흔히 행해지고 있는 이혼, 산아제한 등을 그 당시에는 금지했고, 여성 노동자들에게 피임방법을 알려주는 소책자조차 음란서적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외설스러운 내용을 기대하고 러셀의 책을 펼친다면 아마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 기대했던 바에는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러셀의 사상과 글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글을 토막내어 일종의 명언집과 같은 형태로 바꾸어버린 편집이 그렇다. 이것만을 읽고 러셀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어떤 주장들을 했으며 이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확실하게 캐치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든다. 러셀의 저서에서 인용된 각각의 글들이 전부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각 챕터의 시작과 끝에 덧붙여진 해설이 없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 머릿속에 거의 남는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코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 일종의 파편화된 느낌이 들어서, 이 책보다는 차라리 그의 저서들 중 관심있는 것을 하나 골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쪽이 훨씬 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참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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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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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테사 모리스-스즈키의 <북한행 엑서더스>를 읽고 재일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해서 재일조선인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나름의 연구를 해 나간 것은, 그들의 디아스포라적 입장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 1세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가고 정착하게 되었고, 현재 그 후손들은 일본 내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내가 그 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서경식 선생의 <디아스포라 기행>은 내게 일종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재일조선인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서승, 서준식 선생의 동생으로, 결코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아온 그의 글은 의외로 담담했다. 무지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라는 것을 그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서경식 선생의 다른 책들을 하나씩 구입해 나갔고, 지금은 대부분의 책들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돌베개에서 번역 출간된 <언어의 감옥에서(원제 植民地主義の暴力-「言語の檻」から)> 역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서경식 선생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한국에서 출간한 첫 번째 평론집인 <난민과 국민 사이>에서 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국민주의를 비판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는 <난민과 국민 사이>의 의도를 계승하고 있지만, 추가되고 심화된 내용들이 있다. 1부에서는 2006년부터 2년간 한국에 머물 당시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저자의 강렬한 체험을 윤동주의 <서시>, 재일작가 이양지의 단편 <유희(由熙)>, 파울 첼란과 프리모 레비 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나로써는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두었던 부분이다. 재일조선인으로써 일본어를 모어로 하여 일본 사회에서 사는 재일조선인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마저 일본어로 형성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식민지의 민중이 지적 자원을 가지고 싶어도 종주국의 지적 제도를 통해 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지(知)의 식민주의적 지배구조로 연결된다. 또한 나 역시 느꼈던 이양지 작품들의 몇몇 부자연스러웠던 점들을 저자가 지적하고 비판하는 부분들이, 약간 혹독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 명쾌하고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발버둥치며 괴롭게 살아갔던, 이양지의 짧은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2부에서는 또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생환해 잔혹한 정치폭력의 시대를 증언한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야기는 저자의 다른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형들이 간첩으로 몰려 한국에서 옥중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저자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커다란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살아 돌아와 증언한다'라는 의지의 역할이 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7년, 프리모 레비는 자살했다. 그는 '증언의 불가능성'이라는 아포리아를 자살로써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기억의 투쟁' 역시, 아직 출구를 찾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재일조선인 1세였던 아버지의 삶을 통해 식민지 지배와 민족분단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3부에 수록된 글들은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頹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리버럴 세력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점을 잘 이해하는 것은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많은 사람들이 일본 우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일본의 리버럴 세력에 대한 인식은 부정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사회는 우경화의 길을 걸어왔다. 리버럴 세력이 힘을 모았다면 식민주의 극복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화해와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호기였으나,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시종 양비론에 서서 방관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그 결과 우파가 득세하게 되었다. 우파와 싸워야 할 국면이었음에도 리버럴 세력의 다수는 오히려 '국민주의'로 퇴락해간 것이다. 국민주의는 사람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가르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에는 무관심하다. 또한 일본 지식인들의 온정주의적 레토릭과 자기중심적 욕망, 그리고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의 단절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국민으로써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적인 면에서 비롯된다. 또한 박유하의 책 <화해를 위해서>를 통해 저자는 식민지 문제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화해라는 미명하에 피해자들에게 타협이나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책임의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의 해결을 멀어지게 만들며 가해자가 진상규명, 책임 승인, 사죄, 보상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원한과 분노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그는 반문한다.  

4부는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통일에 대한 인터뷰와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과 북이 단순히 민족통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혈통주의를 타파하고 내부적으로 디아스포라를 많이 포용해야 하며, 이중국적이 허용된다면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들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에서의 참정권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상당히 희박한 국가관을 갖고 있는, 그래서 자신을 반쯤 디아스포라로 규정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순혈주의와 국민주의의 타파가 참 반가운 느낌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일본의 차별 문제로만 보는 경향을 지적하며, 재일조선인을 포함한 해외동포들이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해외동포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재외동포들이 대부분 귀국하지 않는 이유는, 돌아오더라도 국적 정비, 호적, 생활, 직업 등의 기반이 불확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선족(재중동포)들이 한국에 들어와도 대부분 저임금 비숙련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서경식 선생의 치밀한 논리의 구사와 글의 날카로움, 명료함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와 대담을 가졌던 일본의 지식인들은 진땀 꽤나 흘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가혹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모든 조선 민족이- 처해있는 상황이 가혹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참으로 그러하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숙명은 언제나 일종의 멍에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식민지 지배라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 또한 이 책의 표지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글자들이 뒤섞인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이 그가 느낀 모어와 모국어의 괴리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서경식 선생의 사유와 성찰을 통해,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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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13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경식 교수님의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이 책도 구입하고 서평이 없는지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쿄고구도님의 서재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저도 재일조선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서경식 교수님을 통해 프리모 레비도 알게 되고 특히나 서경식 교수님의 서릿발 같이 서 있는 날카로운 문체를 좋아하는 개인입니다. ^^

근데 이 서재에 들어와 보니 재일조선인에 대한 내용이 한가득이어서 너무나 좋네요. 전 재일조선인과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 그리고 미국의 인종차별에 괴로움을 겪은 흑인들에 대해 관심이 좀 많거든요. ^^ 앞으로 자주 들려 열심히 읽고 가겠습니다.

저도 일본을 참 좋아해요. 가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구요.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셜록 2011-05-14 10: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으음, 저는 제가 재일조선인과 비슷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어로 말할 때, 약간의 괴리감을 갖고 있어요...재일조선인들이 한국어로 말할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항상 약자,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라 정말 반갑습니다. ^^

루쉰P 2011-05-15 08: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일본어로 말씀하실 줄 안다니 대단하신데요. ^^

재일조선인의 감수성은 차별 받은 자들의 감수성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약자, 소수자, 그리고 사회의 시스템에서 이탈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거든요. 정말 정말 여기 서재에 있는 리뷰들만 봐도 굉장히 감사해요. ^^

관심 있는 분야를 한 번에 이렇게 읽을 수 있는 일은 쉽지가 않으니까요 헤헤

셜록 2011-05-15 19:01   좋아요 0 | URL
실은 제 본진(?)이 네이버 블로그라, 거기 더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이양지, 현월, 양석일 등의 책에 대한...)
http://blog.naver.com/satsukinovel 입니다.

루쉰P 2011-05-19 23:01   좋아요 0 | URL
아! 본진이 거기시군요. ^^ 예비군 훈련을 2박3일 동안 다녀오느라 이제 정신차리고 사회인으로 복귀했습니다. 본진으로 곧 놀러 가겠습니다. 좋은 정보 왕 감솨!!
 
자백
노나미 아사 지음, 이춘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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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의 취조실, 어두컴컴한 방에 스탠드가 켜져 있고 책상을 사이에 두고 형사와 피의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예전과 달리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가혹행위 같은 것은 거의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취조를 당하는 피의자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느낄 것이다. 개중에는 자신의 죄를 후회하며 순순히 자백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형사들 역시 항상 흉악범들과 대면해야 하니 대부분 냉혹하고 무서운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나미 아사의 소설 <자백>은, 의외로 굉장히 인간적이고 정이 넘치는 형사 도몬 고타로를 등장시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 책에 등장하는 4개의 단편들은 의외로 평범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추리소설들에 수반되는 클라이막스의 긴장감이나 기발한 트릭 역시 찾아볼 수 없다. 범인 역시 금방 잡혀 버린다. 하지만 쇼와 40년(1965년)부터 60년(1985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형사 도몬의 인간적인 모습은 우리를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세상으로 안내해 준다. 돈을 차지하기 위해서 젊은 남자에게 남편의 살해를 의뢰하는 중년 부인의 이야기인 <낡은 부채>는 훌리오가 도쿄에 올라왔을 때 느꼈던 외로움과 좌절감, 그리고 그가 하치오지에서 따뜻한 분위기와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다른 삶을 생각하는 모습이항상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해왔던 내게 상당히 와닿았다. 지금도 하치오지는 그러한 따뜻한 분위기를 갖고 있을까. 또한 남편을 죽인 도쿠코의 첫인상에서 뭔가에 찌들고 낡은 시부우치와(渋団扇 : 주로 부엌 등에서 쓰는, 막 쓰는 부채)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도몬의 사람 보는 눈이 꽤 정확하다.  

이주 노동자의 슬픔이 묻어나는 <돈부리 수사>에서는, 도몬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형사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장면으로, 일본이 아직 가난해서 먹을 것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았던 시절에 형사들이 취조하면서 돈부리를 시켜 주면 완고했던 피의자들의 마음이 풀어져서 자백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비록 죄를 지은 사람이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낯선 파키스탄 출신의 피의자를 배려해 매일 다섯번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카레를 만들어 주는 모습은, 상당히 감동적이다. 내가 피의자였더라도, 자백하지 않고는 못 배길만한 따뜻함이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에서는 형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신참 도몬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습절도범 부부를 추적하면서 잠복하고 있다가 배가 고파서 남의 집 배를 몰래 따먹고, 세제로 이를 닦고 머리를 감는 모습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아메리카 연못>에서는 피의자를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그의 가족들까지 배려해주며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마음까지 헤아리려 애쓰는 도몬의 배려가 참 든든하다. 결국 구치소에 있는 피의자에게 감사 편지를 받을 정도니 정말이지 대인배다. 이런 형사들만 있다면 범죄자들도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다시 안좋은 길로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건들의 배경이 7~80년대다 보니 아날로그적인 배경에서 따뜻함과 일종의 향수를 느낄 수 있고 도쿄 디즈니랜드 개장, 호텔 뉴재팬의 대형 화재, 적군파에 의한 JAL 항공기 납치 사건 등 그 당시의 일들이 잠깐씩 언급되는 부분 역시 흥미롭다. 그러한 부분들을 보면 이 사건의 배경이 현재가 아니라 한참 전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또한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지 않고, 그에게 묻고 들어주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아 그가 스스로 자백하도록 하는 도몬 형사의 취조 방식은 정말 인간적이다. 그는 동료 형사들에 대한 정 역시 깊으며, 가정에서도 딸들과 아내에게 더없이 따뜻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다. 추리소설을 기대했다면 좀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어떤 평범한 형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로는 꽤 훌륭하다. 읽으면서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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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움베르토 에코 <책의 우주> : 작년에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가 나왔을때 저는 꽤 기뻐했습니다.^^이번에는 에코와 장 클로드 카리에르의 '책'에 대한 대담입니다. '그래도 책은 죽지 않는다'라니! 멋지지 않습니까. ^^ 

 

 

 

 

한윤형 외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세대간의 대립, 요즘 들어서 생긴 것인지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누르고 억압하려 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뿐일까요.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로, 자신들의 착취 행위를 미화하며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원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장시간의 노동과 부당한 대우, 박봉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끔찍하지요. 이제 젊은 사람들의 열정까지 이용해먹는 신자유주의가 악마같이 느껴집니다. 

 

 

야스카와 주노스케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 후쿠자와 유키치, 바로 일본의 1만엔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이지요. 일본 내에서는 '일본 근대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한국이나 대만 등 다른 나라 입장에서 보면 원흉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는 알려진 것처럼 '자유주의자'도 아니었고, 전후세대의 사상가들이 그의 발언들 중 그러한 이미지에 반대되는 것은 외면한 채 입맛에 맞는 문구들만 주목해왔다고 이 책의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후쿠자와 유키치,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싶습니다.  

 

    

 

조정환 <인지자본주의> :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는 조정환 선생님의 책입니다.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인지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이 책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가히 21세기의 <자본론>이라고 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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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 개정2판 ㅣ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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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오래 전에, 귀여운 동물들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던 <The Blue Day Book>을 서점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때 그 책을 구입했었지만, 누군가에게 주거나 처분해버렸는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책이, 얼마 전에 양장본으로 새로 개정되어 나왔다. 혹시 내용이 바뀌었나 했지만, 내용에는 달라진 점이 없는 듯 하다. 양장본으로 나오면서 디자인이 더 세련되어진 느낌이다. 표지에는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한 포즈의 고릴라 사진이 있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한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꽤 사람과 닮은 표정이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물들의 사진과 저자의 메시지를 통해, 우울한 마음을 달래 주고 있다. 페이지 수도 많지 않고 텍스트 양이 꽤 적어서, 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동물들의 사진은 꽤 코믹한 느낌이 든다. 축 늘어져 있는 사자,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고양이, 친구들 앞에서 발라당 넘어진 펭귄, 머리를 싸매고 있는 곰, 선인장 위에 올라앉아 있는 원숭이, 꽤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포즈의 침팬지, 눈물을 닦는 듯한 모습의 백곰 등의 사진을 보며, 우울함과 비참한 마음에 빠져서 괴로워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건 정말 나랑 닮았다 싶은 사진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저 골목만 돌면 멋진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세상에는 향기롭고 행복한 냄새들, 맛좋은 스낵, 신나는 게임, 그리고 로맨스도 있다고 말한다. 역시 곁들여진 동물들의 사진이 참 재미있다. 사이 좋게 뭔가를 먹는 쥐들, 당근 더미 위에 올라앉은 채 흐뭇해하는 듯한 토끼,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코끼리, 마치 노래하는 듯한 모습의 얼룩말들, 뛰어오르며 격렬히 춤을 추는(?) 토끼들, 서로 포옹하고 있는 백곰들 등 코믹하면서도 귀여운 모습들을 통해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산책도 좋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웃는 여유도 잃지 말라고, 그리고 큰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거닐고 있는 펭귄, 유쾌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돼지, 고양이 머리 위에 올라앉아 있는 쥐, 빙산에서 바다로 힘차게 뛰어내리는 펭귄, 그리고 흐뭇한 표정의 개구리까지, 어떻게 이런 절묘한 장면들을 포착해냈나 싶을 정도의 멋진 사진들이 많다.  

사실 나도 꽤 자주 우울함에 빠진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를 넘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 몇날 몇일을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삶에 즐거운 일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 어떤 것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라는 말이, 지금 읽어보니 어느 정도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자신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le petit bonheur)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내가 존경하는 분이 내게 말해주신 적이 있다. 참으로 그러하다. 삶에 있어서 항상 즐거운 일만 넘치지는 않겠지만, 사진 속의 동물들처럼 때로는 향기로운 홍차 한 잔이, 화창한 날의 산책이, 내게 매일을 살아갈 힘을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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