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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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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 그는 2004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화장>에서의 담담한 서술로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의 신작 <흑산>을 사실은 읽고 싶지 않았다. 김훈 작가를 특별히 싫어해서가 아니다. <흑산>은 조선에서 천주교를 박해했던 역사를 소재로 삼고 있는데, 천주교 신자인 나는 박해 당시의 일들을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것을 굳이 그의 치밀한 묘사로 접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것은 내 손에 들어왔고, 읽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책의 처음에서 끝까지 한 번도 눈을 떼지 못하고 읽었다.

 

이 책은 18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황사영 백서'사건이 터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훨씬 전에 예수회 사제 바오로 미키와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지만, 조선에서는 아직 사제가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했던 때다. 천주교 박해의 역사에서 비교적 초창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야기는 정약전이 귀양길을 떠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형제인 정약종, 정약용 등과 함께 잡혀가서 고문을 당했으나, 동생 약종은 끝내 배교를 거부하여 처형당하고 배교한 약전은 목숨을 건지고 흑산도로 유배된다. 그의 형 정약현의 사위가 황사영인데, 그는 열여섯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조로부터 친히 격려를 받은 수재였다. 그의 처숙부인 약전, 약종, 약용은 총명하고 마음이 맑은 그에게 은밀히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 주었고, 황사영 부부는 주문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교리대로, 그는 노비 육손이에게도 인간답게 대해 주고 결국 면천(免賤)해서 종의 신세를 벗어나게 한다.

 

반면 삼대 선왕인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는 어린 임금 순조가 보위에 오르자 대왕대비로 섭정을 하게 된다. 오십여 년을 대궐에서 혼자 산 대비에게는 소생이 없었기 때문에 권세에 대한 욕망으로 천주교를 꼬투리 삼아 남인을 박해한다. 또한 천주교가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와 유교식 제사 등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것을 지배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정순왕후가 불러들인 피바람은 수없이 많은 백성들을 참살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녀가 천주교도를 더 많이, 빨리 잡아들이라는 교서를 내릴 때마다 각 관아에서는 혹독한 고문과 처형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신자 공동체 내에 밀정(密偵)을 투입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박차돌이라는 인물도 그런 밀정 중 하나로, 원래 포도청 비장이었으나 젓갈장수로 위장해서 천주교 신자인척 하며 신자 공동체와 교류하고 결국 신자들이 숨어있는 곳을 관아에 밀고하여 많은 신자들을 잡혀가게 한다.

 

또한 황사영에게 물건을 전해주러 온 마부 마노리 역시, 함께 밥을 먹고 집에서 재워주는 등 자신을 처음으로 천한 노비가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대해주는 황사영에게 감복하고 그의 집에 머물며 천주교 교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사신을 수행해서 북경에 가면 천주당 안으로 들어가서 서양 어른을 만나라고 황사영은 그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노리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훗날 그는 마부로써 사신 행렬을 따라 북경에 가고, 천주당에서 서양인 주교를 만나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성모님의 그림과 중국 은화를 받게 된다. 결국 조선에 와서 그 은화가 빌미가 되어,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실신하며 황사영이 박해를 피해 배론에 숨어 있는 것을 발설하게 된다. 결국 황사영은 잡히게 되고, 숨어 있던 토굴 안에서 하얀 비단에 쓴 밀서는 압수되어 포도대장의 손을 거쳐 대비의 손에 들어간다. 대비는 그것을 읽고 곡기를 끊고 몸져 누워 "패륜이 극악하여 이미 교화할 수 없다. 나는 무섭다. 때를 가리지 말고 처단해서 국법을 보이라."는 명을 내린다. 그리하여 황사영과 마노리는 처형당하고, 이것이 바로 유명한 '황사영 백서'사건이다. 당시 신자들이 숨어 살던 배론은 지금은 성지가 되어, 많은 신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한편 정약전은 언제 유배에서 풀려날지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며, 술을 마시거나 섬에서 유일하게 글을 아는 소년 창대를 불러 말상대를 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창대는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작은 섬의 답담함을 이겨낸다. 약전 역시 느끼고 있는 답답함이었다. 육지에서도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있었고, 급기야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곳을 버리고 유리걸식하다 굶어죽는 지경에까지 와 있었는데 흑산도도 상황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이 섬에까지 관리들의 수탈은 손을 뻗쳐서, 소나무 등의 징발령이 내리면 섬사람들은 그 신역에 동원되었고 고등어나 청어 등은 그 머릿수까지 하나하나 헤아려 세금을 매겼다. 창대의 아버지가 그러한 수탈을 견디다 못해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몰래 흑산을 빠져나간 후, 창대는 섬에 남아 정약전과 함께 바다의 물고기와 여러 생물들을 연구한다. 정약전은 흑산도의 글자 흑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것을 끊임없이 깨우치는 너무 캄캄하고 무서운 글자이므로, 이 섬을 앞으로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을 가진 玆자를 써서 자산이라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섬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섬에서 물고기들을 조사, 연구하고 쓴 책이 바로 한국 최초의 어류학 서적인 '자산어보(玆山魚譜)'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들이 하나씩 맞아떨어지는 것도 은근히 흥미롭다.

 

또한 마포나루에서 국밥장사를 하며 일종의 거점 역할을 하던 강사녀, 상궁이었다가 기침병으로 궐 밖으로 나온 나이든 동정녀인 길갈녀, 소작농의 처 오동희, 노비의 딸로 태어나 상전들에게 성적인 학대를 당하고 도망친 아리 등, 여교우들의 활약 역시 훌륭하다. 하지만 평온한 생활도 잠시뿐, 그들이 모여 살며 신앙생활을 하던 수유리 집을 밀정 박차돌의 밀고로 관헌들이 급습하고 그들은 모두 배교를 거부하고 황사영 등과 함께 처형당한다. 이 책은,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황사영의 죽음을 몇 년 후에야 알게 되고, 섬에서 만나 살림을 차린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포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서당을 지어 동네 아이들 몇 명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희망적인 느낌의 결말이다. 물론 역사상으로는 이 책의 배경이 되었던 신유박해 이후에도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등 계속해서 피바람이 불고 이는 19세기까지도 이어진다.

 

배교해서 살아남는 것과 순교하는 것, 이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커 보인다. 그 갈림길에서 고뇌하지 않을 자 누가 있으랴. 작가 김훈은 인터뷰에서 "매에 못 이겨 배교한 자들이 단순히 지옥에 갔다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들도 지금 하느님의 품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소설 속에서 순교를 예찬하지도, 배교를 비판하거나 변명하지도 않았다. 다만 소설에 대해 설명하며 그 잔인한 매를 끝까지 견디라고만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일종의 야만적인 행위라고 덧붙인다. 또한 "삶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배교이거나 순교이거나 모든 인간의 삶은 경건하고 소중한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한다(가톨릭신문 2011년 12월 11일자, 20페이지에서 발췌). 어쩌면 이것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가장 주된 내용이 아닐까.

 

자세한 묘사가 없이 건조하게 사실만을 기술한 역사서 등과 달리 소설 <흑산>은 꽤 디테일한, 그래서 너무나도 잔혹하게 느껴지는 묘사들과 꽤 자주 마주치게 된다. 약전 형제가 배교를 종용당하며 곤장을 맞는 장면부터, 나는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형틀에 묶이고 곤장을 맞으면, 몇 대 만에 금방 살점이 튀고 똥물까지 쏟아낸다고 한다. 엉치뼈가 부서지고 장독이 올라 죽는 일도 흔했다. 이런 장면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사극 등에서 흔히 볼수 있는 주리를 트는 형벌 역시, 몇 번 주리를 틀리면 정강이뼈가 밖으로 튀어나오고 다리가 거의 몸과 떨어져 나올 지경이 된다는 것을 <흑산>에서 읽으며, 처형 전에 사형수의 양쪽 귀에 화살을 꽂는데, 이 화살이 뇌 속까지 박혔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계속 식은땀을 흘리며, 급기야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잔혹한 장면이나 묘사에 약한 편은 아니다. 오히려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 등에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 있는 편이다.

 

내가 이것을 읽으며 심하게 괴로웠던 것은, 이 책의 등장인물들에게 내 자신을 강하게 이입시킨 결과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원한다면 매일이라도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할 수 있는, 다행히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지만 만약 신앙 선조들처럼 박해 등으로 인해 배교할 위기에 처한다면 나는 결연히 순교의 월계관을 택하겠노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마치 하느님께서 "네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너도 이들처럼 할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시는 것 같았고, 저렇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더라도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네!"라고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너무나도 약하다. 용덕이 부족한 것이다. 또한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깊은 믿음의 삶을 살아온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순교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많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산>을 읽는 것은 내게 있어서 순교의 간접체험이자 마음을 찢는 통회의 시간이었다.

 

하느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느님은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시편 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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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아, 이번에도 왠지 끌리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순문학과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역시 또 그쪽에 치우친 추천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더욱이 이번에는 제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싫은 소설(원제 厭な小説)>도 나왔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교고쿠 나츠히코 <싫은 소설> : 제 닉네임에서도 알수 있듯이, 저는 교고쿠 나츠히코를 아주 아주 좋아합니다. 이 책은 아마 작년쯤에 일본에서 출간된 것 같은데, 교고쿠도의 시리즈물 번역은 늦는데 이런 단권의 번역은 참 빠르네요. 표지는 왠지 고서와도 같은 느낌이 들고, 책 제목이 '싫은 소설'이라니 꽤 특이한 제목입니다. 목차를 보니 싫은 아이, 싫은 노인, 싫은 문, 싫은 조상, 싫은 여자친구, 싫은 집, 싫은 소설...이라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네요. 역시나 특이한 점은,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마지막에 발광하거나 실종되거나 죽거나 하는 배드엔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추젠지 아키히코'시리즈처럼 요괴 혹은 그 관련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싫은 어떤 것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 지난달에 나온 어떤 책보다도 꼭 읽고 싶은 책이에요.  

 한강 <희랍어 시간> : 제가 한강의 소설을 접한 건, 몇 년 전에(아마 05년쯤에)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대상 수상작 <몽고반점>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꽤나 파격적인 내용으로(형부와 처제의 정사 - 그런데 단순한 불륜 이야기는 아니고, 예술과 관련된 내용이에요) 그때는 제가 내공이 부족해서, 왠지 거부감까지 들었는데 몇 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니 아...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역시 한 작품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지요.  

희랍어, 그리스 고전에서나 접할 수 있을 것 같은 꽤 이질적인 언어입니다. 수학 시간에 주로 볼 수 있는 알파, 베타, 세타 등등이 바로 희랍어의 알파벳이잖아요. 그런데 희랍어 시간이라면 과연 이 이질적인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희랍어 시간을 매개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확실히 제목에서부터 '일본어 시간', '프랑스어 시간', '독일어 시간', '라틴어 시간' 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드네요. ^^책의 표지 역시 비내리는 날의 뿌옇게 변한 유리창을 연상시키는, 불투명하고 물기있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우타노 쇼고 <세상의 끝, 혹은 시작> : 서술트릭이 훌륭했던, 그리고 절대 영화화 시킬수 없는 소설 중의 하나인(이유는 읽어보시면 알게 됩니다. ^^)<벚꽂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통해 우타노 쇼고를 알게 된 후,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들은 '집의 살인'시리즈와 '밀실살인게임'시리즈인데, 안그래도 최근에 일본에서 마지막편인 <밀실살인게임 매니악>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성질 급한 저로써는 번역본 기다릴 틈이 없으니 그냥 원서로 질러버릴까 고민중입니다.  

이번에 번역출간된 <세상의 끝, 혹은 시작(世界の終わり, あるいは始まり)>은, 우타노 쇼고의 작품 중 비교적 초기작에 해당합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붕괴와 재생을 테마로 하고 있다는데, 우타노 쇼고답게 반전이 상당히 충격적일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종광 외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 전태일을 키워드로 한 작품집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 우연찮게 <전태일 평전>을 읽은 것이 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에 대한 지독한 착취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아이들이 피복업체에 시다로 들어가서 하루에 열몇시간을 일하고도 받는 돈은 정말 적었습니다. 작업환경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어서, 허리를 펴기도 힘든 작업장에서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했으며, 배가 고파도 마음놓고 뭘 사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그들의 벌이는 보잘것없었습니다. 먼지가 항상 작업장에 가득했기 때문에 폐질환을 얻는 경우도 많았구요...청년 전태일은, 어린 시다들이 배고파 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자신의 교통비로 풀빵을 사서 나눠 주고 자신은 집까지 그 먼 거리를 걸어서 가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따뜻하고 정이 많은 그는,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버림으로써 지옥과도 같은 노동환경을 개선하였습니다. 저 역시, 가장 작은 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서원을 하게 되었구요...전태일이 일했던 환경을, 그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영세 피복업체에 위장취업하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건강의 악화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간 꼭 해볼 생각입니다.   

전태일을 테마로 하여 쓰여진 짧은 글들을 엮은 책이라니, 과연 지금의 작가들이 전태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글로 풀어냈을지 매우 궁금하고 읽고 싶어집니다. 지금쯤 그는, 어머니와 하늘나라에서 몇십년만에 만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제니퍼 이건 <킵> : 표지에서부터 저를 강하게 끌어들인, 제니퍼 이건의 소설입니다. 고딕문학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고딕소설의 틀을 빌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위시리스트에 넣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장르를 정의하기도 어려울 정도로(고딕, 블랙코미디, 호러, 미스테리, 메타픽션 등) 여러가지 장르가 혼재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더욱 놀랍고 또 질투(?)가 나는 것은, 이것이 그녀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퓰리처상까지 타고, 이렇게 주목과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읽기에 결코 녹록할 것 같지는 않지만, 묘하게도 이런 쪽이 저는 더 끌려요. ^^

  

 

 아, 물만두님의 추리 서평 책을 추천하려고 했는데 그건 12월출간이라 다음달로 미뤄야겠어요. 미야베 미유키의 <고구레 사진관>은 이미 갖고 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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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2-0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들어옵니다 ㅋㅋ 잘 지내고 계시죠? 여전히 책들 많이 읽고 계시는군요 ㅋ 저도 보고 싶은 책들이 꽤 많에요. 이런 겨울에는 이불 속에 파묻혀 책 읽기 너무 좋죠. 대신 늘어나는 뱃살은 책임질 수 없다는거 ㅋㅋ

교고쿠도 2011-12-05 11:24   좋아요 0 | URL
오오, 정말 오랫만입니다. ^^저는 어제 각종 헌책사이트에서 실컷 지르고, 내일 올 폭풍택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걱정이라면, 이제 더 이상 책 꽂을 자리도 없어서 책이 와도 방바닥에 쌓아둬야 한다는 것...ㅋㅋ

비로그인 2011-12-0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은 소설]이라는 책에 눈길이 가네요.
교고쿠도님 별명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었는데 의문이 풀렸어요 ㅎㅎ
그런데 왠지 선정되기는 어려울 것 같은 ㅠ ㅠ

교고쿠도 2011-12-08 17:29   좋아요 0 | URL
으아, 이 책 선정되면 대박일텐데 말이죠. ㅜ.ㅜ
교고쿠도 소설은 그 특유의 어두움이 참 좋아요.
 
동주 - 구효서 장편소설
구효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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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쯤이었을까, 나는 학교의 거대한 도서관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딱히 읽으려고 마음먹은 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는 갑작스런 현기증을 느끼고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에 머리를 기댄 채 잠시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 근처에 꽂혀 있던 <윤동주 평전>에 시선이 닿았다. 어쩌면 그 때 순간적으로 윤동주의 영혼과 공명하면서 현기증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생각을 하며, 나는 무엇에 홀린 듯 그 책을 빌렸다. 그것이 나와 윤동주의 깊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의 평전을 읽으며 그의 순수하고 깨끗했던 삶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시집을 읽으며 그의 시어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나는 종종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을 암송하게 되었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러져 간 그의 짧은 삶을 안타까워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효서의 새로운 장편 <동주>는, 제목만으로도 읽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었다. 그는 얼마 전 <랩소디 인 베를린>에서도 디아스포라에 대해 다루었었는데, 이번 소설 역시 디아스포라적인 내용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나'는 재일교포 3세로,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어릴 때 들어 알고 있지만 그것은 그의 삶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친구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인하여 그를 찾기 위한 단서로써, 윤동주의 유고를 찾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또한 화자의 이야기와 교차되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윤동주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교토의 15살 소녀 요코의 이야기다.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가 하숙하던 집에서 심부름꾼으로 있었던 요코는 윤동주와 종종 말을 주고받고, 그가 연행되는 것을 봤으며 나중에 그에 대해 기록하게 된다. 시대는 다르지만 이 둘이 각각 남긴 글에서 윤동주는 그저 후경(後景)으로 등장할 뿐, 전면에도 화자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의 가장 첫 부분은, 요코가 남긴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친부모가 누군지도 알지 못한 채 나가사키의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데, 양부의 상습적인 성적 학대로 인해 집을 나온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교토의 대규모 아파트(지금의 아파트같은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하숙집의 개념에 더 가깝다)에서 사동(使童)으로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집의 수많은 학생들 중 왠지 눈에 띄는, 조용하고 말이 없던 동주와 만나게 된다. 그때 동주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는 밤늦도록 혼자 묵묵히 책을 읽었고, 뭔가를 열심히 썼다. 읽을 줄은 몰랐지만 그의 글자 모양에서는 한숨과 격정, 망설임과 회한이 느껴졌다고 요코의 수기에는 기록되어 있다. 고향에 두고 온 여동생이 생각나서, 동주는 요코와 곧잘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이 남았던 부분은, 일본어와 조선어, 그리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둘이 주고받다가 동주가 괴로워하는 장면이다. '요코, 집 안으로……. 그가 간신히 신음을 흘렸다. 들어가. 날……혼자……내버려둬. 필사적으로 내뱉었다. 제발……. (중략) 그는 후박나무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두웠지만 그의 창백한 낯빛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느새 바람이 다 빠져나간 그의 몸은 길고 가늘고 초췌했다. 세상에 그렇게 안쓰러운 사람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p.90~91 중 발췌)' 조선어와 일본어, 영어, 만주어 등이 그의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고, 조선인이면서도 마음놓고 조선어로 시를 쓸 수 없었던 그의 극심한 괴로움을 너무도 제대로 표현한 부분이다.  

또한 주인공 '나'는, 여름방학 동안 절친한 친구 시게하루가 함께 하자고 제안한 기묘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것은 'U'라는 정체불명의 인물로부터 지시를 받아, '만주'라는 검색어를 검색하고 그것을 요약하여 그에게 메일로 보내주는 것인데 그 작업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당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매일같이 도서관에 나가 도서 목록 등을 검색하고 만주에 대한 책을 읽는다. 그러던 어느 날, 시게하루가 돌연 사라지고 '나'는 시게하루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도서관의 미등록 도서 <昨日の満洲を話す(어제의 만주를 말하다)>, 방향이 바뀐 전봇대 표지판, 약도, 미즈하라 노파의 집, 그리고 윤동주의 유고 뭉치. 사라진 윤동주의 유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료 인멸 세력의 존재들 때문이라는, 그 유고를 찾아야 시게하루의 행방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그는 그 단서들을 추적해 나간다. 그러다가 그는 홋카이도 북단까지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갈대 바구니에 담긴 이타츠 푸리 카(아이누어로 '언어의 비단'이라는 뜻), 곧 요코의 기록과 조우한다.  

한편 윤동주에 대한 요코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좀처럼 싸움 같은 것을 하지 않는 온화한 동주가, 어느 날 같은 아파트의 야마다라는 일본인 학생과 싸우는 것을 그녀는 본다. 야마다의 아끼는 구두를, 동주가 종종 만나는 다리 밑 늙은 걸인인 일명 교진(橋人)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싸움은 아이누인과 조선인, 만주인 등에 대한 일본의 동화정책과 언어 강압책에 대한 동주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사실 교진에게 야마다의 구두를 갖다 준 것은 요코의 짓이었고, 요코는 교진과 종종 만나 먹을 것을 갖다주거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교진은 자신에게 탄생과 성장, 유랑의 삶을 되짚어보게 한 은인이었다고 요코는 회상한다. 유달리 하얀 피부의 요코가 아이누인이라는 것을, 그녀도 동주처럼 '말과 말의 영토를 앗긴 자'라는 것을, 그렇기에 동주가 요코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준 것을 교진은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요코에게 접근하여 좋아하는 빙수를 사 주면서 아파트의 조선 학생들의 동태를 물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요코는 그가 특고 형사인줄도 모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빙수를 얻어 먹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파트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동주와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를 연행해 간다. 그것이 그를 본 요코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녀는 동주가 잡혀간 것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 지극한 후회로써 동주를 기억하며 자신의 고향에 도달하기 위해 아이누어를 공부했다. 동주의 유고는 원본이 아닌 일본어 번역본이고, 특고의 강압에 못 이겨 스스로 번역한 그의 시는 동주의 시가 아니고 그의 시여서도 안 되었다고, 요코는 말한다. '말을 앗긴 것도 모자라 자신의 시를 자신의 손으로 훼손했어야만 하는 치욕과 능멸을 어찌 외마디 비명으로 다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시인 윤동주는 이미 시모가모 경찰서에서 죽은 거였다. 그리하여 시인 윤동주의 존재란 그의 시가 조선어였을 때까지만 온전하다는 주장을, 나는 감히 내세우려는 것이다. 검사국과 재판소와 형무소로 이동해 죽어간 건 그의 빈 육신이었다.(p.318 중 발췌)'  

윤동주의 사인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조선인 재소자들에게 자행했던 모종의 생체실험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인' 윤동주의 죽음은, 그가 시모가모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선어로 쓴 그의 시들을 일본어로 번역하도록 강요당했을 때라고 작가는 요코의 기록을 통해 말한다. 나는 크나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알량한 일본어 실력으로, 윤동주의 <서시>를 일본어로 번역했던 것이 얼마 전 일이다. 조선 시인으로써 조선어로 시를 쓰려 했던, 모든 국가 모든 민족 모든 언어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만화(萬花)의 숲을 이루기를 염원했던 그를, 나는 또다시 죽인 것이 아닐까. 내게 있어서 한국어는, 일본어는, 그 외의 언어들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요코의 기록을 읽은 '나'는, 자신이 일본과 한국 사이에 끼어 있었음을, 모어(일본어)와 모국어(한국어) 사이에 놓여 있었음을 느끼고 한국 이름을 짓고 한국어를 배워 글을 쓴다. 동주의 간도, 요코의 홋카이도, 그리고 '나'의 한국은 일종의 '사이의 섬', 곧 감정적인 충격과 분노와 실망이 완충되는 장소인 것이다. 이 책 끝부분에 실린, 전 세계에서 2500개의 언어가 소멸 위기에 놓여 있고 그 중 일본에서 아이누어를 할 줄 아는 화자가 15명으로 추산된다는 기사는, 다시 한번 나를 안타깝게 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의 고뇌와 괴로움을,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국외자(局外者)와 디아스포라들의 슬픔을, 이 책을 읽으며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더욱이 그 윤동주의 <서시>를, 이부키 고(伊吹郷)가 일본어로 옮기면서 시의 원뜻을 어쩌면 고의로 훼손시킨 것에 대해 일종의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의 <서시> 전문 

이 중,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는 당시 윤동주가 처해 있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이 모든 것을 죽음으로 내모는 자들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인데, 이부키의 번역에서는 '行きとして行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로 뉘앙스도 뜻도 전혀 달라지게 된다. 게다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라는 표현은 '팔백만의 신'에 대한 믿음을 설파하는 일본 고유의 신도적 세계관으로 통하는 것으로, 윤동주의 기독교적 정신세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의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래서야, 윤동주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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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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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불문하고, 장편보다는 단편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짧은 단편 안에 모든 것을 배열하고 끝맺는다는 것이 내게는 꽤나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내가 끈기가 없는 편이라, 장편이나 몇 권으로 이루어진 긴 이야기(예를 들면 <태백산맥>이나 <토지>같은)는 중간에 어디론가 주의력이 흩어져 버린다는 이유도 단편 선호에 한 몫을 한다. 또한 정조(情調, mood)에 대해서는, 역시 밝은 쪽보다는 어두운 쪽을, 문체 면에서는 수식이 많은 만연체보다는 지극히 건조한 문체를 선호하는 편이다. 어두운 내용의 책만 자꾸 읽으면 울증이 심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묘하게도 나는 반대로 밝은 분위기의 책을 읽으면 '그래, 나는 이렇게 당신들(등장 인물들)과 달리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하는, 모종의 반발심이 들고 내 자신이 더욱 싫어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암울하고 그로테스크한, 어두운 분위기의 책을 읽으면 '이것이 실제가 아니라 다행이다. 나의 실제 삶이 이렇게까지 지독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하는, 일종의 안도의 느낌을 받는다. 얼마 전 출간된 김경욱의 단편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도 그러한 어두운 정조를 드러내는, 하드보일드하고 건조한 문체가 특징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을 전공했고 순문학을 꽤나 사랑하는 입장이지만, 사실 김경욱의 작품은 처음이다. 그를 특별히 싫어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몇몇 작가들의 책을 깊게 파는 스타일이라(순문학 작가들 중 배수아, 박민규, 천운영, 김숨, 김연수, 편혜영, 전경린, 김이설의 거의 모든 책들을 나는 갖고 있다) 그 테두리 안에서만 머물렀던 것이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을 거쳐서 김경욱의 단편집은 내게로 왔고, 처음에는 생경함과 정체 모를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단편들을 하나씩 읽어 나가며 그의 스타일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기에 전작들과 비교해서 어떻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의 등단작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소설집의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하드보일드적 색채가 강렬한 작품이다. 같은 반 남학생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말을 잃은 초등학생 손녀와 곧 헐릴 재개발 지역에서 단둘이 살아가는 주인공은, 이미 전기와 가스가 끊기고 지병으로 인해 직업까지 잃을 상황이지만 가해자 부모들이 제시하는 보상금을 거부하고 치밀한 복수를 준비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건 복수는 그를 둘러싼 철벽과도 같은 부조리 앞에서 어떤 의미있는 타격도 가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만다. '어둠은 늘 있었다. 찾아왔다 물러갔다 다시 찾아오는 것은 빛이었다. 사내는 이제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무처럼, 한그루 나무처럼. 말을 잃은 계집애를 등에 업은 채.(p.33 중 발췌)' 주인공 사내가 처한 상황의 암담함과 그에게서 발산되는 일종의 박력이 서로 맞부딪치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또한 취업 사수생이자 과외교사인 주인공과 유학에 실패하고 돌아온 압구정동 여고생이 등장하는 단편 <러닝 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가 작품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다. 그들이 한강변으로 놀러 갔을 때, 수차례 마주치는 '뱀 문신을 한 사내'와 개를 쇠줄에 묶어 끌고 가는 오토바이 등이 강남 부녀자 납치강도사건 이야기와 교차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뱀 문신의 사내나 오토바이 남자, 강물 속 사내를 향해 돌을 던지는 조무래기 아이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강 건너에는 찍어낸 듯 엇비슷한 아파트가 성벽처럼 죽 늘어서 있었다. 그것은 난공의 요새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강은 성벽으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해자일 테지. 저 깊고 넓은 해자 건너, 저 단단하고 높은 성벽 너머에 은재의 집이 있다.(p.52 중 발췌)' 부유층의 거주지가 높디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난공의 요새'임이 강조되는 가운데 그 성벽 바깥에서 성벽 내부의 삶을 선망하는 주인공 역시 한편으로는 절대 성벽 안으로 진입할 수 없는, 외부인이자 잠재적 범죄자나 마찬가지임이 은연중에 드러나고 이는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주인공이 마지막 부분에서 뱀 문신 사내에게서 도망치려 오리배를 타고 강 건너 남쪽으로 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결코 그것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러닝 맨>의 연장선상에서, 1퍼센트를 향한 일종의 속물적 욕망에 대해 다루고 있는 <99%> 역시 꽤 의미심장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최대리는 어느날 갑자기 스카우트되어 회사에 나타난 해외파 '스티브 킴'에게 심한 열등감과 위기감을 느낀다. 그럴수록 그는 스티븐 킴이 사실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전학간 학교에서 2등으로 끌어내렸던, 아버지도 누군지 모르고 어머니가 술 장사를 했던 김태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사로잡힌다. 마지막 부분에서, 과연 김태만에게 있었던 닻 모양의 문신이 스티븐 킴에게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이 소설 속에 언급되지 않는다. 일종의 열린 결말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스티븐 킴과 김태만의 동일인물 여부보다도, 그에 대한 최대리의 의심이 어쩌면 그를 향한 질투와 선망이 낳은 일종의 허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1퍼쎈트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99퍼쎈트를 공략하는 거죠. 1퍼쎈트를 질시하면서도 거기 끼고 싶어 안달인 99퍼쎈트 말입니다. 우리는 그 이율배반적인 욕망의 뇌관을 건드려주는 겁니다.(p.95 중 발췌)' 일종의 미스테리적 장치들을 통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되돌아보게 하는 수법이야말로 그의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장기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단편들 역시, 출구가 없는 빈곤한 삶에 짓눌린 삼대의 삶을 담담하게 묘사하거나(<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 결코 생각처럼 낭만적이거나 멋지지 않은 유럽 투어 가이드의 길고 고단한, 그리고 초조하기까지 한 하루에 대한 이야기거나(<혁명기념일>),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소통이 부재했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아버지의 부엌>) 등, 이 책에는 잔혹하거나 혐오스러운 장면이라고는 결코 등장하지 않음에도 왠지 모르게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등장인물들이 정말 지독하게 암울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뿐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두 번째 읽으니 어느 정도 그 이면이 보이는 느낌이다. 어두운 분위기나 건조한 문체 등을 평소에 자주 접했거나 선호하는 편이라면 이 작품집에 높은 점수를 주겠고, 주로 밝은 분위기의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라면 결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것 같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듯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많이는 아니고, 약간은 마음에 들었던 단편집이다. 여담이지만 책의 표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작품들 전반에 흐르고 있는 음울함과 건조함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의 초기작은 어땠을지, 매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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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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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나는 유카와 교수가 등장하는 일명 '갈릴레오' 시리즈를 제일 좋아한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적이 있는데, 그때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유카와 역할에 너무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 <성녀의 구제>, <갈릴레오의 고뇌>, 그리고 아직 번역출간 되지 않은 <真夏の方程式(한여름의 방정식)>까지, 상당히 까칠하고 괴짜스러우면서도 천재적 두뇌를 가진 유카와라는 캐릭터에 나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갈릴레오 시리즈를 계기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도 하나씩 읽어나가게 되었는데 대부분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 출간된 <새벽 거리에서(원제 夜明けの街で)>는 표지부터가 새벽의 뿌옇고 서늘한 공기를 연상하게 하는, 꽤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 나오면 항상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일본에서 2007년에 출간되었고, 번역출간된 것이 최근이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신작은 아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40대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그의 나날들은 단조롭고 또 평온하다. 아내와의 사이도 이제는 거의 무덤덤해졌고, 가끔 대학 시절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야구 연습장에 들렀다가, 얼마 전 자신의 회사에 계약직 사원으로 들어온 아키하와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뭔가 쌓인 것을 푸는 듯, 처절한 모습으로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고, 그녀가 술에 취해 그의 옷에 구토를 한 덕분에(?) 그들은 며칠 뒤 회사 밖에서 처음으로 단둘이 만나게 된다. 와타나베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가슴의 두근거림과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한 마디로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는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지만 얼마 후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고,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다. 아키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고, 일시적인 욕망에 휩쓸려 한눈을 팔다가 일껏 이룩해 놓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던 와타나베는, 이제는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거야.'라는 자기합리화의 한 마디를 그 뒤에 덧붙이게 된다.  

아키하와 가까워지며, 와타나베는 그녀에게 꽤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15년 전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집 거실에서 아버지의 비서 혼조 레이코가 칼에 찔려 살해되었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이었으며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후 사건 두 달 전 자살했으며 살해당한 비서는 아버지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 집에는 아키하와 아버지, 그리고 종종 집안일을 봐주러 오던 이모가 있었지만 그녀가 거실의 큰 대리석 테이블 위에 큰대자로 누워있던 시신을 발견했을 때는 이모와 아버지 모두 집에 없었다. 그 사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와타나베는 아키하의 이모가 운영하는 바에 갔다가 자신을 쫓아온 아시하라 형사와 우연히 마주친 혼조 레이코의 여동생에 의해, 아키하가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며 사건의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나기 시작했을 무렵 아키하가 내년 3월 31일이 되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바로 공소 시효가 끝나는 날이었다. 그녀가 정말 그 사건의 범인일까. 왜 그녀는 시효가 만료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일까.  

또한 아내 몰래 아키하와 밀회를 계속하며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온갖 알리바이를 만드는 와타나베에게서는 어쩌면 구태의연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불륜 아저씨'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때에도 용케 그는 아키하를 만난다. 어쩌면 몰래 하는 사랑이기에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고 애절한 것이 아닐까. 불륜 이야기는 그동안 수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의 소재로 줄기차게 쓰여왔고 신문 기사 등에서도 자주 보기 때문에 이제는 무덤덤해질 지경이다. 물론 이 소설에는 마지막 부분에서의 일종의 반전과 같은 미스테리적 요소도 존재하지만, 내게는 추리물보다는 연애물 쪽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15년 전의 사건은, 일종의 소도구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추리소설은 미스테리성과 트릭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새벽 거리에서>가 기대했던 것만큼 훌륭한 작품은 아니라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것은 추리물이라기보다 그들의 애절한 불륜 이야기일 뿐이다! 새벽 거리에서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결국 새벽 거리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와타나베 아저씨, 부인한테 진심으로 사죄하고 앞으로는 절대 바람 피우지 말라구요(웃음). 여담이지만 이 책의 모티브가 되었던, 일본의 국민 가수 Southern All Stars의 노래 ' Love Affair~秘密のデート' 를 들으면서, 가사가 책의 내용과 굉장히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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